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재회

버스터미널에 갔습니다. 표를 끊고, 돌아서 나오는데 누군가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하더군요. 얼떨결에 저도 웃으며 인사를 하고 보니.... 얼마전에 단속된 유학생이었습니다. 바로 제 손으로 수갑을 채웠고, 풀려날 때는 제가 문을 열어주며 보낸 사람이죠.

우연히 그 사람도 제가 타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저 구석에서 담배만 피우더군요. 그 사람도 얼떨결에 웃으면서 인사는 했는데 정신차려보니 뜨악해서 피하는 것인지, 어색한 걸 참고 인사까지 했는데 제가 뜨악해하니 뭐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찌된 일인가 하면....
여름철에 수박들 많이 드시죠. 그 수박에도 불체자의 손길이 미쳐있다는 것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수박은 묵직하고 둥글어서, 하루에 수백통씩 다루다보면 놓치기 쉽겠죠. 그래서 수박 딸 때 힘이 센 우즈벡 불체자들을 많이 씁니다. 수박으로 유명한 곳에는 우즈벡 불체자들을 보내주는 브로커도 활동하죠.

저희가 수박따러 온 불체자들을 덮쳤는데, 거기에 체류자격외 활동허가를 얻지 않고 일하던 우즈벡 유학생이 몇 끼어 있던 겁니다[비자/사증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유학생들은 공부를 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일은 할 수 없습니다(다른 나라도 그렇다는군요. 다른 나라로 유학가신 분들이 많이들 이야기 하시죠?). 일을 할 수 없는 비자도 체류자격외 활동허가를 얻으면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유학생의 경우 신청만 하면 다 내줍니다. 다만 유학생은 공부하러 온 것이니까, 휴일/방학이 아닌 때에는 '하루에 몇시간까지만 일하라'는 시간제한을 두죠. 그런데 이 학생들은 그 허가없이 일했던 겁니다.]. 신분확인 전에는 도주와 저항 우려 때문에 수갑을 채웠다가, 학생이란 게 밝혀져서 수갑 풀어주고, 사무소로 데려와서 반성문 한 장씩 쓰는 걸로 끝을 냈었죠.

가난한 나라에서 유학온 학생/ 얼마전까지 무척 가난하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 살게 된 나라에서 외국인을 다루는 공무원- 어찌보면 정말 할말이 많을 관계인데, 만난 인연이 아름답지 못하다보니 저리 되더군요.
그런데 이 일을 오래하신 분들은 그렇지 않으시더군요. 어떤 분은 자신이 단속한 바로 그 업체에 손님으로 가시기도 합니다. 물론 뭔가를 받아먹고/받아내려고 가는 건 절대 아니구요[제가 그 분을 알고 그 업체도 아는데, 그럴 분도 아니고 그럴만한 곳도 아닙니다], 단속하러 가보니 괜찮더라 해서 가는 거죠. 저로서는 참 따라하기 힘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어찌보면 이해도 가요. 십여년을 이 일만 하시면, 도대체 단속 안한 곳이 있어야 단속한 곳을 피하며 살죠.

아무튼... 뭐한 만남이었습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어찌보면 비슷한 만남이 한번 더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 때 써 볼까 합니다.

편견

얼마전 어느 대학에서 광고를 냈나봅니다. 동남아 어느 나라 사람들이 좀 못살고 좀 무식하고 좀 다르게 생겼지만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며, '가슴으로 공부하라'는 광고를 냈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인들을 '좀 못살고 좀 무식한' 사람으로 내리깎은 저 광고를 참 부끄러워 하시던데, 저도 몇마디 보태볼까 합니다.

저 광고에서는 그들이 '좀 다르게 생겼다'고 했던데, 좀 '다르게' 생긴 건 맞습니다. 그런데 모르긴 해도, 그 광고에서는 그들이 우리보다 못생겼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건 아닙니다. 동남아 아가씨들도 예쁜 사람 얼마나 많은데요. 남자들도 잘생긴 사람 많구요.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저들도 똑같습니다. 그들이 체격이 좀 작고 가무잡잡한 것은 맞는데, 그래서 못생겼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겁니다. 그 사람들 많이 보시면 아실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좀 못살고'라는데, 동남아쪽이 우리나라보다는 조금 못사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와 있는 동남아 사람들이 모두 못사는건 절대 아닙니다. 막일이라도 해서 돈벌러 온 사람들은 우리보다 가난한게 맞는데, 부잣집 자식들도 많이 놀러 오거든요. 우리나라에 돈 쓰러 온 부잣집 자식들, 과연 우리보다 가난할까요? 재벌집 자식 아니면 그들보다 돈 많은 사람 별로 없다는데 한표 던집니다.

