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반이민정서

유럽 등지에서 반이민정서가 심상치 않다는 언론보도는 많이들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여러 글을 써주시고 계신데, 저는 우리나라의 반이민정서에 대해 몇마디 써보려 합니다. 정치사상이나 사회구조까지 다루며 거창하게 쓰지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아는게 없다보니 그런 이야기를 다룬 글들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제가 별로 아는게 없는데다가,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아서 글이 엉망일겁니다. 언젠가 내공이 쌓이면 제대로 된 글을 다시 써보고 싶네요.

1. 우리나라에 반이민정서는 있을까? 제가 보기엔 있습니다. 슬슬 커져가고 있죠. 그런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가. 반이민정서는 '단순히 못사는 나라 사람을 무시하는 것' 이상이란 것이죠. 제가 보기엔,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하는 것이 -반이민정서와 깊이 엮여 있으면서도- 반이민정서와 똑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반이민정서는 나타난지 오래되지 않았고, 이를 넘어선 뭔가가 있습니다. 바로 '저들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더해진 것 같습니다.

나. 반이민정서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단일민족 신화에 사로잡힌 순혈주의'에 대한 비판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이것도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조금 빗나간 듯 싶습니다. 반이민정서가 단순하게 '우리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배타성의 문제일 뿐이라면 저 비판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반이민정서는 그것을 넘어선 피해의식이 더해져 있습니다.

2. 반이민정서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엔 인간의 본능인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배타성에 돈 문제가 섞인 것입니다.
가. 개도 낯선 개가 오면 짖고, 개미도 굴에 다른 개미가 오면 죽여버리죠. 사람도 비슷합니다. 낯선 사람이 오면 두렵고 밀어내려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반이민정서는 이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닙니다. 반이민정서가 커져가는 곳은 아무래도 넉넉치 못한 분들 쪽 같습니다. 그 분들은 이민자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같은 골목에 살다보면, 그들이 괴물이 아닌 같은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죠. 그 사람들이 고생하며 돈 벌어서 집에 부쳐주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그 사람들이 나쁜 짓 하는 것을 보면 끓어오르기도 합니다. 저들이 마냥 나쁘기만 한 것도, 그렇다고 마냥 착하기만 한 것도 아니란 것은 그분들이 더 잘 압니다. 겪어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타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이민 정서를 비판하는 것은 좀 어긋난 것입니다.
나. 그런데 왜 넉넉치 못한 분들 사이에서 반이민정서가 커져가고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돈 문제가 엮여버린 거죠. 언젠가 다른 글에서도 썼습니다만, 이민자들로 인해 임금 상승이 되지 않거나 임금이 떨어지는 일이 생겨버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민자들에 대해 적대적인 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보면, '저들 때문에 우리가 짤린다' 또는 '저들이 여기서 돈 다 벌어간다'는 내용이 많습니다.
물론 기피업종에서 한국인들이 일하지 '않는' 것인데 이민자 탓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솔직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러나 기피업종에서 한국인이 일하지 않는 것은 '그 돈 받고는 그 일 못하겠다'는 것이지, 아예 일할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불체자 쓰는 곳에 가서, 저 돈 받고 나는 저 일 할까 생각해보십시오. 저는 못하겠더군요.
그런데 이민자/불체자는, 우리나라 사람보다 적은 돈을 받고 일해도, 본국이었다면 모을 수 없는 돈을 모아서 돌아가거나/본국의 가족에게 자신이 본국에서는 벌 수 없는 돈을 부쳐줄 수 있습니다. 임금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죠. 나라에 따라 다릅니다만, 자기 나라에서 벌던 돈의 3~5배를 받는다네요. 그래서 한국인이 일하지 않는 곳에 외국인은 일하게 되는 것이죠.
한국인은 게을러서 기피업종에서 일하지 않고, 외국인은 부지런해서 기피업종에서도 열심히 일한다? 말이 안되는 소립니다.

3.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가. 반이민정서는 더욱 커질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신분상승이 어려워지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있죠. 넉넉치 못한 분들 입장에서 보면, 상류층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지는데 불체자/이민자 때문에 현상유지도 쉽지 않아지는 셈입니다. 넉넉치 못한 분들은 뛰어난 기술을 가지지 못한 일이 많죠. 그러면 상황 끝난 겁니다. 단순노무직에서 100만원이면 불체자를 쓸 수 있는데, 200만원 주고 한국인을 쓸 사람은 없겠죠.
문제는 자본과 인력의 국제적 이동이 자유로와지면서, 단순노무직 뿐만 아니라 이공계 기술직에도 같은 문제가 나타나리란 것이죠. 미국 등에서는 동양계 엔지니어를 쓰는 일이 많다죠?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동남아 엔지니어들을 불러들이는 회사가 나타나고 있다네요.
그러면 어찌될까요? 뻔해지는 거죠.

나. 요즘 반이민정서를 걱정하는 분들은 진보진영에 속한 경우가 많더군요. 그런데 진보진영에 계신 분들이 하시는 말씀은, 제가 보기엔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좋게 말해 이상적이고 나쁘게 말해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보수나 진보나 모두 덜떨어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진보진영내 모자란 사람들은 빼고도 말입니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 진보진영에서 내세우는 정책/진보진영에서 반이민자정서를 공격하는 논거들의 현실적 약점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언론에 이민자나 불체자의 범죄들이 보도되면, 여론의 움직임은 심각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저런 사태가 정치적으로 얼마든지 악용가능할 것이고, 진보진영쪽에서는 악용당할만한 소지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보수적인 사람이고, 반이민정서의 강화가 불체자 단속업무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런 사태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4. 어떻게 해야할 까요?
가.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우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죠.
나. 다만 악화를 막기 위해서-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아니지만, 사태의 진행을 늦추고 심각성을 완화하기 위해서- 몇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해요.
1)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고자 대규모 이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력합니다. 그런데 좀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글로벌인재를 받아들이는 것이야 당연하고,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하는 사람들을 보면, 국익에 보탬이 될 인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순노무 이상의 재능은 없는 40대 이상이 다수죠. 저출산 고령화문제를 극복하려면, 젊은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요? 글로벌인재를 받아들이겠다며 열어젖힌 문으로 단순노무인력이 몰려오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보다 근본적으로, 선진국에서 오래전에 추진했다가 실패로 드러난, 지금 그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는 정책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국익에 보탬은 고사하고 부작용만 클 것이 뻔합니다. 정부 각 부처에서 경쟁적으로 사회통합에 뛰어들고 있습니다만, 과연 그걸로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까요?
2) 결혼이민자들은 기본적으로 가난한 분들이 많다보니, 2세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지 못하죠.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계층간 불화는 있었어도 인종간 불화는 없는 나라였는데, 이제 '못배우고 가난한 코시안'이 사회 하류층에 나타나게 될 겁니다. 지금 이들의 교육문제에 손을 쓰지 않으면, 10년뒤 무서운 결과가 나타나겠죠. 정부 각 부처에서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사회통합, 사람 모으기 식의 이벤트가 아니라 저들에 대한 교육지원이 되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3)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민자들을 인간쓰레기나 사회적 병균쯤으로 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사악한 한국인들이 불쌍하고 착하기만한 이민자/불체자를 괴롭히고 있다는 영화 '방가방가'식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정확한 상황인식이 되지 않으면, 합리적 대안 수립도 불가능합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론이 선동질/여론몰이를 그만둬야겠죠.

2010년 10월 23일 토요일

가족

불체자가 많은 나라 사람들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들어오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불체를 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이런 저런 거짓말로 심사관을 속여넘겨야 하죠. 그 때 잘 써먹는 수법 가운데 하나가 가족관광입니다. 그래서 성이 같은 사람들 몇이 모여서 가족이라고 속이는 일도 많죠. 이와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 둘과 겪은 일 하나를 써 볼까 합니다.

1. 몽골의 어느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려 했답니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어서, 아이는 들어올 수 없고 엄마만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러자... 그 엄마가 아이는 팽개치고 자신만이라도 우리나라에 들어오겠다고 하더랍니다.
조사를 해보니 가짜엄마였다는군요. 아무래도 애를 안고 있으면, 설마 애 데리고 불체할까 싶어서 들여보내주게 되겠죠. 그걸 노린 것이었습니다.

2. 제가 일하는 곳으로 어떤 불체자 하나가 상담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기나라로 돌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더라네요. 알고보니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아들에게 일만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견디다 못한 아들이 자기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며 전화한 것이었죠.
설마 애 데리고 들어와서 불체할까 싶어서 들여보냈더니, 한술 더 떠서 애를 부려먹은 겁니다.

3. 얼마전 불체자 단속을 나갔다가, 스무살도 못되는 러시아 불체자를 잡았습니다. 조사해보니 여섯살 때인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인생의2/3를 불법체류한 친구였죠. 어찌된 거냐고 물어보니, 이모가 자신을 데리고 들어왔다가 이모가 먼저 단속되어서 자신만 남았다고 하더군요. 이모가 왜 데리고 들어온거냐고 묻자,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후 참 어렵던 시절이었죠.

만약 피치못할 사정 때문에 이모가 조카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면, 이모가 단속되었을 때 조카도 함께 데리고 가겠다고 했겠죠. 그러면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단속실적이 늘어나는걸 마다할까요.

단속중에는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쳐도, 보호[단속된 불체자는 여권/항공편 마련 등 출국할 준비가 될 때까지 보호실/외국인 보호소에 있게 됩니다]중에는 자세한 사정을 말할 여유가 없지 않았을 겁니다. 이모가 우리말을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러시아어를 하는 직원은 몰라도 우리말을 좀 하는 다른 불체자가 없었을 리 없습니다.

제가 사악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니 저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생각은 들지 않네요.

2010년 10월 9일 토요일

실전


단속을 할 때, 달아나기만 하는 불체자들이 더 많지만 맞서 싸우는 불체자도 가끔 있습니다[얼마전, 다른 사무소에서 단속된 불체자를 때려서 문제된 일이 있었죠. 그 일도 사실 불체자가 각목과 유리병을 들고 덤벼들었던 것 때문에 감정이 격앙되어서 벌어진 일입니다. 젊은 사람도 아니라 쉰 넘은 분이, 사람패기 알맞은 것도 아닌 수갑을 들고 때렸을 정도면, 상황이 오죽했겠습니까].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막대기, 돌, 전지가위[전지가위로 무슨 공격을 하겠나 싶으시겠지만, 하더군요] 등을 들고 덤비는 불체자와 싸워야 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별일없이 넘어가나 싶었는데, 얼마전 그런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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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체자들을 덮쳤는데, 마침 갈고리를 두개씩 들고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달아나면서 갈고리 두개를 그냥 들고 가더군요[빨리 뛰려면 본능적으로 손에 든 것들을 버리고 달리는데]. 처음에는 손에 든 것을 버릴 생각도 못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따라잡자 바로 갈고리들을 휘두르더군요. 위 사진이 바로 그 갈고리들을 찍은 것[종이는 A4용지이고, 가운데 있는 것은 30cm자입니다] 입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삼단봉을 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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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쉽지 않더군요. 갈고리가 하나였다면 삼단봉으로 갈고리 든 손을 치면서 엉킬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갈고리 두개를 휘두르다보니, 하나를 막으면 다른 하나에 찍힐 판이었거든요.
다행히 그 사람도 무술을 배운 사람은 아니라서 두 손을 한꺼번에 잘 쓰지는 못하더군요. 한손을 쓰고 다른 한손을 쓸 때 잠깐씩 틈이 비었습니다.
둘 다 본능적으로 팔을 머리 뒤까지 젖혀 바로 내려찍/후려치려는 자세로 맞서게 되더군요. 옛날 검도는 상단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갑니다.
만약 그 사람이 갈고리가 아닌 칼을 들었다면 중단을 잡았겠지만, 내려찍어야 하는 갈고리의 특성상 위로 치켜들 수 밖에 없었을 겝니다. 저도 갈고리로 내려 찍는데 삼단봉으로 중단을 잡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제대로 된 상단이나 중단은 아닌, 되도 않는 웃기는 자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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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그는 갈고리를 휘두르고, 저는 갈고리 든 손을 노리면서 맞섰습니다. 어쩌다 틈이 보일때마다 손목을 때렸는데 별 효과는 없었습니다[잡힌 뒤 보니 손목이 붓긴 했다는군요]. 처음엔 삼단봉으로 손목을 치면서 이젠 끝났다 싶었는데, 화만 돋구지 무력화는 되지 않아 참 당황했습니다. 저는 다행히 찍히지 않았구요. 찍혔으면 이렇게 지내지는 못하겠죠.
아마 갈고리를 피하면서 틈을 노려 치는 것이라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도 삼단봉이 신경쓰여서 제대로 찍지를 못하더군요. 더구나 저를 찍는 것 보다는 달아나는게 더 중요했을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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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맞서다 달아나더군요. 제가 따라잡자, 다시 갈고리를 휘둘렀습니다. 그렇게 한참 뛰고 휘두르고를 되풀이했습니다. 나중엔 서로 지쳐서 제대로 된 공격이 되지를 않더군요. 손목을 쳐도, 제대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툭 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달아나다가 밭을 뒤덮은 덩굴에 걸려서 그가 두어번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저도 한번 휘청했다는데[보신 분이 아찔하셨답니다], 전 솔직히 생각도 잘안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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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함께 일하는 분들이 여럿 오셨습니다만, 제대로 된 무기가 없어서 별 도움은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무기는 없지만 여럿이 몰려오자 그가 더 당황한 듯 하더군요. 결국 넘어지면서 갈고리를 하나 놓쳤습니다. 그러니 더 힘들어졌겠죠. 그래서 더 달아나다가 어느 집 뒷마당에 있는 역기봉을 하나 주워들고 맞서더군요. 마음이 급해서인지 갈고리를 버리지 못하고 역기봉과 겹쳐 잡았던게 실책이었죠[갈고리도 역기봉도 제대로 못쓰게 된 겁니다]. 제가 역기봉 끝을 잡아채면서, 두어분[누가 덮쳤는지 생각도 안납니다]이 덮쳐서 수갑을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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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쫓고 쫓기다가 많은 분들을 마주쳤고, 참 많이들 놀라셨습니다. 아주머니들은 말 그대로 혼비백산하셨고, 젊은 친구들은 그 상황에서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더군요. 수갑을 채우고 오면서 몇분께 신분증을 보이면서 안심하시라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모든 분께 사정설명을 드리진 못했습니다. 다 찾아뵐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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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끝났다 싶자, 맥이 풀려버리더군요. 목에서 피맛이 나면서 기침이 오래동안 나왔습니다. 웬만큼 뛰어도 좀 쉬면 멀쩡해지는데, 그날은 종일 맥을 못추겠더군요. 그는 구토를 했답니다. 둘다 운동량에 비해서 체력소모가 무척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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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흉기를 든 사람과 싸워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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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흉기를 든 상대와 맞서면 얼어버려서 아무 것도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물론 불시에 급습을 당하면 그렇게 되겠지만, 1~2초라도 마음의 준비가 있으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처음 대련할 때의 긴장과 비슷합니다. 다른 소리는 잘 안들리고 내 심장 뛰는 소리와 숨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아무 것도 못할 정도의 긴장은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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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대와 거리를 두는게 중요하더군요. 대련에서는 일족일도의 거리를 두게 됩니다만, 말 그대로 아차하면 죽는 거립니다. 저나 그나 삼단봉과 갈고리라서 죽도보다 훨씬 짧은 걸 들고 있었지만, 죽도를 들었을 때의 일족일도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상대가 공간치기하듯 밀고들어오면 답이 안나올 것 같았습니다. 특히 날붙이를 가진 상대와 엉키면 아주 위함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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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격은 과감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조금만 더 과감하게 밀고 들어왔다면 저는 어찌되었을지 모릅니다. 저 역시 처음에 손목을 칠 때, 손목 부러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 버리고 인정사정없이 쳤다면 바로 끝냈을 겁니다. 다치지는 않고 끝냈으니 어찌보면 잘된 일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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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단봉이 듣던 것만큼 파괴력이 세지는 않고[아무 걱정없이 휘두른다면 위력이 넘칩니다만, 상대 반격을 피하면서 틈을 노려 치니 얘기가 달라지더군요], 뽑아들고 오랬동안 뛰고 치켜들고 하다보면 접히기까지 하더군요[두어번 접혔는데, 다행히 거리가 어느 정도 있어서 별일 없었습니다]. 삼단봉으로 단단한 것을 찌를 때만 접힌다고 하던데, 사람을 찔러도 접히더군요[물론 쉽게 접히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가지고 다니는 것은 명품소리 듣는 물건인데도 그랬습니다. 지급되는 싸구려 삼단봉을 쓰는 건 말 그대로 명을 재촉하는 일 밖에 안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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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련이 실전에 별 도움이 안될 듯 하지만, 많은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대련이나 실전이나 틈이 보이는 것, 보이는 틈을 치는 것 다 같더군요. 다만 한가지. 대련에서는 맞는 것 신경안쓰지만, 실전에서는 못 때리더라도 안맞는게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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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며, 어둑어둑해지는 저녁길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지더군요. 몇번 핸드폰을 꺼냈다가 그냥 집어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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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아시게 된 윗분은 아주 싫어하시더군요. 사고나지 않도록 무리한 추격 자제하라고 몇번을 지시했냐고 말씀하시면서.
솔직히 저희도 흉기들고 덤비는 것들 보면 그냥 보내고 싶은 생각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몇달 안에 모든 불체자가 흉기를 들고 다니게 될 겁니다[어느 곳에서는 여자 불체자가 칼부림하기에 그냥 보냈더니, 뒤에 다시 단속에 걸리자 또 칼부림을 하더라는군요].
이 일이 있고 며칠 뒤, 불체자 하나가 사람 머리만한 돌을 들어 내려치고 각목을 휘둘렀습니다. '무리한 추격은 자제한'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그는 무사히 달아났죠[저는 다른 곳에 있어서 못봤습니다]. 아마 다른 불체자들에게 어떻게 하니 손도 못대더라고 신나게 떠들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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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불체자를 단속하는 'immigration'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것을 통쾌하게 그린 영화도 개봉되었더군요. 그 영화를 보며 공감한 분들 많이 계신 듯 합니다. 누군가의 덕에 덜 위험하게 살아가면서, 바로 그 누군가를 비난하시겠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살면 마음은 편하겠군요. 할말 없습니다.

