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1일 화요일

가난한 나라 관광객들의 입국심사

저도 몰랐는데, 어느 나라와 사증면제협정이 맺어졌더군요. 우리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불체를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파견된 분의 말씀에 따르면, 사증면제협정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이 불체를 하기 위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오는 항공노선 하나가 제가 일하는 곳에 있는 공항에 생겨버렸습니다. 요즘은 브로커들도 머리를 씁니다. 처음 그 나라 노선이 생겨서 아무래도 대응이 서툴 수 밖에 없는 곳, 베테랑들이 빠져나가고 업무파악이 안된 직원들이 많은 인사철 즈음, 심사관들의 주의력이 떨어지는 새벽시간대를 노리죠. 저희가 맡은 공항이 바로 첫번째에 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에서 처음 비행기가 오던 날, 저희들은 말 그대로 뒤집어졌습니다. 가장 급한 것이 통역을 구하는 일이었는데,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영어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죠. 중국어나 일본어로 가면 더 해집니다. 하물며 그 나라 말을 가르치는 학원을 찾기도 힘든 나라의 말을 하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할 수 없이 그 나라에서 온 결혼이민자를 몇 분 만나봤습니다만, 그 비행기가 오는 이른 아침에 나와주실 수 있는 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간신히 한분을 모시고 공항으로 갔습니다[그런데 심사과정에서 이 분께서 -팔은 안으로 굽다보니- 자기 나라 사람들 편을 들어서 애먹었습니다. 그들이 저희도 뻔히 아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데 은근슬쩍 그대로 넘겨주려 하시더군요].

아무튼 거의 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온 그날, 한바탕 북새통이 오랬동안 펼쳐졌죠. 어찌저찌해서, 브로커가 낀 사람들 수십명을 가려내서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경찰에서 수사해보니[원래는 특별사법경찰인 저희가 해야합니다만, 워낙 일손이 모자라다보니 손을 못 댑니다. 그래서 경찰 외사계가 맡게 되었죠], 성공하면 일인당 200만원씩 받기로 하고 불러들인 우리나라 사람이 있더군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관광하러 온 사람들 수십명이 많은 불편을 겪었습니다. 앉을 곳도 제대로 없는 입국심사장에서 한나절을 지내면서, 친절한 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조사를 견뎌야했죠. 저희도 이게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브로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멀쩡한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서 들여보내는데, 이마에 불체하러 왔다고 써 있는 것도 아니죠. 결국 불체가능성 없는 게 한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닌 한, 조사를 해 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단돈 10만원이나 40만원을 들고 와서는, 4일동안 쇼핑하고 가겠다는 사람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하면, 그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나쁠 수 밖에 없죠.

통역문제나 편의시설 문제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무소에 모든 나라 말의 통역을 여럿씩 붙여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해마다 수백억씩 적자가 나는 시골공항에, 일반적인 사람은 별문제없이 지나가는 곳에 수십명이 편안하게 머물 시설을 갖추라고 할 수는 없죠.

아무튼 그날이 그렇게 지나갔고, 얼마 뒤 그 나라에서 또 수십명이 몰려왔습니다. 역시 북새통이 펼쳐졌고 그 사람들은 불편하고 자존심 상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이 정중하게[점잖은 분들이었습니다] 항의하더군요.

그래서 당신나라에서 온 불체자가 많아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통역이 한 사람뿐이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더니 아무 말씀도 못하시더군요. 그 나라의 공직자라고 신분을 밝히며 항의하는 분께는, 불체자들이 모두 공무원 행세를 하고 있고 가지고 있는 문서도 위조된 것들이 많다고 했더니 역시 아무 말씀도 못하시더군요. 자신의 나라 사정을 뻔히 아는 그 분들로서는 대꾸할 말이 없는 뼈아픈 한마디였고, 약소국의 설움을 톡톡히 맛본 셈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마음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었구요.

한바탕 난리굿이 펼쳐진 뒤 모든 게 끝났고, 잠시 뒤 사증면제협정이 맺어진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아무 일 없이 모두 무사통과 되었죠. 저도 솔직히 깔끔하지 못한 외모와 넉넉치 못한 살림살이 때문에 어디가서 좋은 대접 받기 힘든 사람입니다. 그래서 겉모습이나 차림새로 사람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착한 거 아니고 못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나쁜 거 아니란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뭐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은 들어오는 사람의 반 넘게 불체하지만[위에서 쓴 날들 말고, 다른 날에도 그 나라 사람들이 왔었습니다. 그나마 불체가능성이 적은 사람들을 들여보냈더니, 여행일정이 끝났는데도 반 가까이 돌아가지 않았더군요--바로잡습니다. 나중에 한번 더 조사해보니 많이들 나갔더군요. 여행일정 끝나고 가이드는 먼저 돌아갔는데 남아있길레 불체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요. 영어도 우리말도 못하면서 왜 더 머물다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잘사는 나라 사람은 제 때 잘 돌아가죠. 예전에 잠시 범죄경력 조회를 맡았던 적이 있었는데, 외국인 범죄자 가운데 잘사는 나라 사람은 거의 없더군요. 열이면 여덟아홉은 불체자가 많은 나라 사람들이었고, 불체자 적은 나라 사람은 한둘 쯤 밖에 안되었습니다.

그 북새통을 모두 지켜본, 다른 기관 분이 슬쩍 한마디 던지시더군요. '많이 수상해 보였나봐요?' 왜 그런 난리굿을 피우며 관광객들을 쫓아내냐는 투였습니다. 사시는 동네에 불체자가 별로 없지 않냐고 되묻자, 역시나 없다고 하시더군요. 불체자 많은 동네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그런 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어느 진보적인 지식인께서 도심에 나타난 멧돼지를 사살한 것을 비판 하시던 게 생각나요. 멧돼지를 바라보는 시각은 도시에 사는 사람과 시골에 사는 사람이 같을 수 없죠. 불체자 문제도 그렇습니다. 폭력사건이 벌어져 순찰차가 출동하자 불체자들이 떼를 지어 막아선 일[이건 제가 겪은 건 아니고, 언론보도에서 본 겁니다. 제가 언론보도는 그다지 믿진 않지만, 있을 법한 일이라 생각되네요]을 모르면, 불체자들이 서넛씩 사는 집이 골목마다 여럿 있는 동네에 가보지 못했으면, 저희가 왜 이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시겠죠.

정말 길었던 하루를 끝내고, 한가위를 쇠러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정중하게 항의하던 분들이 잊혀지지 않아 기분이 참 뭐한 길, 불체자인 듯 한 사람들이 너댓 보이더군요[그 친구들도 저희가 언제 쉬는지 잘 알아서, 그때 많이 돌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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