또 그들이 '좀 무식하고'라는데.... 이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 싶네요. 제가 동남아 쪽 사정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합니다만, 그들을 대하면서 '정말 무식하구나'라고 느껴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외국인관련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 편견은 두가지로 갈리는 듯 해요. 그들을 무시하거나, 선민의식이나 우월감에서 그들을 불쌍하게 보는. 그런데 이 두가지 모두 틀린 겁니다. 둘 다 그들이 우리보다 못났다는 걸 깔고 있거든요.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인데, 그러면 우리만 우스워지겠죠.

2010년 7월 17일 토요일

베트남 신부 사망 건에 대한 기사를 보고

얼마전 우리나라에 시집온 베트남 신부가 남편 손에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7/16/0200000000AKR20100716178900051.HTML?did=1179m

입에 발린 말 같지만,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저런 분들과 부대끼는 일이다 보니 더 하네요. 통곡하는 부모를 보니, 참.... 딸이 즐겁게 배낭여행을 왔다가 죽었어도 가슴아플텐데, 돈 때문에 팔려오다시피 시집왔다가 저리되었으니 그 속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일로 국제결혼에 대해서 언론보도가 쏟아져 나오는데, 저도 생각나는대로 몇마디 보태볼까 합니다. 제가 별로 아는 것도 없거니와 그나마 생각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해서, 헛소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모든 국제결혼이 다 문제가 되는게 아니라, 맞선형식의 국제결혼만 문제된다는 것입니다[남녀가 사귀다가 결혼하는 것은, 비록 남녀의 국적이 다르다해도 일반적인 혼인과 다를 바 없겠죠].

또 한가지 결정적인 것은, 혼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혼인허가'가 아니라 '혼인신고'라는 것이죠. 국가는 혼사에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들이 '우리 혼인했다'하고 신고를 하면, 국가는 근친혼과 같은 경우가 아닌 한 그냥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 것은 대안을 검토할 때, 항상 깊이 새겨둬야하는 문제입니다.

1 언론 보도에 다루어진 내용들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가. '묻지마 국제결혼'에 대한 비판이 있더군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루어지는 국제결혼을 보면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옛날에 중매쟁이 말만 듣고 신랑신부가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다죠. 그거 보다 조금 나은 수준입니다. 그래서 기사에서는 배우자에 대한 정보제공의 필요성을 강조하더군요. 그런데... 몇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1)정보제공이란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을 겝니다. 사귈만큼 사귀어 보고 오고가는 혼담이 아닌한 누구나 자신이나 자신의 집안 약점은 감추려고 할텐데, 그걸 파헤치는게 쉽지가 않을 겁니다. 이걸 파헤쳐 주는게 국제결혼중개 업체가 해야할 일이겠지요. 그런데 국제결혼중개업체에 그런걸 기대하는건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생각되네요.

국제결혼을 하려는 분들은 잘 사는 분들이 아닙니다[안그런 분도 보긴 했습니다. 자기 건물도 가지고 있고 나이도 30대 중반밖에 안된 분이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런데 그리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당연히 이 분들이 낼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죠[물론 소개비용으로 천만원을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크게 보면 브로커 짓을 하지 않는 한 큰돈 만지긴 힘들어 보입니다]. 씁쓸하게도, 돈이 안되는 곳에 인재가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뻔해지는 거죠. '너 지금 누구 무시하냐'고 하시겠지만, 많은 국제결혼중개업체가 영세하고, 위장결혼브로커 짓으로 돈이나 만지는 경우도 없지 않은 듯 합니다.