2010년 9월 25일 토요일

불체자와 개

불체자들도 애완동물과 함께 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습니다. 일본에서 불법체류를 하다가 강제퇴거된 우리나라 여자들도 개와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더군요. 불체자의 개와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 하나와 겪은 일 하나를 써 볼까 합니다.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어떤 여자가 강아지를 데리고 출국을 하려고 했는데, 심사를 맡은 분이 보니 다른 사람의 여권으로 나가려는 듯 했답니다. 불체자들이 다른 사람의 여권으로 나가는 일이 자주 있거든요. 그러나 말씀드릴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보냈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타고 가려던 항공기의 기장이 개는 못태운다고 하자, 개를 놓고 갈 수 없다며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죠. 결국 그 사람은 불체자라는 것이 밝혀져 버렸습니다. 그 개는 어찌 되었나 모르겠네요.

제가 겪은 일입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우거진 숲속으로 불체자 두엇이 달아났습니다[야산을 끼고 지어진 공장들이 참 많거든요]. 찾기 난감한 일이었죠. 그래도 한참을 쫓고 있었는데, 웬 개가 저와 함께 일하는 분을 향해 짖더랍니다. 그래서 가보니 불체자 남녀가 숨어있더라는 군요. 여자도 함께 있어서 저항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던지 순순히 잡혔고[저희도 공격받는 일이 있습니다. 특히 저런 인적없는 숲속에서는], 곧 저와 만나게 되었죠.
공장에서 불체자 남녀가 사귀게 되었고, 떠돌이 개와도 친해졌나봅니다. 불체자들이 달아나자 개도 따라서 갔고, 저희가 가까이 가자 별 생각없이 짖다가 들켜버린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갔을 때, 개가 별로 짖지도 않고 그냥 앉아있던 걸로 봐서는 주인을 지켜보려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더군요. 불체자들이 개도 데려갈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차에 태우고 돌아가는데, 그 개가 한참을 따라오더군요. 그 개는 불체자들과 만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갔을 듯 하네요.

제 일이 일이다보니, 좋은 인연보다는 그렇지 못한 인연을 많이 만들게 됩니다. 업보를 쌓아 가고 있죠.

2010년 9월 21일 화요일

가난한 나라 관광객들의 입국심사

저도 몰랐는데, 어느 나라와 사증면제협정이 맺어졌더군요. 우리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불체를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파견된 분의 말씀에 따르면, 사증면제협정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이 불체를 하기 위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오는 항공노선 하나가 제가 일하는 곳에 있는 공항에 생겨버렸습니다. 요즘은 브로커들도 머리를 씁니다. 처음 그 나라 노선이 생겨서 아무래도 대응이 서툴 수 밖에 없는 곳, 베테랑들이 빠져나가고 업무파악이 안된 직원들이 많은 인사철 즈음, 심사관들의 주의력이 떨어지는 새벽시간대를 노리죠. 저희가 맡은 공항이 바로 첫번째에 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에서 처음 비행기가 오던 날, 저희들은 말 그대로 뒤집어졌습니다. 가장 급한 것이 통역을 구하는 일이었는데,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영어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죠. 중국어나 일본어로 가면 더 해집니다. 하물며 그 나라 말을 가르치는 학원을 찾기도 힘든 나라의 말을 하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할 수 없이 그 나라에서 온 결혼이민자를 몇 분 만나봤습니다만, 그 비행기가 오는 이른 아침에 나와주실 수 있는 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간신히 한분을 모시고 공항으로 갔습니다[그런데 심사과정에서 이 분께서 -팔은 안으로 굽다보니- 자기 나라 사람들 편을 들어서 애먹었습니다. 그들이 저희도 뻔히 아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데 은근슬쩍 그대로 넘겨주려 하시더군요].

아무튼 거의 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온 그날, 한바탕 북새통이 오랬동안 펼쳐졌죠. 어찌저찌해서, 브로커가 낀 사람들 수십명을 가려내서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경찰에서 수사해보니[원래는 특별사법경찰인 저희가 해야합니다만, 워낙 일손이 모자라다보니 손을 못 댑니다. 그래서 경찰 외사계가 맡게 되었죠], 성공하면 일인당 200만원씩 받기로 하고 불러들인 우리나라 사람이 있더군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관광하러 온 사람들 수십명이 많은 불편을 겪었습니다. 앉을 곳도 제대로 없는 입국심사장에서 한나절을 지내면서, 친절한 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조사를 견뎌야했죠. 저희도 이게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브로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멀쩡한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서 들여보내는데, 이마에 불체하러 왔다고 써 있는 것도 아니죠. 결국 불체가능성 없는 게 한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닌 한, 조사를 해 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단돈 10만원이나 40만원을 들고 와서는, 4일동안 쇼핑하고 가겠다는 사람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하면, 그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나쁠 수 밖에 없죠.

통역문제나 편의시설 문제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무소에 모든 나라 말의 통역을 여럿씩 붙여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해마다 수백억씩 적자가 나는 시골공항에, 일반적인 사람은 별문제없이 지나가는 곳에 수십명이 편안하게 머물 시설을 갖추라고 할 수는 없죠.

아무튼 그날이 그렇게 지나갔고, 얼마 뒤 그 나라에서 또 수십명이 몰려왔습니다. 역시 북새통이 펼쳐졌고 그 사람들은 불편하고 자존심 상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이 정중하게[점잖은 분들이었습니다] 항의하더군요.

그래서 당신나라에서 온 불체자가 많아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통역이 한 사람뿐이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더니 아무 말씀도 못하시더군요. 그 나라의 공직자라고 신분을 밝히며 항의하는 분께는, 불체자들이 모두 공무원 행세를 하고 있고 가지고 있는 문서도 위조된 것들이 많다고 했더니 역시 아무 말씀도 못하시더군요. 자신의 나라 사정을 뻔히 아는 그 분들로서는 대꾸할 말이 없는 뼈아픈 한마디였고, 약소국의 설움을 톡톡히 맛본 셈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마음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었구요.

한바탕 난리굿이 펼쳐진 뒤 모든 게 끝났고, 잠시 뒤 사증면제협정이 맺어진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아무 일 없이 모두 무사통과 되었죠. 저도 솔직히 깔끔하지 못한 외모와 넉넉치 못한 살림살이 때문에 어디가서 좋은 대접 받기 힘든 사람입니다. 그래서 겉모습이나 차림새로 사람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착한 거 아니고 못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나쁜 거 아니란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뭐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은 들어오는 사람의 반 넘게 불체하지만[위에서 쓴 날들 말고, 다른 날에도 그 나라 사람들이 왔었습니다. 그나마 불체가능성이 적은 사람들을 들여보냈더니, 여행일정이 끝났는데도 반 가까이 돌아가지 않았더군요--바로잡습니다. 나중에 한번 더 조사해보니 많이들 나갔더군요. 여행일정 끝나고 가이드는 먼저 돌아갔는데 남아있길레 불체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요. 영어도 우리말도 못하면서 왜 더 머물다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잘사는 나라 사람은 제 때 잘 돌아가죠. 예전에 잠시 범죄경력 조회를 맡았던 적이 있었는데, 외국인 범죄자 가운데 잘사는 나라 사람은 거의 없더군요. 열이면 여덟아홉은 불체자가 많은 나라 사람들이었고, 불체자 적은 나라 사람은 한둘 쯤 밖에 안되었습니다.

그 북새통을 모두 지켜본, 다른 기관 분이 슬쩍 한마디 던지시더군요. '많이 수상해 보였나봐요?' 왜 그런 난리굿을 피우며 관광객들을 쫓아내냐는 투였습니다. 사시는 동네에 불체자가 별로 없지 않냐고 되묻자, 역시나 없다고 하시더군요. 불체자 많은 동네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그런 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어느 진보적인 지식인께서 도심에 나타난 멧돼지를 사살한 것을 비판 하시던 게 생각나요. 멧돼지를 바라보는 시각은 도시에 사는 사람과 시골에 사는 사람이 같을 수 없죠. 불체자 문제도 그렇습니다. 폭력사건이 벌어져 순찰차가 출동하자 불체자들이 떼를 지어 막아선 일[이건 제가 겪은 건 아니고, 언론보도에서 본 겁니다. 제가 언론보도는 그다지 믿진 않지만, 있을 법한 일이라 생각되네요]을 모르면, 불체자들이 서넛씩 사는 집이 골목마다 여럿 있는 동네에 가보지 못했으면, 저희가 왜 이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시겠죠.

정말 길었던 하루를 끝내고, 한가위를 쇠러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정중하게 항의하던 분들이 잊혀지지 않아 기분이 참 뭐한 길, 불체자인 듯 한 사람들이 너댓 보이더군요[그 친구들도 저희가 언제 쉬는지 잘 알아서, 그때 많이 돌아다닙니다].

2010년 9월 5일 일요일

탈북여성

제가 일을 하다 보면 탈북자를 만나게 되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탈북해서 중국의 조선족과 함께 살다가 남한으로 넘어온 다음, 조선족을 불러들이거나 [이미 들어온]조선족의 체류자격을 변경해 주는 일이 많거든요. 거의 여성인 것 같더군요.

이분들이 탈북해서 중국에 숨어 살아야 하다보니, 중국의 신분증을 위조해서 써야합니다. 더구나 모두가 좋은 사람일 수는 없으니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없지 않은 듯 하구요. 그래서 이분들과 관련된 일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하죠.

얼마전, 탈북여성과 결혼한 조선족이 신청한 것을 제가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두분의 혼인경위를 알아보면서, 어떻게 남편과 만나게 되었냐고 묻자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팔려갔어요'

처음엔 제 말을 잘못 알아들으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머리가 띵해지더군요.
물론 탈북자 특히 여성들이 인신매매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 귀로, 더구나 그 여자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느낌이 정말 달랐습니다.

윤락가도 아닌 곳에서 인신매매가 이루어지는 중국[물론 우리나라도 80년대까지 윤락가의 인신매매가 사회적 문제였고, 지금도 각종 인권단체나 다른 국가에서 인신매매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이것과는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이나, 그런 중국으로라도 탈출을 해야 하는 북한. 뭐라고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그렇게 팔려갔으면, 남한에 넘어오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버릴텐데 그렇지 않으시더군요. 경제적으로도 뭐하나 바라볼 게 없는 남편인데도. 비록 아들이 하나 있긴 했지만, 저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 일을 하게 되면서 힘들고 어렵게 사는 외국인들을 많이 보는 셈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마음가짐이 달라진게 있습니다.
주말에 서울로 돌아와서 번화가에서 잘 차려입은/예쁘게 꾸민 사람들이 즐겁게 다니는 걸 보고 있으면, 어떻게든 이걸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히도 어렵게 산다는 게 어떤 건지는 모르고 삽니다만, 지키지 못하면 어찌될지 조금씩 감이 오거든요. 더구나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닌, 우리 할머니 우리 아버지어머니들이 피땀흘려 일궈낸 것들 아닙니까.

2010년 8월 28일 토요일

불체자와 노동시장 임금

외국인 근로자들이 늘어나면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내려가는/또는 오르지 않는 것을 두고 말이 없지는 않은 듯 합니다.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그렇지 않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 듯 하네요. 언젠가 저희도 관련 연구자료를 받아보았는데, 솔직히 제 전공분야가 아니다보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군요.

