2009년 9월 8일 화요일

국제기능올림픽 우승 -기능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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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승을 했군요. 생각나는 게 있어서 좀 적어봅니다.


저는 공업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곳엔 과마다 기능반이란게 있었죠.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과마다 실습실이 있었는데[과실이라고 불렀습니다], 거기서 먹고자며 실습하는 게 그 친구들 일이었습니다.


대학입시에서 4당5락이란 말이 있던가요? 그 친구들도 거의 하루 서너시간 밖에 못자면서-그러다 보니 항상 눈이 풀려있었죠- 실습을 했습니다. 수업은 거의 빠졌죠.


인문계에서 공부만하면서 그리 지내도 지저분할텐데, 기름과 먼지가 뒤범벅이 되어서 그렇게 지내다보니 항상 거지꼴이었습니다. 제 동기였던 기능반 하나가 며칠만에 집에 가는데, 꼴이 하도 그러다보니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더랍니다. 다른 동기는 실습 도중 화상을 입어서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 표정이 볼 만했다죠.

체벌도 심했죠. 교사가 아니라 선배나 조교[조교도 대개 몇년 선배]가 관리를 하다보니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야구방망이보다 굵은 몽둥이-누군가는 처음 봤을 땐 무슨 기둥인 줄 알았다죠-를 기름에 푹 담가두었다가[기름을 먹이면 더 무거워지죠. 옛날에 몽치를 오줌독에 담가두었던 것 생각하시면 됩니다] 패곤 했으니까요.

기능반출신이 군대에 가면, 군대구타 쯤은 우습더란 말이 있었습니다. 사실이더군요. 저는 경비교도대 출신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군대 내에서 구타로는 별로 밀리지 않는 곳인데[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군시절 추억담을 읽어보면 구타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우리보다 심했구나 싶은 곳은 아직 못봤습니다], 거기에 대면 별 것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제가 겪거나 지켜 본 곳 가운데 가장 구타가 심한 곳을 고르라면 공고기능반을 꼽을 겁니다.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하다보니, 자동차 엔진을 분해조립해서 시동거는데 40분 쯤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스탠드에 고정된 포니엑셀엔진이었는데, 크랭크축까지 들어낸 다음 다시 조립해서 시동거는 데 그 정도 걸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자기만의 공구를 만들고, 스피드핸들 돌리는 연습하고... 참 많이 애쓰죠.

자동차정비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실 겁니다. 제 외삼촌께서는 공대를 나오셔서 자동차정비기사자격증을 가지고 계신데, 엔진분해조립시동을 40분대에 끝내는 애들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거짓말 말라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이런 친구들이 지방기능경기대회에 나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입상하면 전국대회를 가게 되고, 거기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국제기능올림픽을 나가게 되죠[떨어지면? 과선생님들이 괜찮은 공장을 알아봐 줍니다]. 기능올림픽 준비는 학교를 떠나서 다른 곳에서 한답니다. 기능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면 현대자동차연구소 같은 곳에 가게된다더군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서 좋은 직장에 들어간 선배가 양복을 빼입고 자랑스럽게 학교에 왔을 때, 친구들이 부러워하던게 생각나네요.


그런데, 그렇게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하는 일은 뻔하다더군요. 연구원들이 연구 할 때, 이것저것 시키는대로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 정도랍니다. 그래서, 어느 선배는 결국 공부해서 대학갔다는군요.


기능반이 아닌 학생들은 기능반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능반 애들이 생활하다보면 이런저런 쓸 곳은 있는데 돈 나올 곳이 없다보니, 학생들에게서 수시로 휴지나 비누 등을 걷어갑니다. 과실의 청소를 기능반 아닌 학생들이 맡는데, 이 때 기능반 선배들이 많이 때리기도 했죠. 1학년때만 있는 일이고, 2~3학년때는 이러지 않죠.

그러다보니 기능반 친구들이 기능경기대회에서 떨어졌을 때, 동기들이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누군가는 쌤통이라고까지 하더군요.


그 곳을 떠나온지도 오래되어서 이젠 기억조차 흐릿해져갑니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는 별로 좋은 기억이 없고, 지금까지 만나는 동기도 없어서 더할겁니다. 기능반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일까요? 기능반에서도 떨궈진 친구, 기능경기대회 나갔다가 떨어진 친구, 우리를 패던 선배, 지금은 다 어디서 뭘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