이건 합/불법, 등록/미등록 업체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는 아닐 듯 싶군요. 기사에서는 불법미등록업체 양성화 주장도 나오던데, 그게 도움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2)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은 국제결혼을 어떻게 해서든 밀어붙이는 일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배필을 찾을 수 없는 사람/ 좀 더 잘사는 우리나라로 오려는 사람들이 국제결혼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쯤으로 여기는 일이 많죠. 그러면 모든 규제를 뚫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범죄경력/혼인경력/건강상태를 공개하도록 했다지만, 그런 의무의 주체가 될 국제결혼중개업체가 슬쩍 빠지면 그거 잡아내기 쉽지 않을 겁니다[쓸만한 수법으로 짐작이 가는 게 있긴 한데, 쓰긴 좀 그렇군요].{덧붙입니다. 역시나 쓰고 있더군요. 그들이 잘 알고 써먹으니 굳이 감출 필요가 없어 씁니다. 대개 여행사 짓인데, 결혼중개를 하면서 결혼이민자를 사이에 끼워넣고 슬쩍 빠지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행사가 국제결혼을 중개하면서, 여행사는 쏙 빠지고 한국에 시집온 아무개가 우리나라의 아는 사람과 자기 나라의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서 만나는 식으로 하는 겁니다} 더구나 다른나라에서는 문서위조/허위문서 발급이 아주 쉬울 수 있습니다. 허위 번역도 그렇구요. 현실적으로 그거 가려낼 수 있을까요? 물론 문제가 되면 사후에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책임 추궁이 쉬울지 모르겠네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국제결혼을 하려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뜻을 이룰 겁니다.

나. '도대체 이런일이 터졌는데도 양비론이냐'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런 결혼을 하는 여성들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1) 천리타향에 남편 하나 믿고 시집왔더니 남편이 패더라. 도저히 못살겠어서 헤어졌다- 우리나라라면 치를 떨면서 돌아가는게 정상 아닐까요? 그런데 대부분 돌아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십대 아가씨가 얼굴밖에 모르는 마흔/쉰넘은 아저씨에게 왜 시집을 오겠습니까. 노리는 게 있으니까 오는 겁니다.

이게 기사에 나온 이혼건수 급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인 배우자의 잘못으로 결혼이 깨지면, 외국인 배우자는 우리나라 영주권/국적을 딸 수 있죠. 그래서 서로 짜고 이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외국인 배우자가 이혼소송을 걸면, 우리나라 사람은 재판이 걸린 걸 알면서도-송달 받고서도- 법정에 보이지도 않거나, 나와서는 상대방 주장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죠.

그게 잘 안되면, '남편 갈아타기[아내갈아타기]'도 합니다. 그냥 도망가버린 다음 새 배우자를 찾아내는 겁니다. 브로커를 통하면, 그리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신원보증 서주는 사람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해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따면, 다른 사람을 초청할 수 있겠죠. 그건 돈이 되는 일이구요.

(2)'이혼을 하면 불체자로 전락'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마냥 동정적으로 볼 일이 아닙니다. 이혼을 하면 바로 불체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혼을 하고도 안나가고 버티다가 체류기간이 끝나야 불체자가 되는 겁니다[체류기간이 끝나기 직전에 헤어졌다면? 한달쯤 국내생활을 정리할 시간을 줍니다].

위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말도 안통하는 나라에 남편하나 믿고 왔는데 그 남편이 두들겨 패서 갈라섰다면 왜 돌아가지 않을까요. 이건 애초에 혼인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 밖에 안되는 겁니다.

2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결혼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하죠. '가난하게 살면 뻔한 사람들 아니냐. 그러면 아무래도 마누라를 잘 패지 않겠느냐. 그래서 일어나는 일들 아니냐'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네요.

3. 마지막으로, 정말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이런 일은 더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지는 말씀드리기가 그렇네요. 읽고 해보는 놈이 있을까봐.


***글 다 쓴 뒤에 덧붙입니다.
제가 결혼이민자 가운데 딴 생각을 품고 온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본다 하더라도, 그들을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저들과 우리의 차이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다른 방법이 있는가 뿐일지도 모릅니다. 팔려오다시피 하는 결혼, 좋아서 하는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갈라서서는[위장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당한 분입니다], 공장에서 한달에 80 벌면서 아들 기르고 사는 분을 본 적 있습니다. 그 분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제가 좋지 않게 본다하더라도, 그런 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제 고모들 가운데도 국제결혼 하신 분들 계십니다. 물론 이런 결혼은 아니었습니다만, 어찌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혼사였죠. 막말로 고모부들이 가지고 놀다 차버렸어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는 상황이습니다만, 하늘이 도우셨는지 고모부들이 착한 분들이라서 지금까지 잘 살고 계십니다. 이 일을 하면서, 그동안 전혀 감도 못잡던 고모들의 사연이 저들에게 비춰지는 것 같더군요.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내 고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임을, 저들의 고향에는 내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일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불과 수십년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뻔하거든요.