합법체류자의 임금수준은 노동부쪽에서 파악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다만 그게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방문취업비자[조선족/고려인이 우리나라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입니다]로 들어온 사람 가운데, 저희쪽에 취업개시신고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혜택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취업개시신고를 하려면, 고용센터에 신고를 한 뒤 표준근로계약서를 떼 와야 합니다. 그래서 방문취업비자로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혜택을 노리고 취업을 하지도 않은 곳의 업주와 고용센터에 가는 일이 정말 많거든요. 당연히 임금도 되는대로 적어서 내는 경우가 많겠죠.
물론 이런 경우에도 황당한 임금을 적어내지는 않고 일반적인 임금을 적어낼테니까 믿을만 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서울에서 식당은 80~160 사이[대개 120~150]에서, 건설업체는 200~260[형틀목수/철근 그밖에 맡은 일에 따라 달라지죠] 사이에서 정해지는 것 같았는데, 그 일 한지 몇달 지나서 가물가물하네요. 맞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일을 하다보면 퇴직신고를 하러 오는 사업주들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사람들은 외국인도 우리 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해 주고 있다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맞나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불법체류자의 임금수준은 파악이 안되고 있습니다. 다만 단속된 불체자의 체불임금을 정산하는 과정에 노동부쪽 분들과 저희가 개입을 하게 되면서 이 정도 받았구나 하고 알게 되는데, 그걸 자료화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제가 하는 일이 아니라서요].

아무튼 불체자가 노동시장의 임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사업주들은 항상 말합니다. 한국인들은 일하러 오질 않아서 쓸 수가 없다고. 그래서 불체자를 쓸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하죠.

그런데 한국인 노동자들의 말은 또 다릅니다. 사업주들이 불체자만 써서 일자릴 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불체자 신고를 받다보면, 자신이 불체자들 때문에 짤릴 위기에 있다면서 다급하게 단속을 요청하는 분들도 많고, 아예 짤린 다음 복수심에 불타서 제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한국인의 불체자 신고는 거의 이런 경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요? 단속된 불체자의 말을 들어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단속된 불체자에게 얼마 받았냐고 물어보니 180을 받았다더군요. 나보다 많이 받는다고 했더니[제가 200쯤 받는데, 그 때 분위기가 농담따먹기 하는 분위기라서 우스개로 그랬습니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면서, 처음부터 그렇게 받은게 아니라 몇년동안 오르고 올라서 그렇게 받은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 사람이 있던 곳은 폐수가 발목까지 차오르는 3D업체였습니다. 그들은 장화를 신고 저희는 운동화를 신고 이리저리 첨벙거리며 쫓고 쫓기던게 생각나는 곳이죠. 그런 곳에서 처음엔 100 남짓 받다가 여러해 동안 오른게 180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은 6년간 불법체류를 해서 그렇게까지 받았고, 같이 잡힌 다른 사람은 100 좀 넘게 받았다더군요. 아마 우리 국민을 썼다면 250은 넘게 줘야 했을 겁니다.

흔하지는 않은 일입니다만, 어느 공장에서 잡힌 사람은 80쯤 받았더군요.
어느 음식점에서 불체자를 100~120 쯤 주고 요리사로 쓰다가 단속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을 썼다면 200은 넘게 줘야 하는 자리라더군요.

그래서 저와 함께 일하는 분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오지 않아서 불체자를 쓸 수 밖에 없다고? 돈을 적게 주니까 그렇지!'
위에서 말한 공장에서 80주고 불체자 쓰다 걸린 사업주가 합법적인 외국인 근로자마저 도망가서 불체자를 쓸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는 걸 보면 얼마나 사람을 막 대했으면 외국인까지 도망가나 싶기도 해요.

이런 걸 보면, 불체자가 노동시장의 임금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감이 오실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반이민정서가 꿈틀거리는게 이해가 가기도 해요.

이 글을 읽으시면서, 제가 사업주와 불체자가 좋은 관계에 있는 때도 많다는 글을 썼던 걸 떠올리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어느 게 거짓이냐고 하실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글도 그 글도 모두 저나 제 주변의 다른 분들이 겪은 일들입니다.
뭔가 앞뒤가 안맞는다고 느끼실 겁니다. 그런데 삶이란게 그렇더군요.

-- 덧붙입니다.

얼마전 도축가공업체에서 불체자를 단속했습니다. 125만원/135만원/175만원을 받고 일했더군요[경력이 쌓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받은 것 같습니다]. 도축가공업체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간단하게 옛날의 백정 생각하시면 됩니다. 피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고, 무슨 특별한 경력이 될만한 곳도 아니다보니, 한국인을 쓰려면 저 돈 가지고는 안될 겁니다.

2010년 8월 21일 토요일

재회 2

요즘은 위장결혼도 나름 머리를 쓰고 준비를 합니다. 한국인이 -마치 '정상적인' 국제결혼처럼- 외국으로 건너가서 맞선을 보고 오기도 하고, 외국인이 우리나라로 잠깐 와서 맞선을 보고 가기도 하죠[이때 미리 합의한 대로, 불법체류를 하지 않고 바로 나갑니다. 이걸 담보하기 위해 브로커에게 위약금도 걸어두더군요]. 예전처럼 위장결혼한 사람들이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또 가난한 분들이 국제결혼을 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도 썼다시피-아내를 맞아오는 것인지 강아지를 얻어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게 위장결혼인지 아니면 참된 결혼이지만 사는 게 막 사는 것일 뿐인지 가려내기가 힘들어지고, 늘 망설이게 되죠. 특히 제가 처음 맡았던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제가 아무 것도 모르고 위장결혼같다고 보고했던 것들이, 참된 결혼이지만 사는 게 막사는 것일 뿐인데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늘 찜찜했죠.

그런데... 제가 처음 불허의견을 냈던 분이 다시 신청을 했고, 이 건이 어쩌다가 다시 제게 맡겨졌습니다. 불허가 된 뒤 쫓아와서 대판 싸우고 갔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윗분께 말씀드리고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그냥 제가 맡았습니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운다는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제가 제대로 본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만약 잘못 본 것이라면 제 손으로 바로잡아 주고 싶었죠.

다시 만나게 된 그분. 대판 싸우고 갔다기에 한번 소란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뜻밖에도 순하셨습니다. 대판 싸웠을 때, 저희쪽에도 만만치 않은[?] 분이 계셨기 때문에 그런 듯 싶습니다. 다행히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더군요.

처음에는 구비서류 등 뭐하나 제대로 준비해둔 것이 없으셨는데, 이번에는 이것저것 열심히 준비해오셨더군요. 순간 흔들립니다. 내가 막사는 걸 위장결혼으로 잘못 본 게 아닐까? 조금 캐보니 여기저기서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위장결혼이 아닌데도, 딴에는 잘 해보겠다고 거짓말 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한참을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는데, 뭔가가 잡힙니다. 두가지가 수상하더군요. 제가 잘못 봤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행히.

다시 보고서를 썼습니다. 이번에는 '불허'라고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제가 본 대로 썼습니다. 담당하시는 분이 읽어보시고 결정하시도록. 담당하시는 분들은 그런 의견을 더 싫어하시더군요. '도대체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며... ^^;;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그냥 한 것을 아시게 되자, 선배님들이 그러시더군요. 불허된 사건을 다시 맡기지 않는 까닭은, 감정싸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자기가 맡았던 사건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일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법원에서 재판할 때 전심[前審]재판에 관여한 판사는 맡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더군요.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습니다.
적어도 이번은 제가 선입견으로 한사람의 혼사에 딴지를 걸어버린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모르죠. 사람 사는 게.

제 선배 한분이 겪은 일입니다. 어떤 부부를 조사하고는 위장결혼으로 판단했답니다[제가 들어봐도 위장결혼으로 보이더군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그 뒤 약 5년동안 그 사람이 술만 마시면 -조사과정에서 실수로 노출 된-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해서 퍼부어 댔답니다. 결국 5년 뒤 그 사람은 많은 노력을 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군요. 그런 일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조심하게 됩니다.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 고생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저희가 막아버리는[결혼은 약탈혼이 아닌 이상 국가가 막을 수 없죠. 저희는 그 외국인의 입국을 막아버릴 뿐입니다. 한국인이 외국으로 나가서 같이 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죠. 다만 맞선을 통한 국제결혼은 입국불허가 곧 혼인불허와 같죠] 국제결혼은 위장결혼 냄새가 물씬 나거나, 아니면 위장결혼이 아니라도 곧 도망가버릴 게 뻔히 보이는 결혼들입니다. 가끔씩 외국인 배우자 쪽에 한국인 배우자는 모르는 문제가 있는 때도 있구요. 아는 사람이라면 정말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결혼들만 그렇게 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것이.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재회

버스터미널에 갔습니다. 표를 끊고, 돌아서 나오는데 누군가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하더군요. 얼떨결에 저도 웃으며 인사를 하고 보니.... 얼마전에 단속된 유학생이었습니다. 바로 제 손으로 수갑을 채웠고, 풀려날 때는 제가 문을 열어주며 보낸 사람이죠.

우연히 그 사람도 제가 타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저 구석에서 담배만 피우더군요. 그 사람도 얼떨결에 웃으면서 인사는 했는데 정신차려보니 뜨악해서 피하는 것인지, 어색한 걸 참고 인사까지 했는데 제가 뜨악해하니 뭐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찌된 일인가 하면....
여름철에 수박들 많이 드시죠. 그 수박에도 불체자의 손길이 미쳐있다는 것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수박은 묵직하고 둥글어서, 하루에 수백통씩 다루다보면 놓치기 쉽겠죠. 그래서 수박 딸 때 힘이 센 우즈벡 불체자들을 많이 씁니다. 수박으로 유명한 곳에는 우즈벡 불체자들을 보내주는 브로커도 활동하죠.

저희가 수박따러 온 불체자들을 덮쳤는데, 거기에 체류자격외 활동허가를 얻지 않고 일하던 우즈벡 유학생이 몇 끼어 있던 겁니다[비자/사증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유학생들은 공부를 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일은 할 수 없습니다(다른 나라도 그렇다는군요. 다른 나라로 유학가신 분들이 많이들 이야기 하시죠?). 일을 할 수 없는 비자도 체류자격외 활동허가를 얻으면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유학생의 경우 신청만 하면 다 내줍니다. 다만 유학생은 공부하러 온 것이니까, 휴일/방학이 아닌 때에는 '하루에 몇시간까지만 일하라'는 시간제한을 두죠. 그런데 이 학생들은 그 허가없이 일했던 겁니다.]. 신분확인 전에는 도주와 저항 우려 때문에 수갑을 채웠다가, 학생이란 게 밝혀져서 수갑 풀어주고, 사무소로 데려와서 반성문 한 장씩 쓰는 걸로 끝을 냈었죠.

가난한 나라에서 유학온 학생/ 얼마전까지 무척 가난하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 살게 된 나라에서 외국인을 다루는 공무원- 어찌보면 정말 할말이 많을 관계인데, 만난 인연이 아름답지 못하다보니 저리 되더군요.
그런데 이 일을 오래하신 분들은 그렇지 않으시더군요. 어떤 분은 자신이 단속한 바로 그 업체에 손님으로 가시기도 합니다. 물론 뭔가를 받아먹고/받아내려고 가는 건 절대 아니구요[제가 그 분을 알고 그 업체도 아는데, 그럴 분도 아니고 그럴만한 곳도 아닙니다], 단속하러 가보니 괜찮더라 해서 가는 거죠. 저로서는 참 따라하기 힘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어찌보면 이해도 가요. 십여년을 이 일만 하시면, 도대체 단속 안한 곳이 있어야 단속한 곳을 피하며 살죠.

아무튼... 뭐한 만남이었습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어찌보면 비슷한 만남이 한번 더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 때 써 볼까 합니다.

편견

얼마전 어느 대학에서 광고를 냈나봅니다. 동남아 어느 나라 사람들이 좀 못살고 좀 무식하고 좀 다르게 생겼지만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며, '가슴으로 공부하라'는 광고를 냈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인들을 '좀 못살고 좀 무식한' 사람으로 내리깎은 저 광고를 참 부끄러워 하시던데, 저도 몇마디 보태볼까 합니다.

저 광고에서는 그들이 '좀 다르게 생겼다'고 했던데, 좀 '다르게' 생긴 건 맞습니다. 그런데 모르긴 해도, 그 광고에서는 그들이 우리보다 못생겼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건 아닙니다. 동남아 아가씨들도 예쁜 사람 얼마나 많은데요. 남자들도 잘생긴 사람 많구요.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저들도 똑같습니다. 그들이 체격이 좀 작고 가무잡잡한 것은 맞는데, 그래서 못생겼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겁니다. 그 사람들 많이 보시면 아실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좀 못살고'라는데, 동남아쪽이 우리나라보다는 조금 못사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와 있는 동남아 사람들이 모두 못사는건 절대 아닙니다. 막일이라도 해서 돈벌러 온 사람들은 우리보다 가난한게 맞는데, 부잣집 자식들도 많이 놀러 오거든요. 우리나라에 돈 쓰러 온 부잣집 자식들, 과연 우리보다 가난할까요? 재벌집 자식 아니면 그들보다 돈 많은 사람 별로 없다는데 한표 던집니다.

또 그들이 '좀 무식하고'라는데.... 이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 싶네요. 제가 동남아 쪽 사정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합니다만, 그들을 대하면서 '정말 무식하구나'라고 느껴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외국인관련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 편견은 두가지로 갈리는 듯 해요. 그들을 무시하거나, 선민의식이나 우월감에서 그들을 불쌍하게 보는. 그런데 이 두가지 모두 틀린 겁니다. 둘 다 그들이 우리보다 못났다는 걸 깔고 있거든요.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인데, 그러면 우리만 우스워지겠죠.

2010년 7월 17일 토요일

베트남 신부 사망 건에 대한 기사를 보고

얼마전 우리나라에 시집온 베트남 신부가 남편 손에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7/16/0200000000AKR20100716178900051.HTML?did=1179m

입에 발린 말 같지만,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저런 분들과 부대끼는 일이다 보니 더 하네요. 통곡하는 부모를 보니, 참.... 딸이 즐겁게 배낭여행을 왔다가 죽었어도 가슴아플텐데, 돈 때문에 팔려오다시피 시집왔다가 저리되었으니 그 속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일로 국제결혼에 대해서 언론보도가 쏟아져 나오는데, 저도 생각나는대로 몇마디 보태볼까 합니다. 제가 별로 아는 것도 없거니와 그나마 생각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해서, 헛소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모든 국제결혼이 다 문제가 되는게 아니라, 맞선형식의 국제결혼만 문제된다는 것입니다[남녀가 사귀다가 결혼하는 것은, 비록 남녀의 국적이 다르다해도 일반적인 혼인과 다를 바 없겠죠].

또 한가지 결정적인 것은, 혼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혼인허가'가 아니라 '혼인신고'라는 것이죠. 국가는 혼사에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들이 '우리 혼인했다'하고 신고를 하면, 국가는 근친혼과 같은 경우가 아닌 한 그냥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 것은 대안을 검토할 때, 항상 깊이 새겨둬야하는 문제입니다.

1 언론 보도에 다루어진 내용들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가. '묻지마 국제결혼'에 대한 비판이 있더군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루어지는 국제결혼을 보면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옛날에 중매쟁이 말만 듣고 신랑신부가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다죠. 그거 보다 조금 나은 수준입니다. 그래서 기사에서는 배우자에 대한 정보제공의 필요성을 강조하더군요. 그런데... 몇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1)정보제공이란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을 겝니다. 사귈만큼 사귀어 보고 오고가는 혼담이 아닌한 누구나 자신이나 자신의 집안 약점은 감추려고 할텐데, 그걸 파헤치는게 쉽지가 않을 겁니다. 이걸 파헤쳐 주는게 국제결혼중개 업체가 해야할 일이겠지요. 그런데 국제결혼중개업체에 그런걸 기대하는건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생각되네요.

국제결혼을 하려는 분들은 잘 사는 분들이 아닙니다[안그런 분도 보긴 했습니다. 자기 건물도 가지고 있고 나이도 30대 중반밖에 안된 분이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런데 그리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당연히 이 분들이 낼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죠[물론 소개비용으로 천만원을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크게 보면 브로커 짓을 하지 않는 한 큰돈 만지긴 힘들어 보입니다]. 씁쓸하게도, 돈이 안되는 곳에 인재가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뻔해지는 거죠. '너 지금 누구 무시하냐'고 하시겠지만, 많은 국제결혼중개업체가 영세하고, 위장결혼브로커 짓으로 돈이나 만지는 경우도 없지 않은 듯 합니다.

이건 합/불법, 등록/미등록 업체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는 아닐 듯 싶군요. 기사에서는 불법미등록업체 양성화 주장도 나오던데, 그게 도움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2)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은 국제결혼을 어떻게 해서든 밀어붙이는 일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배필을 찾을 수 없는 사람/ 좀 더 잘사는 우리나라로 오려는 사람들이 국제결혼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쯤으로 여기는 일이 많죠. 그러면 모든 규제를 뚫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범죄경력/혼인경력/건강상태를 공개하도록 했다지만, 그런 의무의 주체가 될 국제결혼중개업체가 슬쩍 빠지면 그거 잡아내기 쉽지 않을 겁니다[쓸만한 수법으로 짐작이 가는 게 있긴 한데, 쓰긴 좀 그렇군요].{덧붙입니다. 역시나 쓰고 있더군요. 그들이 잘 알고 써먹으니 굳이 감출 필요가 없어 씁니다. 대개 여행사 짓인데, 결혼중개를 하면서 결혼이민자를 사이에 끼워넣고 슬쩍 빠지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행사가 국제결혼을 중개하면서, 여행사는 쏙 빠지고 한국에 시집온 아무개가 우리나라의 아는 사람과 자기 나라의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서 만나는 식으로 하는 겁니다} 더구나 다른나라에서는 문서위조/허위문서 발급이 아주 쉬울 수 있습니다. 허위 번역도 그렇구요. 현실적으로 그거 가려낼 수 있을까요? 물론 문제가 되면 사후에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책임 추궁이 쉬울지 모르겠네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국제결혼을 하려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뜻을 이룰 겁니다.

나. '도대체 이런일이 터졌는데도 양비론이냐'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런 결혼을 하는 여성들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1) 천리타향에 남편 하나 믿고 시집왔더니 남편이 패더라. 도저히 못살겠어서 헤어졌다- 우리나라라면 치를 떨면서 돌아가는게 정상 아닐까요? 그런데 대부분 돌아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십대 아가씨가 얼굴밖에 모르는 마흔/쉰넘은 아저씨에게 왜 시집을 오겠습니까. 노리는 게 있으니까 오는 겁니다.

이게 기사에 나온 이혼건수 급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인 배우자의 잘못으로 결혼이 깨지면, 외국인 배우자는 우리나라 영주권/국적을 딸 수 있죠. 그래서 서로 짜고 이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외국인 배우자가 이혼소송을 걸면, 우리나라 사람은 재판이 걸린 걸 알면서도-송달 받고서도- 법정에 보이지도 않거나, 나와서는 상대방 주장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죠.

그게 잘 안되면, '남편 갈아타기[아내갈아타기]'도 합니다. 그냥 도망가버린 다음 새 배우자를 찾아내는 겁니다. 브로커를 통하면, 그리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신원보증 서주는 사람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해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따면, 다른 사람을 초청할 수 있겠죠. 그건 돈이 되는 일이구요.

(2)'이혼을 하면 불체자로 전락'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마냥 동정적으로 볼 일이 아닙니다. 이혼을 하면 바로 불체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혼을 하고도 안나가고 버티다가 체류기간이 끝나야 불체자가 되는 겁니다[체류기간이 끝나기 직전에 헤어졌다면? 한달쯤 국내생활을 정리할 시간을 줍니다].

위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말도 안통하는 나라에 남편하나 믿고 왔는데 그 남편이 두들겨 패서 갈라섰다면 왜 돌아가지 않을까요. 이건 애초에 혼인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 밖에 안되는 겁니다.

2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결혼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하죠. '가난하게 살면 뻔한 사람들 아니냐. 그러면 아무래도 마누라를 잘 패지 않겠느냐. 그래서 일어나는 일들 아니냐'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네요.

3. 마지막으로, 정말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이런 일은 더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지는 말씀드리기가 그렇네요. 읽고 해보는 놈이 있을까봐.


***글 다 쓴 뒤에 덧붙입니다.
제가 결혼이민자 가운데 딴 생각을 품고 온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본다 하더라도, 그들을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저들과 우리의 차이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다른 방법이 있는가 뿐일지도 모릅니다. 팔려오다시피 하는 결혼, 좋아서 하는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갈라서서는[위장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당한 분입니다], 공장에서 한달에 80 벌면서 아들 기르고 사는 분을 본 적 있습니다. 그 분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제가 좋지 않게 본다하더라도, 그런 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제 고모들 가운데도 국제결혼 하신 분들 계십니다. 물론 이런 결혼은 아니었습니다만, 어찌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혼사였죠. 막말로 고모부들이 가지고 놀다 차버렸어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는 상황이습니다만, 하늘이 도우셨는지 고모부들이 착한 분들이라서 지금까지 잘 살고 계십니다. 이 일을 하면서, 그동안 전혀 감도 못잡던 고모들의 사연이 저들에게 비춰지는 것 같더군요.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내 고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임을, 저들의 고향에는 내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일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불과 수십년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뻔하거든요.

이런저런 것들 다 생각하다보면.... 늘 씁쓸해지더군요.

2010년 7월 10일 토요일

관계

불체자 신고를 받고 단속을 나가다 보면, 불체자/고용주가 아닌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습니다. 공장에 단속을 나갔을 때 직원들이라던가, 시골 민가에 단속을 나갔을 때 이웃이라던가.... 한마디로 제3자인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 사람들의 태도나 반응을 보면, 불체자나 고용주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이 갈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불체자의 이웃들은 마치 자기가 단속된 듯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어떤 불체자의 이웃들은 저희에게 따라오라며 앞장 서시기도 하죠.
공장을 갔을 때도, 어떤 공장 직원들은 마치 저희들이 자기 집에 쳐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싸우려 들지만, 어떤 공장 직원들은 팔짱끼고 구경만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보는 곳에서 슬그머니 어디에 숨어있다고 가르쳐 주시기도 하죠.

이건 한국인만의 일이 아닙니다.
공장에 단속을 나가면 합법체류자가 저희를 유인하기 위해 먼저 달아나고 불체자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곳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민가에서 외국인을 검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합법적체류자 였죠. 그런데 그 분이 서툰 한국어로 손짓 발짓 해가면서 자기 앞 방에 불체자가 있는데 언제 돌아온다고 알려주더군요. 저희 차에 함께 타고는 다른 불체자들이 숨어 있는 곳을 직접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공장에 단속을 나갔을 때는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이 자기 공장의 불체자가 지금은 없는데 돌아오면 신고하겠다면서 전화번호를 알려달라시던 일도 있었고, 언젠가는 저희가 단속한 불체자가 자기와 함께 있던 다른 불체자를 찾아주겠다며 앞장서셨던 일까지 있었습니다.
단속된 불체자가 자기 짐을 가져가겠다며 저희를 데리고 자기 숙소로 가는 일도 많습니다. 가보면 거의 다른 불체자도 있죠. 챙겨가려는 짐이란게 별 거 아닌 일이 많은데[새 구두와 입던 옷가지 조금이라던지], 저희와 가면 함께 있던 다른 불체자가 잡힐거란 것 뻔히 알면서도 그녀석 잡히던 말던 나는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겠다 뭐 이런 거죠.

단속된 불체자와 함께 일하던 한국인들이 이별을 안타까워하며 작별하시는 일도 자주 있죠. 고용주도 그렇습니다. 꼭 면회가겠다며 지갑에서 되는대로 돈을 꺼내 불체자에게 용돈을 찔러주시던 고용주나, 벌금은 자신이 얼마든지 내겠으니 불체자가 계속 있게 해달라시던 고용주도 있었습니다. 거꾸로 단속된 불체자가 밀린 임금을 포기하면서 고용주를 보호하려던 일도 있었습니다[불체자를 쓴 고용주도 불법고용으로 범칙금을 내게 되는데, 불체자가 -밀린 임금까지 포기하면서- 자신은 그 고용주 밑에서 일한 적 없다고 주장하는 거죠].

이야기를 쓰다보니, 문득 언론이 잘못 만들어낸 상식[?] 하나가 생각나네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불체자를 '미등록이주노동자'라 부르는 언론들의 기사에 '고용주들이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임금을 떼먹기 위해 불체자로 신고하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가 가끔 나왔죠.
글쎄요....제가 우리나라의 모든 불체자의 모든 사정을 알지는 못합니다만,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고용주가 불체자와 관계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불체자는 강제퇴거 되면 그만이지만[이제는 범칙금이 부과됩니다만, 얼마전까지 법률에 규정이 있어도 불체자에게 범칙금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고용주는 불법고용으로 범칙금을 부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범칙금이 꽤 쎕니다. 몇십만원정도가 아니죠. 이게 고용기간이 길면 더 늘어나고, 고용한 불체자 수만큼 곱해집니다. 여기에 양벌규정이 보태지면? 정말 곡소리 나는 액수가 되버립니다.
더구나 불체자를 고용한 업체는 대부분 기숙사를 제공하다보니 불체자는 잡아넣고 고용주는 빠져나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고, 불체자를 단속하면 강제퇴거 전에 체불임금정산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면, 생전 처음 보는 저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이 가는 때가 많습니다.
'역사앞에서'라는 책을 보면, 후기에서 글 쓴 분의 아내가 한국전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로 이웃과 잘 지낸 것을 꼽으시더군요. 그 구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는 어떨까요. 아마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할 듯 싶습니다. ^^;;

2010년 7월 3일 토요일

잊혀지지 않는 꿈 둘

살다보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꿈을 꾸는 일이 가끔 있죠. 저도 두엇 있습니다. 아마 군 제대한 다음, 복학하고 공부하던 시절 꾸었을 겁니다.

1.
문득 심하게 썩은 거구의 시체가 제 앞에 나타나서는, 제 손을 덥썩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놀라지 마라. 내가 네 증조할아버지다. 너는 절대 공부하지 말아라. 그냥 돈이나 벌어라'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깼습니다.


2.
어떤 귀신이 붉고 푸른 구슬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냥 귀한 구슬들이 아니라, -마치 여의주처럼- 어떤 힘과 관련된 구슬들이었습니다.
그걸 제가 주웠죠. 구슬들을 돌려주러 귀신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들어가니, 어항에 오색찬란한 보석으로 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더군요.

귀신에게 구슬들을 돌려줬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보답을 하겠다며 그 물고기들을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지라더군요.
제가 귀신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죽지 않느냐?'
물고기들이 귀신 손에서는 잘 살지만, 내가 가져가면 죽을테니 안 가져가겠다는 뜻이었죠.

이 말을 들은 귀신이 희미하게 웃으며-그깟 일로 복을 차느냐는 얼굴로- 저를 빤히 쳐다보더군요.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네가 이루려던 꿈은 못 이루겠지만, 삶이 그럭저럭 견딜만은 할 것이다'



저도 나름 꿈을 품고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고,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간신히 밥벌이를 하게 되었죠.
그냥 처음부터 돈을 벌었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낫게 살고 있겠죠.
언젠가 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썼지만, 동네머슴으로 아들을 대학에 보냈다가 집안이 박살난 증조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충분히 하실만한 말씀입니다.

아무튼 그냥저냥 밥은 굶지 않게 된 듯 한 걸 보니 귀신의 말도 틀리진 않은 듯 합니다.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어이없는 소문

중국인 불체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을 하나 듣게 되었습니다.
천안함 사태에 중국정부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데 대한 보복으로, 한국정부가 중국인 불체자를 다 쓸어버리기로 작정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불법체류 10년하면 영주권 준다'는 소문과 맞먹는 황당함으로 큰 웃음을 주더군요. ^^;;
-고칩니다. 저나 다른 일선직원들의 생각과 달리, 이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고 저 소문이 난 사정도 있더군요-

우리나라에 불법체류를 하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인입니다.
더구나 다른 불체자다발국가들과 달리, 중국에서는 밀입국도 많죠. 밀입국은 항공편으로는 힘들고[아주 불가능하진 않습니다만], 선박편으로 많이하게 되는데, 다른 국가들은 거리가 있다보니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다롄 등지에서 밀입국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생긴게 비슷하다보니 단속이 쉽지 않고[신경을 곤두세우게되죠], 정말 사람 성질 건드리는 일이 많다보니 마찰도 많습니다. 어제도 몽골불체자가 단속하는 직원분의 손목을 꺾어서 전치6주가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덧붙입니다: 손가락들이) 부러졌다는군요]. 만약 일부 중국인들처럼 소리지르고 쌍욕을 퍼부으며 그랬다면[물론 중국인이라고 모두 저러는 건 아닙니다. 정말 순한 분들도 많죠. (덧붙입니다: 우즈벡 그밖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욕하고 덤비는 사람들 많죠. 중국만 저러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도 가만두지 않았겠지만, 몽골인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_-;; 가만히 있으니 저희도 손을 못대겠더군요. 멧돼지같은 덩치가 마치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얼굴로 '괜찮아, 집에 가면 돼'하는데 이걸 때릴 수도 없고....-_-;;

아무튼 이리해서 중국인 불체자는 특별취급을 받게 되는데(바로잡습니다. 중국불체자들이 다른 불체자들에 비해 특별취급을 받는다는게 아니라, 중국이 불법체류다발국가라서 특별취급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제가 잘못 써놨네요) 그게 저런 소문으로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천안함하니 생각나는게 있네요. 이 사태와 관련, 당국에서 보여준 모습들 때문에 여러가지 의혹이 끊이지 않았죠. 각종 음모론에 빠지는 사람들도 많지만, 많은 분들이 군시절 '가라보고'가 생각나셨을 겁니다[저는 경교대출신입니다만, '가라보고'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제가 그 문제에 대해 아는 건 없습니다만, '가라보고'가 쌓여서 위에서는 실상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저렇게 된게 아닌가 싶어요.

그 꼴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떤 사건이 터진다면, 우린 안 저럴까? 아마 저희도 저럴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다음, 처음으로 맡았던 상부지시 건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러저러한 지시를 받았다고 하자,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도대체 누가 그런 걸 시키더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머릴 굴려도 답이 안나와서, 지시한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반항하는 걸로 생각하고는 한소리 하더군요. 결국 저도 '가라보고서' 하나를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교육이 있어서 자릴 비웠는데 저 대신 다른 분께서 그 건으로 세번을 깨지셨고, 나중에 알고보니 그 일로 저희 기관장에게까지 전화가 왔더군요.

그 일을 겪고나니 정이 뚝 떨어지더군요. 할 수 있는 지시는 얼렁뚱땅 하고, 답이 안나오는 지시는 조용히 가라보고서로 때우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하더군요. -_-;;

2010년 6월 19일 토요일

위장결혼들

모든 이야기를 다 쓸 수는 없고, 적당히 얼버무려 씁니다.

1. 제가 맡았던 일은 아닌데, 여든이 넘은 노인이 위장결혼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담당자가 위장결혼이란 걸 밝혀내자, 그 영감님이 배째라는 식으로 따지기 시작했답니다. 시골 구석에서 별다른 수입도 없이 사는데, 이 여자가 돈을 주는게 도움이 된다고.
결국 담당자가 그냥 넘어가 줬다는군요.

2. 어떤 여자가 위장결혼을 했습니다. 조사해보니 남자는 정신지체 장애인, 주소라고 써둔 곳은 시골 폐교의 교실. 신청했던 건은 당연히 불허가 되었죠.

다른 건으로 제가 조사를 나갔습니다. 어마 뜨거라 싶었는지 다시 붙어살고 있더군요. 어떻게 달랬는지 뭘 받았는지 남자도 위장결혼이 아니라고 하고[사리분별 못하는 저능은 아니고, 챙길 건 챙길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서 써서 올렸습니다. 결정권자가 불허를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허가가 나가면 여자는 다시 나가서 살테고, 다음에 허가가 필요할 때 쯤 다시 돌아와 살겠죠.

3. 어떤 남자가 국제결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처녀총각이 만나서 결혼하는데, 여자에게 애가 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남자집안에서 그대로 밀어붙이더군요. 둘이 죽고 못사는 사이도 아니고 얼굴만 한두번 보고 하는 결혼에서 말입니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남자가 정신지체장애인이더군요.
그 집안에서는 아들을 돌보기에 지친 듯한 눈치였습니다. 며느리를 맞아와서 아들을 떠 넘기려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십년중풍에 효자 없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제 할머니께서 치매와 풍으로 고생하시다 가셨는데, 돌아가셨을 때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슬픈 게 아니라 홀가분했죠. 그 뒤로, 가끔씩 뭔가가 가슴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긴 했습니다만.
아마 자식들만 그런게 아니라 부모도 그런가 봅니다.

아무 여자나 데려와서 그런 아들을 떠 넘기는 부모, 그런 남자란 걸 뻔히 알면서도 시집을 오는 여자.... 아마 곧 여자는 달아날테고, 부모는 분노에 불타올라 다시 저희를 찾아오겠죠.

나만 이런 것일까

얼마전, 출장을 나갔다가 단속에 합류할 일이 있었습니다.
출장을 나갔다가, 우연히 불체자로 보이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단속반에게 알려주고 제 일을 했죠. 제 일을 마치고 단속반에 합류했습니다. 그 사람이 잡혀있더군요.

마침 밥 때가 되었습니다. 단속을 하다가 밥때가 되었을 때, 사무소로 돌아가서 먹을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많죠. 그러면 보통 저희는 근처 식당에서 돌아가며 밥을 먹고, 단속된 불체자는 차 안에서 빵과 우유를 줍니다. 식당에 데리고 들어갔다가는 사고터질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런데 그 날은 단속된 사람이 그 사람까지 둘 밖에 안되고[더구나 모두 여자], 단속시 태도가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도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사고 위험이 적다고 본 것입니다]. 저희가 아니었다면 아무 일 없었을 사람과 겸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참.... 모두들 웃고 떠들며 잘 먹더군요- 잡은 사람이나 잡힌 사람이나. 검찰쪽에서 '수사하다가 친해진다'는 말이 있는 모양인데, 그제서야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저 혼자 고개 푹 숙이고 말없이 밥만 먹었습니다.

그 때까지만해도, 그 사람은 저 때문에 잡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짖궂은 직원들이 저 때문에 그 사람이 잡혔다고 말해주더군요. 그러자 그 분이 귀엽게 투정 부리듯 왜 그랬냐고 하는데.... 참 기분 뭐했습니다.

뭐 그 분이 속마음을 감추고 겉으로만 그랬을 수도 있었습니다만...

아무튼, 남들에게는 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나 혼자만 낑낑거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저는 이렇게 타고 난 모양입니다.

2010년 6월 2일 수요일

오해

해외여행 다녀보신 분들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해외로 나가거나 국내로 들어올 때 출입국심사란 것을 하게 되죠. 그때마다 여권의 사진과 얼굴을 비교해보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할 때면, 많은 분들이 싫어하십니다. 대개는 애써서 다른 곳을 쳐다보시며 외면하시죠. 물론 웃으며 받아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벌컥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구요.사진과 얼굴이 달라보여서 좀 오래-그래봐야 몇초- 보면, 거의 정색을 하고 뭐 잘못되었느냐며 물어보십니다.


그런데 얼마전, 제가 어떤 여성분을 심사 할 때였습니다.

여기에 쓸 수는 없습니다만, 뭔가 미심쩍은 게 있어서 사진과 얼굴을 번갈아가면서 오래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되게 화내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이 여자분, 싱글벙글하시더군요. 무슨 좋은 일 있어서 화 안내고 그냥 넘어가려고 하나 싶었습니다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더 오래쳐다볼 수록 더 좋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여자분이 마침내 입을 여시더군요.

'저 맞아요. 제가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15kg빼서 달라보이는 거에요'

그러니까, 살을 너무 빼서 제가 못알아 보는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살이 빠져서 제가 그런 게 아니었다는 것이죠. -_-;;
볼살이 조금 줄긴했지만, 살 때문에 못알아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결국 심사해드렸습니다. 여권에 심사인을 받고 가시면서, 정말 좋아하시더군요.
정말 여자분 입장에서는 기분좋은 오해였고, 제 입장에서도 민원을 막아준 오해였습니다. ^^;;

2010년 5월 15일 토요일

사람이 싫어집니다

일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1. 위명여권으로 들어온 사람의 내연녀가 찾아와서 하소연을 늘어 놓다가, 몸부림을 치면서 대성통곡하더군요. '참 불쌍하구나' 하고 있는데, 주변 선배들을 보니 차가운/짜증이 가득한 얼굴들이었습니다. 너무한거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다음 순간, 그 사람이 눈물 한방울 묻지 않은 얼굴에 또랑또랑한 목소리[울면 눈물/콧물 나오고 목이 메어 말을 못하죠]로 '자기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더군요.
이런 사람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입국거부되자, 직원의 다릴 붙잡고 몸부림을 치더군요. 물기하나 없는 보송보송한 얼굴로 대성통곡하면서[물론 입국거부될만한 사람입니다. 여기에 쓸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곳에 막무가내로 들어오더니, 막는 분이 자신을 밀었다고 소리지르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여자가 내몸에 손만 대보라며 소릴 지르는데, 남자직원들이 참....
우연인지 모두 조선족 아줌마였습니다.

저들에게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큰소리 칠 수 있는 나라, 무슨 잘못을 해도 억지를 쓰고 드러누우면 공무원이 쩔쩔매는 나라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뭐 저희라고 성질이 없겠습니까만, 나중에 언론/인권단체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오면 깨지는 건 저희라서 꾹 참게 됩니다.

공무원은 그래야한다고 믿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위기가 확립되어야만 시민들이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하지만 단속권한을 가진 공무원에게도 저러는 사람들이 평범한 시민을 어떻게 대할까요. 그 때 관계 공무원이 나타나서 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 없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물론 그렇게 믿는 분들은 공무원이 잘못한 것이라 말씀하시겠죠.

2. 어떤 외국여성이 농촌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이혼하게 되었고, 이제는 돌아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정이 딱했는데, 어떤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일자리를 주고 머물 곳도 주겠다고. 그런데 그 여성이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그 사람이 자기 집에 있으라고 했더군요. 뻔하죠. -_-;;

3. 여기엔 쓰지 못합니다만, 제가 일하는 곳에도 좋은 분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체자/ 불체자 고용주/ '불체자를 돕는' 사람/ 그리고 저희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꼴들을 보면서, 왜 이렇게 되는가를 생각하다보면 사람이 싫어지게 됩니다.
물론 안그런 사람/일들도 많습니다만, 지금은 저런 일들과 사람들이 머릿속에 들어차 있네요.

오해를 막기 위한 글

제 블로그에 오신 분들께서는 불체자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읽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남은/ 제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일들을 쓰다보니, 읽으시는 분들은 그런 일들만 일어나는 것으로 잘못 아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말씀드려둡니다.

단속된 불체자들이 모두 죽네사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속되었을 때 죽을 상 쓰면서 절망감에 빠져있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못됩니다. 수갑차고 앉아서 자기들끼리 낄낄거리고 히히덕거리는 사람이 더 많죠[이런 사람들은 열에 두엇쯤 됩니다. 주로 동남아친구들이 그러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같이 수갑차고 앉아 히히덕거리는 걸 보면 참 낙천적이구나 싶어요]. 나머지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멀뚱멀뚱 앉아 있습니다.
도망가다가 잡혀서 가장 먼저 한다는 소리가 '샤워할 수 있냐'였던 친구도 있었고, 잡힐 때는 대판 싸우더니 보호실 들어가자마자 텔레비전 보면서 요가 따라하는 아줌마도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간단합니다. 불체자는 강제퇴거-한마디로 자기 나라 돌아가는 겁니다- 되는 것이지, 지옥불에 처넣어지는게 아니거든요.

2010년 5월 9일 일요일

스쳐간 짧은 생각 20100509

1 불체자 단속을 나갔습니다. 수갑을 안차려고 몸싸움을 벌이면서 그 사람이 그러더군요.

'우리 나쁜 사람 아니야. [ ]-자신의 나라 이름을 말했는데, 가려둡니다-에도 한국 사람 많아'

정말 씁쓸했습니다. 그 사람에겐 말 못했지만, 돌아오는 차안에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맞아. 당신들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건 우리도 잘 알아. 그걸 잘 알면서도 당신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당신네 나라도 잘살게 되면, 아마 당신들도 이렇게 하겠지.
당신나라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은 불법체류를 별로 않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도 미국/일본가서 불법체류 많이 해. 내 사촌형도 미국에서 불법체류했던걸.
지금 당신이 받는 대접이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한국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고/ 국제적 기준에서 봐도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당신네 나라에서 법을 어기고 이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면, 우리도 할말은 없어.'

하지만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2. 불체자들[때로는 고용주도]의 딱한 사정을 알면서도, 눈앞에서 성질부리고 지랄하면 저도 모르게 욱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노숙자 일보 직전에 있는 사람 하나 앞세워서 책임 떠넘기고 빠져나가는 업주가 성질 부리는 걸 볼 때면 더하죠.

똑같이 딱해도, 온순한 분들이 어떻게든 책임을 줄여보려고 머리쓰면 모르는 척 속아주지만, 성질부리면서 그러면 '오냐 끝까지 캐내주마' 하게 되죠[이 일은 제가 맡은 일은 아닙니다].

그러다가도 일이 끝나고 나면, 참 씁쓸해져요. 그리고 일을 할 수록 이런 느낌마저도 사라져가는 것은 더 뭐하고.


아무튼 마음이 편치 않은 일들입니다.

2010년 5월 5일 수요일

알 수 없는 인생

요즘 위장결혼이 아닌 것이 명백한 사람들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이 사람들이 처음 결혼하려 할 때, 내가 이들을 맡았다면 어떻게 보았을까?

저희는 모사드도 아니고, 관심법같은 것을 쓰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상식적/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되면 의심을 하게 되고, 저희가 알고 있는 위장결혼 수법과 브로커가 써먹을만한 법제의 허점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게 되죠.
그런데 문제는, 여느 사람들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는 걸 보면 아주 어설프고, 생각없이 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아내를 맞아오는 것인지, 어디가서 강아지를 한마리 얻어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결혼[말이 너무 심했나요? 그런데 딱 그 꼴입니다]을 보면,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죠.

그런 결혼들....쉽게 깨져버리기도 하지만, 또 어떤 집은 잘 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신랑신부 얼굴도 모르고, 중매자의 말 몇마디 들어보고 결혼을 했어도 아들딸 낳고 잘 사는 집이 많았다죠. 마치 그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결혼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봐서는 정말 결혼하려는 것인지, 얼마 받고 위장결혼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브로커들도 머리가 있으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똑같거든요. 도청/고문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가려내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저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지 않게 하려면 위장결혼을 막을 수 없고, 위장결혼을 막으려면 억울한 사람이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진범 열을 놓쳐도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처벌받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그건 형벌의 적용에 관한 것이죠. 이런 일에는 맞지 않습니다. '너 교수형이야!/감옥에 가!' 와 '너 우리나라 못들어와. 그냥 너희나라에서 살아!'는 아주 다르죠.

위장결혼 그 까짓 거 내버려두면 안되냐고 하실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30년대 태어난 영감님에게 50년대 태어난 중국아주머니가 시집와서는, '국민의 배우자'로서 쉽게 국적을 취득하죠. 그리고 나서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혼을 하고, 남편/아들/딸들을 불러들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국민의 배우자/자녀'로 쉽게 국적을 취득하고, 다시 아내/남편[그러니까 처음 시집온 아주머니의 며느리/사위들]을 불러들이게 되죠. '뭐 그냥 함께 잘 살면 되지'하실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닙니다. 종로에서 폭탄 터지고 강남에서 총질하는 꼴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봐야지, 30년 뒤 이 땅에서 벌어지게 만들 수는 없죠.

아무튼 저렇게 어설픈[?] 결혼들을 보고 있으면, 참 답이 안나옵니다. 참된 결혼인지 위장결혼인지 가려내기도 쉽지 않은데, 참된 결혼도 쉽게 깨져버리는 일이 많고, 위장결혼인데도 정들어서 살림 차리고 사는 일도 있습니다.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여기에 브로커들에게 돈 받고 위장결혼 해 준 사람 또는 억울하게 의심받은 사람이 '악성 민원인'으로 나타나면.... 참 골치 아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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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입니다.

얼마전, 불허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밤에 한숨도 못잤다는군요.
제가 썼던 보고서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다시봐도 수상한게 많았습니다.
그러나 찾아온 분의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보면, 내가 정말 제대로 본 걸까 싶어집니다.

선배님 한분이 그러시더군요. 사람사는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 좋게만 보면 아무 문제없어 보이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수상한게 정말 많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 분이 그랬죠.
사람사는게 딱딱 맞아떨어지는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저런 일이 맡겨지면 차갑게 이것저것 뜯어볼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보고서엔 이러저러한 면은 의심스럽고 어떠어떠한 면은 정상적인 것 같다고, 솔직하게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걸 읽어보는 분은 더 헛갈리겠죠. 찾아가서 눈으로 본 저도 모르겠는데, 보고서 몇장 읽어보는 사람은 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솔직하게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2010년 4월 24일 토요일

만삭의 불체자

불체자부부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나갔습니다. 여기저기 물어보니 아내쪽이 만삭이라네요.
같이 간 분께서 '이번에는 좀 합법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더군요[불체자라는 신고받고 가보면, 합법체류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냥 허탕치고 돌아오죠]. 불체자라면 눈에 불을 켜고 잡으시는 분인데, 그 말씀을 하시면서 스스로도 놀라워하시더군요.

아니었으면 했는데, 역시나 불체자였습니다. 아내는 배가 잔뜩 불러서 산부인과에서 받은 수첩까지 보여주네요. 막달이랍니다. 이를 어쩐다?
그 분께서, 아내는 안걸린 것으로 해 줄테니까 자진출국을 하라고 얘기해줬습니다. 그게 가장 낫다고. 우리말을 몇마디씩만 하는 남편과 거의 못하는 아내에게 이걸 설명해주느라 애먹었는데,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돈 받을 거[체불임금 같은] 있냐고 물어보니, 다행히 방 보증금 말고는 없다네요. 아무튼 보증금도 돌려받아야 하고, 아내가 만삭이라 비행기를 못타니 바로 나갈 수가 없답니다. 결국 아내는 남겨두고 남편은 데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아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서 아내도 같이 데려가달라는군요. -_-;;
보호실이나 보호소가, 어떤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인간이하의 생활을 강요하는 곳은 아니지만, 만삭의 임산부에게 내집같이 편안한 곳은 아닙니다. 부부가 함께 있을 수도 없구요. 그걸 얘기 해주고[제대로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남편만 데리고 나오는데 또 애먹었습니다. 울먹이는 아내를 남편이 달래게 한 다음, 수갑은 아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채우고 데려왔습니다.
아까 만삭의 임산부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분께서, 걱정스런 눈길로 꼭 데려가야 하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잘 될거라고만 말하고 왔습니다.

원래 단속된 불체자는 핸드폰을 못 쓰게 하는데, 이 사람은 그냥 쓰게 놔뒀습니다. 가면서 계속 아내와 통화를 하더군요.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만, 말투와 목소리로 봐서 아내와 통화하는 것이란 걸 알겠더군요.
가면서 우리끼리, 이걸 어쩌냐, 보호일시해제를 해야하는 거 아니냐, 소장님에게 말해야 하지 않겠냐 말이 많았습니다. 제가 그 나라 대사관에 아내를 돌봐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게 어떻겠냐고 했습니다만, 별 소용없을거란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도 못사는 나라 외교공관에서 이런 일까지 나서줄 리가 없다고.
그 사람에게도 몇번이나 당신 정말 친구 없냐, 아는 사람도 없냐, 있으면 전화라도 해보라고 했습니다만, 친구라고는 저 먼 곳에 하나 있어서 도와줄 수가 없답니다.

보호실에 다른 외국인과 함께 있기 때문에, 보호실에 들어가기 직전 핸드폰을 받아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전화를 하게 해줬죠. 혹시나 싶어서 그 나라 대사관의 전화번호도 적어줬습니다. 대사관에 전화하면 나갈 수 있냐고 묻더군요. 그건 아닌데, 같은 나라 사람이니까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나 보라고 말해줬습니다. 전화를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전화통화는 다른 보호외국인들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데리고 나와서 시켜줬습니다만, 다른 보호외국인들이 대강 눈치 챈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저놈들은 뭘 받아처먹어서 쟤만 잘해주나 하는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이 사람들도 우리가 모질게 굴지는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임신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 핑계로 더 버텨볼 수는 없을까 궁리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내는 자신에게 유리한 진단서를 떼러 아주 멀리까지 가는 모양이더군요. -_-;; 놀라서 아기가 일찍 나올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를 신고한 분에게서 항의전화가 왔습니다. 왜 안잡으러 오냐고. 단속을 나가서 남편은 데려왔고 아내는 만삭이라 놔둔거라고 말씀드리자, 만삭이라고 봐주는게 어디있냐 따지고는 남편은 확실히 잡아갔냐고 다져 묻더군요. 저와 함께 가셨던 분께서 해명하느라 애먹으셨습니다. 웬만하면 저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데.... 불체자 부부는 순박해보였습니다만, 저희앞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군요. 불체자 부부가 그 분께 무슨 나쁜 짓을 했다면 그런 사정을 말씀하셨을텐데,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보아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사이가 나쁜 것 같더군요.

결국 불체자 부부가 출국명령을 받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된 듯 합니다. 출국명령은 출입국관리법 68조에 따른 것입니다. 남편은 풀어줄테니, 정해준 날자까지 한국생활 정리하고 제발로 나가라는 것쯤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분은 불쌍한데 그냥 여기서 살게 하면 안되냐고 생각하실테고, 다른 분은 왜 확실하게 잡아서 내쫓지 않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제가 보기엔 괜찮은 마무리 같습니다. 임신했다고 아예 눌러앉게 해줄 수는 없는 것이고, 가둬뒀다가 쫓아내는 것 보다는 남편이 아내 돌보면서 한국생활 정리할 기회를 주는게 나을 것 같거든요.

많은 분이 모르시겠습니다만, 가끔씩 저희가 병든 불체자를 도와준 일이 미담으로 홍보되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저도 생 거짓말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겪어보니, 생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불체자 부부와 태어날 아기는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요? 그나마 인정을 쓰더라고 생각해줄지, 임신 막달인데도 남편 잡아가더라고 욕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 부부를 신고한 사람과 남편이 전화쓰는 것을 눈치챈 다른 불체자들은... 저희 욕을 아주 많이 하고 있겠죠. -_-;;

2010년 4월 17일 토요일

이른바 '길거리단속'에 대해서

제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불법체류자 단속입니다. 가끔 문제가 생기죠. 얼마전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인권위 결정이 내려지고 언론보도가 여기저기 나오더군요. 저희를 나쁘게 보는 사람들이 '길거리단속'이라면서 공격하는 사안이었습니다. 제가 잠시 있던 사무소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그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뭐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른바'길거리 단속'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해서 좀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을 써볼까 하다가도 자꾸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워낙 신출내기라서 아는 것도 없거니와, 무엇보다도 변명만 늘어놓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이 옳다고 믿어버리는 일이 많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저희의 입장을 누군가-그게 저같은 애송이라고 해도- 남겨 두는 것이 아무런 쓸모없는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고가 어떠한 맥락에서 터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 조금 더 생각하게 보게 되겠죠.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그게 쓸데없는 일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1 먼저 '길거리 단속'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뭔가 문제있는 게 아니냐, 해선 안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슨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길에서 단속하는 '그 자체로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보죠. 경찰이 길거리에서 도둑을 보았습니다. 그 경찰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잡아야겠죠. 경찰이 길에서 도둑을 보고 잡는 것이 '그 자체로서' 문제 있는 행동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저희는 불법체류자를 강제퇴거[출입국관리법 46조. 행정상 즉시강제입니다]시킬 / 특별사법경찰관으로서 형사처벌하거나 통고처분[출입국관리법 93조의 3, 94조, 102조]할 권한과 책임이 있습니다[다만 실무상 형사처벌/통고처분은 거의 않고, 강제퇴거만 시킵니다]. 길거리라고 해서 불체자를 그대로 놔두는 것은 직무유기/태만에 해당할 겁니다.

2 '길거리 단속'은 왜 하게 될까요? 솔직히 실적은 올려야 하는데 정보는 없을 때 하기도 합니다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저희가 일을 하며/일을 떠나서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길에 불체자들 몰려 다니는 것 보면 무섭다는 것입니다. 특히 저녁 때 으슥한 곳에 불체자들 모여 있는 것 보면 정말 두렵다는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물론, 불체자들이 무슨 사회적 병균/인간쓰레기인 줄 아느냐, 통계에 따르면 이들의 범죄율이 일반국민보다 낮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밑에 따로 쓰겠습니다.

저희가 해결해 드릴 수 있는 문제는 저희가 해결해 드려야죠. 불체자들은 뭉쳐있습니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죠. 특히 단속과 관련된 정보는 빠르게 퍼집니다. 예컨대 저희가 건설현장 함바집에 단속을 나가면, 그 뒤로는 함바집에 안오고 다른 식당에 가거나, 배달을 시켜먹는 일이 많습니다. 길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에서 단속을 많이 했더니, 불체자들이 공장 밖으로 나오질 않고 틀어박혀 지내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해서 사람들은 안심하고 다닐 수 있게 됩니다.

3 '길거리 단속'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아마 '길거리 단속'과 관련해 문제되는 것은 이 부분일 것입니다.
가. 먼저 외국인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합니다[출입국관리법 27조에 의해 국내체류외국인은 신분증을 가지고 다녀야 하죠]. 신분증이 있다면 신분증을 확인하고 바로 끝나고, 신분증이 없다면 단속차량으로 데리고 가서 신분을 확인합니다. 신분에 이상이 없고 그냥 신분증을 안가지고 다닌 것 뿐이라면 [원칙대로라면 출입국관리법 98조에 의해 벌금형에 처해야 합니다만] 그냥 보냅니다. 불체자라면 출입국관리법 51조 3항에 따라 긴급보호를 합니다.

나. 이때 출입국관리법 82조 3호에 따라 저희 신분증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은 아무 일 없을 거란 걸 아니까 가만히 있습니다만, 불체자는 -바보가 아닌 한- 바로 달아나 버리죠. 신분증 다시 지갑에 넣고 쫓아가려면 늦습니다. 그렇게 놓치는 것은 그냥 허탕쳤네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만, 불체자가 달아나 보겠다고 무단횡단하다가 차에 치거나/ 뛰어내리거나/ 부딫쳐서 다치면 큰일이죠.
그래서 일단 둘러싸거나 손으로 붙잡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아니까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나 불체자는 반항하죠. 그러다보면 신분증 제시는 커녕[그 상황에서 신분증 제시해봐야,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습니까] 몸싸움을 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다. 그런데 동남아/아프리카처럼 한눈에 외국인임이 드러나는 경우는 괜찮습니다만, 중국인은 우리나라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문제는 불체자 가운데 가장 많은 것도 중국인이고, 단속시 반항이 가장 심한 것도 중국인이란 것이죠.
얼마전처럼, 국민을 외국인으로 오인하고 잡은 사고는 모두 중국인으로 잘못 안 경우입니다. 길가는데 갑자기 오더니 둘러싸거나/붙잡으면 싸우려 하게 되죠. 아니면 저희를 강도로 오인하고 달아나게 되구요. 그러면 저희는, '불체자 같아 보여서 신분확인하려 했더니 달아나네? 정말 불체자라서 저러는 구나' 해서 잡게 되는 거죠.
미리 신분증을 제시하고 양해를 구하면 이런 일이 없는데,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러지 못하게 되는 때가 많으니까 사고가 터지는 것이죠. 이런 문제는 검/경에서 범인을 체포할 때도 똑같이 나타난다는군요. 그렇다고 언제나 신분증 먼저 제시하게 되면, 위와 같은 문제[불체자가 달아나다가 차에 치는]가 생기게 되겠죠.

이른바 '길거리 단속'이라는 데 대해 제가 아는대로 써 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솔직하게 써 보려했습니다만, 되도 않는 변명 늘어 놓는다고 느끼실지, 그래서 저런 사고가 터지는구나 싶으실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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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나온 '불체자가 무슨 사회적 병균이나 인간쓰레기인 줄 아느냐, 통계상 범죄율이 더 낮다'는 말씀에 대해서 좀 써보죠.

1. 불체자는 사회적 병균이나 인간쓰레기가 아니라는 말씀은 옳은 말씀입니다. 저들이나 우리나 착한사람은 착하고 나쁜 사람은 나쁘죠. 흔히들 생각하는 '사회적 병균' 따위는 감옥에도 없습니다. 다 나름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죠. 불체자는 가난 때문에 돈벌러 왔을 뿐, 딱히 우리보다 더 나쁜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람들 가운데 성인군자/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분은 몇 없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선과 악 사이에서 흔들리는, 또는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둥둥 떠다니는 존재죠. 그래서 통제가 없으면 본능대로 행동하게 되고, 그러다가 어떤 기회가 되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겁니다.
누구나 패버리고 싶은 사람 있을테고, 닥치는대로 때려부수고 싶었던 적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도덕적 심성에서 나온 숭고한 결단으로 그렇게 했었나요? 솔직히 빨간 줄 가는 게 싫어서 아니었습니까? 형벌보다도, 지금까지 이뤄온 모든 것[직장/재산/가족이라든지]들을 날려버리고 싶지 않아서 아니었습니까? 사람은 법적인/법률외적인 통제장치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면, 틀린 말일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저런 통제장치가 있습니다만, 불체자에게는 저런 통제장치가 허술합니다. 불체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잡기가 쉽지 않거든요. 솔직히, 화성연쇄살인사건도 불체자 짓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 많습니다[거기 불체자가 참 많습니다]--바로잡습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불체자가 많아지기 전에 있던 일입니다. 제가 잘못알고 썼네요--. 어떤 중국인은 한국판결은 한국 떠나면 휴지조각이라고 하더군요. 법률외적 통제? 아예 없습니다. 말 그대로, 여기서 무슨 짓을 했든 자기나라 돌아가면 그만 아닙니까.
바로 이런 것 때문에, 불체자 개개인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불체자가 늘어나면 사회가 위험해진다는 것입니다.

2 통계상 범죄율이 낮게 나온다더군요. 아무래도 남의 나라에 오면 조심하게 될테니, 맞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봐야할 게 있습니다.
가. 먼저 암수/숨은 범죄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대개 주변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불체자도 범죄를 저지른다면, 자기 주변의 불체자에게 많이 저지르겠죠. 그런 경우 피해를 당한 불체자는 신고할 리가 없겠죠? 또한 범죄는 일어났는데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 불체자가 한 걸로 통계에 잡히지 않겠죠.
나. 실무상 불체자의 범죄는 인지를 하지 않고 강제퇴거로 끝내는 일이 많기 때문에, 통계상 범죄율이 낮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대다수는 중형에 처해지지 않습니다. 살인/강도 같은 범죄보다는, 즉심이나 약식명령쯤으로 끝나는 가벼운 범죄가 훨씬 많다는 뜻입니다. 주변에 살인자나 강도는 별로 없지만, 벌금 내 본 사람은 꽤 있으실 겁니다. 그걸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가벼운 범죄의 경우, 국민이 저지른 짓이라면 인지를 해서 수사를 하고 벌금을 때리게 됩니다. 하지만 불체자가 저지른 짓이라면 저희에게 넘기고 끝내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벌금 얼마보다는 강제퇴거가 더 무거운 벌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사실 그런 면이 있구요].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대다수는 가벼운 범죄인데,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불체자는 범죄통계에는 잡히지 않고 강제퇴거 되버리는 듯 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불체자와 관련된 범죄통계는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요?

2010년 4월 9일 금요일

복지부동

언젠가, 제 일터에서 오랫동안 일해오신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불체자 단속하다가 다치지 말라고. 조직에선 절대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고.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다른 곳에서 저와 같은 일을 하시는 분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말씀이 다시 떠오르더군요.

대규모 공단/농장에서, 불체자 단속반이 불체자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잡히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저는 온 지 얼마 되지 않다보니 겪지는 않았습니다]. 많아야 열두엇쯤 되는 단속반을 백여명이 둘러싸고 '몸싸움을 벌이는'-저런 일에 우호적인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거죠. 경찰과 같이 가도 소용이 없답니다. 수십~백여명이 흥분해서 둘러쌌는데[불체자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저희를 아주 싫어합니다. 일터에 불쑥 들어오는데 좋아할 수는 없겠죠. 더구나 불체자들과 한솥밥 먹던 정도 있고, 그들이 잡혀가면 일이 안되거든요], 경찰 몇이 뭘 어떻게 할 수 없죠.

어떤 선배님 한분이 당하신 일입니다. 단속을 나갔다가, '인권단체'-얼마전 %&참사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가 불러모은 사람들에게 붙잡혔답니다. 경찰에 지원을 요청해 봤지만, 멀찌감치서 바라만 보더랍니다. 단속차량을 들어엎으려는 상황까지 왔고, 결국 단속한 불체자들을 다 뺏겼답니다. 위에 보고했더니, 가장 높으신 분께서 오셨답니다. 위로는 커녕, 다친 직원이 아무도 없다며 싸워보지도 않고 뺐겼냐고 나무라더랍니다.
얼핏 보면 맞는 이야기 아닌가 싶으실 겁니다만, 저희 입장은 아주 다릅니다. 도망가던 불체자가 스스로 뛰어내려 발이 부러져도 단속반에게 책임추궁이 시작 되는데, 불체자도 아닌 국민과 충돌해서 부상자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저들을 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했지만, 흐지부지 되어 버렸답니다. 그런데 조사과정에서 담당경찰이 그러더라네요. '거긴 우리도 못가는 덴데 왜 들어갔어요?' -_-;;

다른 직원들도 단속과정에서 사고터지면 높은 분께서 나무라시던 이야기, 단속하다 얻어맞아도 흐지부지 넘어가던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희 일이라는게, 열심히 하면 사고가 터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희가 잘못해서 터지는 사고는 저희가 책임을 져야겠지만, 그런 사고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단속하다 얻어맞아도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 쯤은 얼마든지 바로 잡으실 수 있는 분들입니다만, 그런데는 관심이 없으시죠. 결국 열심히 뛰다가 사고 터지면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고, 사고 피하려 조심하면 무능하다고 깨지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선배들을 보면, 뛰어난 분들도 계시지만 건성건성 일하는게 보이는 분들도 많습니다. 자기 재능의 반도 펼치지 않는 사람들도 많구요. 이젠 그런 분들을 뭐라지 못하겠네요.
그나마 저희는 정년이라도 보장되죠. 사기업에 계신 분들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검찰에서 기업체를 수사할 때, 전직 임직원들을 찾는다죠? 연락만 되면 제발로 달려와서 적극 협조한다구요. 그게 이해가 갑니다.

사기업에 계신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월급]주는 만큼만 일한다. 옛사람은 국사國士로 대했으니 그렇게 갚아준다고 했던가요. 결국 저도 복지부동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군요.

2010년 4월 4일 일요일

어찌 하오리까

저는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일들도 많이 마주치죠. 몇가지 써볼까 합니다.


1. 국제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도망가는 일을 많이 봅니다. 아마 그럴 생각으로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내가 여자라도 도망가겠다 싶은 경우도 가끔 봅니다. 65년생 아저씨와 90년생 아가씨의 결혼을 생각해 보십시오. 돈이 많은 것도, 잘생긴 것도, 교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자가 붙어있긴 힘들겠죠. 국제결혼 중에도 나이차가 꽤 큰 축에 끼긴 합니다만, 이런 일은 많습니다.

저런 결혼이 깨지면 누구의 잘못일까요? 도망가려 작심하고 온/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왔다가 마음이 변해 도망간 여자? 저런 결혼을 한 남자? 모두의 잘못 입니다. 양비론이 아니라 둘 다 잘못한 거죠.

그런데 그런 잘못을 한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마냥 나무랄 수만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저런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욕구를 풀 다른 길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만 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욕구를 잘 다스리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저는 저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2. 국제결혼과 관련해, 위장결혼은 아닌지 조사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살펴보게 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그 사람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가 입니다. 위장결혼은 돈 때문에 하는 것이니까요. 돈이 있는 사람은 위장결혼을 할 까닭이 없죠.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돈이 없어 국제결혼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분들 입장에서는 화가 날 겁니다. 돈이 없어 짝을 찾지 못해 국제결혼이라도 해보려는데, 돈이 없다고 트집[?]을 잡으니까요. 돈없으면 장가도 못가냐고 울화통을 터뜨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 사정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국제결혼으로 온 여자들은 모든 게 힘들겁니다. 그러다보니 결혼이 깨지기 쉽죠. 그렇다면 결혼이 깨지지 않을 여건은 갖춰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지 않는다면 수많은 가정이 깨질 겁니다[아니면 여자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가정이 유지되거나]. 그 뒤엔 서로에게 결혼을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상처만 남기겠죠.

남자가 여자를 패지는 않는지, 두 사람 성격이 잘 맞는지는 결혼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정수준의 생활유지가 가능한지는 미리 알 수 있죠. 그리고 그건 결혼생활유지에 정말 중요합니다. 결국 저는 남자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 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돈이 없어 국제결혼이라도 해보려는 분들과, 오면 도망갈게 뻔히 보이는-도망가는게 이해가 가는- 여자들. 저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3. 불체자단속을 하다보면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습니다.
불체자를 쓰는 곳 가운데는 우리나라 사람은 구할 수가 없어서 불체자라도 써야하는 곳이 있습니다. 솔직히 제가 봐도, 저 일 하느니 다른 일 구하는게 낫다 싶은 일들이거든요.
그리고 그런 곳은 사정이 어려운 곳이 많습니다. 단속하고 나오면서 여긴 이제 망했구나 싶을 때도 있죠. 그냥 내버려둬도 버티기에 힘겨워하던 곳이, 일하던 사람들 잡혀가고 불법고용으로 벌금내면 버틸 수 없겠죠.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담배만 피우는 그곳 사람들을 보면,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합법적으로 외국인력을 쓸 수 있는 길이 열려있습니다만, 시골구석에서 두어사람이 근근히 꾸려가는 곳에서 모든 법을 지켜가며 일하기 바라는 것은 무리겠죠.

불체자들도 마찬가집니다. 한달에 120받아서 고향의 가족들에게 70~80씩 부쳐주는 사람을, 법을 어겼다고 나무라지는 못하겠더군요.

언젠가는 막걸리 공장에 단속을 나가 불체자들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잠깐만 기다려 달라더군요. 그러더니, 물을 잠그지 않으면 막걸리를 버린다면서 여기저기 벨브를 잠그더군요. 수갑을 찬 채, 이제 쫓겨나면 평생 볼 일 없을 지 모를 공장을 챙기고 있는 사람을 보면,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단속을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불체자단속을 하지 않으면 불체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죠. 지금이야 단속때문에 저런 곳에서만 일을 하지만, 단속이 사라지면 거의 모든 곳에서 불체자만 쓰게 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밀려나게 됩니다. 왜? 싸거든요. 중국산이 국산을 몰아낸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단순노무인력 다음엔 이공계가 직격탄을 맞을 겁니다[불체자들 가운데는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배울만큼 배운 사람도 많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서독에 광부로, 미국에 막일하러 가던 것 생각해보세요]. 미국에서 이공계인력의 상당수를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죠. 그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게 됩니다. 그건 단순히 이공계인력의 실업문제를 넘어서,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되겠죠.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불체자 수가 늘어나면 사회가 위험해집니다.
'불체자들이 사악해서' 생기는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인간 본성의 문제입니다. 다른 동물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게 해 준 인간의 공격본능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것이죠.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입니다.

지난 참여정부에서 불체자들에게 온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은 다들 아실겁니다. 그랬더니 불체자 수가 20만을 넘어서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불체자 단속해서 강제퇴거시켰더니, 사무실에 신나 뿌리겠다는 전화가 하루종일 걸려와서 일을 못한 적도 있습니다.
불체자 단속반이 불체자들에게 감금되었다가, 형사대에 지원요청해서 간신히 풀려난 일까지 벌어졌죠. 단속반원 하나가 아니라, 단속반 전체가 말입니다.
'인간사냥꾼'이니 뭐니 하면서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불체자 단속업무를 맡은 사람들도 불체자에게 당하는데 일반 국민들은 무사할까요?.

현정부 들어서서 강력한 단속이 펼쳐졌고, 불체자 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단속을 조금만 느슨하게 하면, 언제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날 지 모릅니다. 그 뒤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하죠.
구로구에서 우리나라 주민들과 중국인들 사이에 유혈충돌이 벌어지고, 안산에서 몽골 갱과 베트남 갱이 전쟁을 벌이는게 불가능한 일일까요?

이런 것들을 모두 생각하면서, 저는 불체자와 불법고용을 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판결이 세상을 바꾸기도 할까요?

예전에 어느 법조인이, 판결이 세상을 바꾼다는 제목의 책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광고에서 제목을 보고 허풍이 꽤 세구나 싶었죠. 그런데 요즘 생각이 좀 달라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가스호스를 뜯어내며 난동을 부리던 사람에게 경찰이 가스총을 쏜 일이 있었습니다. 가스총에서 튀어나간 고무마개가 그 사람의 눈에 맞았고, 눈을 잃게 되었다죠. 그에 대해 법원은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구요.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불체자단속 때문에 가스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사건 때문인지, 가스총 사용수칙이 비현실적으로 되어 있더군요. 일정거리 안에서는 얼굴에 쏠 수 없게 정해져 버린 것 입니다. 가스총은 최루가스를 눈/코/입에 확 뿜어야만 하는데, 그걸 못하게 되었으니 있으나 마나하게 된 거죠.
가스총 말고 다른 보안장비라봐야 삼단봉 정도 입니다. 가스총보다 더 위험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사용에 부담이 더 큰 물건이죠.

자,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불체자 단속에 나가는 사람들이 보안장비의 사용을 꺼리게 되었습니다[물론 불체자 단속에 항상 저런 것들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불필요할 때가 더 많죠]. 어떤 분은 일선직원들에게 가스총이나 삼단봉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는군요. 가지고 있으면 쓴다나요?

그러다보니, 흉기를 들고 공격하는 불체자는 단속이 어려워져 버렸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흉기를 들고 공격하는 불체자를 단속하다보면 부상자가 나올 수 밖에 없는데, 내가 다치면 내 몸이 아프게 되고 불체자가 다치면 골치가 아프게 되버리는 거죠.
흉악한 놈 잡는다고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문제만 잔뜩 생길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니 흉기를 들고 공격하는 불체자는 도망가게 내버려두고, 별다른 저항이 없는 불체자만 잡게 되죠. 결국 흉포한 불체자는 남고 온순한 불체자는 쫓겨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건 불체자들에게 흉기를 들고 다니라고 가르치는 꼴이 아닐까요?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물론 그 판결을 한 판사들 입장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닙니다. 눈이 멀었으니 불쌍했겠죠. 그리고 국가배상책임만 인정했지, 그 경찰관에게 구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니까 괜찮을거라 생각했을테구요.
솔직히 공무원들이 법을 잘 몰라서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고 되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행정법상 법원의 판결에 대한 국가배상책임 인부와 관련된 논의를 지켜보면, 공무원들이 법을 몰라서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드는군요.

일이 어떻게 흘러갈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판결이 세상을 바꾸긴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업보

제가 일을 하다보면, 불법적으로 입국한 사람을 단속하는 분들께 넘길 때가 있습니다. 영화와 같은 치밀한 추리나 치고받는 활극이 펼쳐지진 않죠. 불체자 단속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뭔가를 좀 생각하게 하네요. 그런 일 가운데 하나를 조금 써볼까 합니다. 있는 그대로 쓰지는 못하고 얼버무려 씁니다. 좀 앞뒤가 안맞고 뭔가 이상한 글이 되어도 이해해 주십시오.

어느 조선족이 한국에 오려고, 어느 노인을 찾아가서는 친척이라면서 초청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노인은 거절했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그 노인이 초청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서 한국에 오는데 성공했습니다. 노인은 그 사람을 신고했습니다.

노인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처음보는 조선족이 찾아와서는 집안 친척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하는 말이 앞뒤가 안맞아요. 웬 사기꾼이 달라붙나 싶죠. 초청해 달라고 매달리는 걸 어렵게 떼어내고는 잊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의 초청으로' 입국한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조선족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한국에 친척이 있는 듯 합니다. 그 '친척' 하나 믿고 한국에까지 갔습니다. 이제 그 사람이 정말로 친척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겝니다. 그쯤 되면 자신은 그 사람의 소중한 친척이고, 그 친척은 자신을 도와줄 거란, 아니 도와야 한다는 믿음이 굳어졌겠죠. 그런데 그 '친척'이 자기를 모른 척 합니다! 결국 빈손으로 중국에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할까요? '난 정말로 그 사람 친척이니까' 당연히 써줘야 하는 서류를 좀 꾸미는 것쯤은 괜찮다고 생각했겠죠. 돈 좀 써서 손쉽게 위조서류를 구했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친척'이 자신을 신고했습니다. 이 조선족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어쩌면, 두 사람은 정말로 친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유에선가 둘 사이가 틀어졌고, 노인이 조선족에게 앙심을 품고 거짓신고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정확한 것은 담당자가 조사해보면 알겠죠.
두 사람 사이에 얽힌 아름답지 못한 인연을 생각합니다. 뭐랄까... 말을 잘 못하겠네요.


이렇게 불법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넘기고 나면, 기분이 묘합니다. 해야할 일을 한 것인데, 뒤끝이 썩 개운치는 않아요. 살인이나 강도처럼 피해자가 있는 범죄라면, 피해자의 원한을 풀어주니 이런 느낌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방학기 화백의 다모라는 만화-드라마로도 만들어졌었죠-의 한장면이 생각납니다. 포도청에서 일하던 등장인물 하나가 총에 맞아 죽습니다. 죽어가면서 자신의 손에 죽어간 역적들이 눈에 스쳐가고, 그 업보를 치르게 된 것이라는 걸 깨닫죠.
물론 제가 그 사람들을 죽인 것도 아니고,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게 한 것도 아닙니다. 아마 '에이 재수없었네'하고는 위명여권으로 또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오겠죠.
그런데 기분이 개운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그 일로 제가 월급을 받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꼭 필요한,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저도 제 업보를 쌓아가는군요.

2010년 3월 9일 화요일

조선족의 피해의식과 우리의 한恨은 다른 것일까요

저는 일자리에서 조선족들을 많이 대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무척 피해의식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별일 아닌 데 서로 얼굴 붉히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숱한 일 다 생각나지도 않고, 오늘 있던 일 한두가지만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제 동료분이 민원예약창구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5분단위로 예약된 창구였죠. *시 5분에 예약한 민원인이 *시 4분에 왔습니다. 당연히 창구에는 *시 정각에 예약한 민원인이 아직 일을 보고 있었죠. 제 동료분이 이분 끝나고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자, 벌컥 화부터 내더군요. 그래서 서로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허가권자에게 성질부려봤자 좋을 것 없겠다 싶었는지, 일행이 얼른 대신 사과하고는 그 민원인을 뒤로 끌고 가더군요. 나중에 자신이 정각에 예약한 것으로 잘못 알아 그랬다는 식으로 사과하긴 했지만, 정말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일행분도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불리할 듯 싶어 수습하려는 것 뿐이었지요.
그 창구업무는 비교적 간단한 것이라서, 바로 끝나는 일이었습니다. 예약시간보다 먼저 와서는, 앞 사람들이 금방금방 끝내고 돌아가는 것을 보아왔으면, 자기 앞 사람도 금방 끝나리란 것을 모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러는 사람들이 자주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민원인이 와서 체류기간연장허가를 신청했습니다. 몇마디 물어보고, 그에 따라 처분했습니다. 그렇게 잘 끝나고 갔던 민원인이,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오더군요. 같이 왔던 언니는 허가기간이 2년인데 왜 자신은 1년이냐고 항의하더군요. 그래서 같이 온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죠. 그러자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족과 한국인이 말이 통한다고는 하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못알아 들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엉뚱한 소리 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제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 엄한 소리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고쳐드렸습니다만, 솔직히 저만한 일에 젊은 여자분이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따지는게 가엾기도 했고, 민원인 밀려있는데 싸우기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 여자 분은 제가 잘못 해놓고 오리발 내밀다가 백기를 든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별 것 아닌 일들입니다만,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어쩌다보니 따지고 목소리 커지는 이야기만 쓰게 되었는데, 반대로 불필요하게 굽신거리기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처음엔 왜 저러나 싶었는데, 이게-싸우는 것과 굽신거리는 것 모두- 피해의식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끔씩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무개념들도 마주치곤 합니다. 아무런 구비서류 하나 없이 허가신청하러 왔길래 구비서류를 안내해주자, 허가 안내준다며 화를 벌컥 내는 사람을 본 적 있습니다. 위조문서로 허가신청한 걸 적발해서 허가를 취소시키자, 서류를 위조한 건 맞는데 허가는 왜 취소하냐며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죠.
처음엔 정말 이해가 안갔습니다만, 생각해보니 이런 무개념들도 피해의식과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도 같습니다.

-참,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우린 멀쩡한데 조선족만 저모냥이라고 비웃을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우리나 저들이나 무개념은 많죠. 모르긴 해도,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무개념들은 50대 이상에서 많은데, 우리나라의 그 또래 분들을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분들도 많죠. 젊은 조선족들을 보면, 우리와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은 몰라도, 곧 우리보다 뒤떨어지지 않게 되겠죠-


문득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나온 말이 생각나네요. 임꺽정이 백정으로 천대받고 자라다보니, 성질이 뒤쪽나는 일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두호 화백의 만화에도 그대로 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말입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뭐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말씀드렸던 일들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조선족들을 보고 있으면, 80년대까지 선진국에서 우리를 저리 보았겠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도-예컨대 일본에서 우릴 보는 눈길- 모르구요.

그걸 생각하자, 우리민족의 정서라고 내세우던[제 세대에서는 그런가보다 하고, 저보다 어린 세대에서는 '그런거 없는데?'라고 반박하기도 합니다만, 제 웃세대에서는 너무도 절절하던] '한恨'이 외국인의 눈에는 어찌 보였을지 궁금해지더군요. 물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한을, 겪어보지 않은 외국인의 생각이 옳고 우리가 잘못된 거라고 보면 틀린 것이겠습니다만, 밖에서 보기에는 참 자랑도 아닌 걸 자랑하는 것 같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쨌거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한? 그런거 없는데? 하는 세대가 점점 많아지고 있죠. 아니, 한맺힌 분들이 줄어들고 있죠. 그 분들 덕에 한을 모르는 우리가 잘 살고 있구요.

2010년 3월 2일 화요일

제가 고소를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제 일자리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귀화한 어떤 영감님께서 창구에 오셔서는 따지고 시작했거든요. 보완서류를 14일 이내 제출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는 접수증을 들고 와서는, 14일이 지났는데 왜 허가를 내주지 않느냐고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어? 이상한데? 라고 느끼신다면 정상이신 겁니다. -_-;;
접수증에는 접수가 되었다. 그런데 보완서류를 14일 이내 제출하지 않으면 접수가 취소될 수 있다고[정확한 문구는 생각이 안나네요. 매일 보는 것인데도 -_-;;]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접수가 되었으니 14일이 지나면 허가가 나온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서는, 허가가 왜 안나오냐며 따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싶으시겠지만, 자주 있는 일입니다. 대륙의 기상이 넘쳐나는 분들이 여기저기 많이 계시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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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밤에 고칩니다.
접수증에는 '귀하가 제출하신 신청서는 접수되었습니다. 다만, 보완서류를 14일 이내에 제출하신 경우에 한해 처리될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있군요. 이게 행정절차법 17조 5,6항과 관련되어, 실무상 가접수/임시접수라 불리는 것 때문에 쓰여진 글귀입니다.
어떤 기한이 다 되었는데 신청인이 구비서류를 갖추지 못하면, 가져온 서류만 가지고 임시로 접수를 해주죠. 그리고 저 기간내 나머지 서류를 제출하면, 처음 접수를 한 때 접수한 것으로 보고 심사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기한 내 신청한 것으로 봐주는 겁니다.
기간내 구비서류를 갖추지 못하면 신청을 반려하게 되죠. 그래서 제가 저렇게 착각한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민원인이 저럴만 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실무상 접수증을 주면서, 허가가 나오는 날을 딱 정해서 그날 오시라고 하거나/ 허가가 나오면 추후통보를 해 드리니 그때 오시면 된다고 말씀을 드리고, 접수증에 적어 드립니다. 날을 정해서 오시라고 하는 경우는 한번만 말씀 드리고 접수증에 적어드리면 다 알아듣는데, 추후통보의 경우에만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더군요. 접수하며 말씀 드리고+접수증에 적어 드립니다. 그래도 찾아오시면 또 설명을 해 드립니다. 그런데도 이해를 '안'합니다.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14일 지났지 않느냐, 된다더니 왜 안됐냐'는 소리만 되풀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덜거리면서 돌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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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감님께서 오셔서는 따지시다가, 일이 뜻대로 안 풀리자 욕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에는 어린 공익 하나 뿐이었거든요. 여직원이나 나이 어린 공익이 있는 곳에서는 자주 벌어지는 일입니다. 남자직원들이 있는 곳에서는 훨씬 드물죠.

하도 소란을 피워대자, 보다 못한 옆자리 여직원이 따졌지만 여직원 쯤은 우스웠나봅니다. 그래서 나이드신 제 상사분까지 가셔서 여기서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오라고 했습니다만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남자직원 셋[저도 끼어 있었습니다]이 갔습니다. 왜 욕을 하냐며 이리 오라고 했죠.
남자직원 셋이 둘러싸자, 바로 '욕 안했어요'라면서 큰 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하더군요. -_-;;

아무튼 데리고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거기서 제가 욕하지 않았느냐며 큰소리로 따졌죠. 처음엔 '욕 안했어요'라고 뻗대기만 하던 영감님, 자신을 때리지는 못한 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기세등등해졌습니다. 다른 곳[원래는 범죄자들을 조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난동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서 경고해서 조용히 시키기도 합니다. 말그대로 귀찮은 일을 해주시는 셈이죠]에 넘겨주고 오는데, 저보고 이리 와보라며 큰 소리를 치더군요. 중국공안에게 대들면 벌어지는 일들이, 한국에선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실감났나 봅니다.

제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는데, 조금 있자니 그 영감님이 다시 돌아와서는 소란을 피우기기 시작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두들겨 맞았답니다. 경찰까지 부르더군요. 정말로 젊은 남자 셋이 영감님 때렸다면, 그 영감님 엘리베이터에서 뻗었을 겁니다. 아마 다시 돌아와서 큰 소리칠 수도 없었겠죠? 아무튼 고래고래 소리치던 영감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더 난리를 쳤나봅니다. 고소한다고 펄펄 뛰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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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밤에 다시 보탭니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분[저희 직원 아닙니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욕질하던 영감님 주변에 앉아있던 조선족들이, 저희가 영감님을 데려 간 다음, 저 영감님은 욕한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편을 들더랍니다. 모두들 그 영감님의 일행도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혀를 내두르시더군요.

그 말씀을 들으니, 각종 운동경기 생각이 나더군요. 한국과 다른 나라가 경기할 때, 한국이 골을 먹거나 지면 조선족들의 함성이 터져나오던 게 말입니다. 평소에는 그 나라들에 대해 아무런 호감도 없던 조선족들이, 단지 한국과 싸운다는 한가지 이유로 그 나라 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일에서는 오죽하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게 다 우리의 잘못 때문이라고 하시겠지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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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시끄러워지자... 제 상사분께서 조용히 물으시더군요.
'정말 안 때렸지?'
허탈하고 씁쓸했습니다. 제가 가기 전부터 그 영감님과 있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쭉 함께 있던 분이, 일이 시끄러워질 듯 싶자 '난 모르는데 너 혹시 때렸니?'라는 식으로 나오시는 겁니다.

저는 그 영감님이 고소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조사받으러 간 김에 무고죄로 고소해 드리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복지부동이란 말이 곧 제 생활신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제가 아는 분이 겪으신 일이 하나 생각나네요.
그 분이 불체자 단속업무에 투입되어서, 여성 불체자 하나를 추격하고 있었답니다. 죽자살자 도망가던 그 여자, 따돌리긴 글렀다 싶자 글쎄....

옷을 벗으려더랍니다!!! -_-;;

그 분은 기겁을 해서 얼른 수갑을 채우고, 옷을 못 벗게 막았답니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여성불체자를 어떻게 했다면서 난리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이 일도 포장되기에 따라서는 꽤나 자극적인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그냥 넘어갔습니다만.

아무튼..
'노인이 관공서에 가서 잘못된 행정에 항의하자, 건장한 공무원 넷이 엘리베이터로 끌고가서 개 패 듯 팼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사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 쯤 해주시길 바랍니다.

2010년 2월 23일 화요일

어떤 죽음들

일터에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일들 가운데 하나는 사망신고를 받는 것이었는데, 마지막날인 오늘, 기억에 남을만한 사람 둘을 보았습니다.
모두 국제결혼한 부부였는데, 외국인 배우자가 죽어서 남은 사람이 사망신고한 일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주머니였습니다. 위장결혼관련혐의를 받던 사람이었죠.
남편이 병으로 죽었다고 사망진단서를 떼어서 왔는데, 역시나 얼굴에서 슬픔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이제 이 사람은 지워지는 거죠?'라 다져 묻기만 하더군요. --이제 이 사람으로 문제될 거리는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별로 배우지 못해서인지 저렇게 묻더군요[아무래도 위장결혼은 못배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많습니다].
참고로 여성이 위장결혼해서 오는 경우가 더 많긴 합니다만, 남성도 위장결혼해서 오는 일이 많습니다. 아마 이 아주머니도 외국남자와 위장결혼했다가, 이런저런 조사를 받으면서 마음고생을 했나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아저씨였습니다. 아내가 죽었다고 사망신고를 하더니, 슬그머니 물어보더군요.
'사망신고를 하면 화장비를 준다는데 여기서 주나요?'
그 일을 맡았던 분께서 -황당한 얼굴로- 여기서는 드리지 않고 어디서 주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누군가 그러더라며 얼버무리고 사라지더군요.
잘사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리 가난해 보이지도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왔던 다른 사람들도 슬픔이 묻어나오는 사람은 적었던 것 같습니다. 죽은 사람과 어떻게 되시냐고 물어보면, 애인이라고 얼버무리는 아주머니들이 많았죠.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 것 같아서 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겪고 나면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맥이 쭉 빠져버립니다.
남은 아내/남편이라는 사람들이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죽은 사람들이 참 가엾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쓸쓸하게 죽어갔을 테니까요.

왜 저럴까 싶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식구들이 크게 슬퍼하진 않았군요. 하지만... 그냥 그렇게 잊혀지나 싶더니, 가끔씩 뭔가가 치밀어 오르고는 했습니다.
그 사람들도 가끔씩 그런 일을 겪을까요? 아니면 누구였는지 생각도 안날까요.

문득, 어찌보면 저런 죽음은 스스로가 불러들인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의 죽음은 어떨까요. 아마 내가 어떻게 사는가에 달려있겠죠.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공무원의 보수

저는 공무원입니다. 오늘 두번째 월급을 받았습니다.
지난 달에는 신입교육 수당과 월급으로 60만원 쯤과 80만원 쯤을 받았는데, 교육 때문에 일을 며칠 못했기에 정확한 월급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두번째 월급날이 되어서 보니, 128만원 쯤 받았더군요. 7급인데, 실무수습기간이라서 수당이 없다보니 이런가 봅니다.

음... 기억에 남을 숫자가 하나 더 생겼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