이런저런 것들 다 생각하다보면.... 늘 씁쓸해지더군요.

2010년 7월 10일 토요일

관계

불체자 신고를 받고 단속을 나가다 보면, 불체자/고용주가 아닌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습니다. 공장에 단속을 나갔을 때 직원들이라던가, 시골 민가에 단속을 나갔을 때 이웃이라던가.... 한마디로 제3자인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 사람들의 태도나 반응을 보면, 불체자나 고용주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이 갈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불체자의 이웃들은 마치 자기가 단속된 듯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어떤 불체자의 이웃들은 저희에게 따라오라며 앞장 서시기도 하죠.
공장을 갔을 때도, 어떤 공장 직원들은 마치 저희들이 자기 집에 쳐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싸우려 들지만, 어떤 공장 직원들은 팔짱끼고 구경만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보는 곳에서 슬그머니 어디에 숨어있다고 가르쳐 주시기도 하죠.

이건 한국인만의 일이 아닙니다.
공장에 단속을 나가면 합법체류자가 저희를 유인하기 위해 먼저 달아나고 불체자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곳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민가에서 외국인을 검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합법적체류자 였죠. 그런데 그 분이 서툰 한국어로 손짓 발짓 해가면서 자기 앞 방에 불체자가 있는데 언제 돌아온다고 알려주더군요. 저희 차에 함께 타고는 다른 불체자들이 숨어 있는 곳을 직접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공장에 단속을 나갔을 때는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이 자기 공장의 불체자가 지금은 없는데 돌아오면 신고하겠다면서 전화번호를 알려달라시던 일도 있었고, 언젠가는 저희가 단속한 불체자가 자기와 함께 있던 다른 불체자를 찾아주겠다며 앞장서셨던 일까지 있었습니다.
단속된 불체자가 자기 짐을 가져가겠다며 저희를 데리고 자기 숙소로 가는 일도 많습니다. 가보면 거의 다른 불체자도 있죠. 챙겨가려는 짐이란게 별 거 아닌 일이 많은데[새 구두와 입던 옷가지 조금이라던지], 저희와 가면 함께 있던 다른 불체자가 잡힐거란 것 뻔히 알면서도 그녀석 잡히던 말던 나는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겠다 뭐 이런 거죠.

단속된 불체자와 함께 일하던 한국인들이 이별을 안타까워하며 작별하시는 일도 자주 있죠. 고용주도 그렇습니다. 꼭 면회가겠다며 지갑에서 되는대로 돈을 꺼내 불체자에게 용돈을 찔러주시던 고용주나, 벌금은 자신이 얼마든지 내겠으니 불체자가 계속 있게 해달라시던 고용주도 있었습니다. 거꾸로 단속된 불체자가 밀린 임금을 포기하면서 고용주를 보호하려던 일도 있었습니다[불체자를 쓴 고용주도 불법고용으로 범칙금을 내게 되는데, 불체자가 -밀린 임금까지 포기하면서- 자신은 그 고용주 밑에서 일한 적 없다고 주장하는 거죠].

이야기를 쓰다보니, 문득 언론이 잘못 만들어낸 상식[?] 하나가 생각나네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불체자를 '미등록이주노동자'라 부르는 언론들의 기사에 '고용주들이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임금을 떼먹기 위해 불체자로 신고하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가 가끔 나왔죠.
글쎄요....제가 우리나라의 모든 불체자의 모든 사정을 알지는 못합니다만,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고용주가 불체자와 관계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불체자는 강제퇴거 되면 그만이지만[이제는 범칙금이 부과됩니다만, 얼마전까지 법률에 규정이 있어도 불체자에게 범칙금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고용주는 불법고용으로 범칙금을 부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범칙금이 꽤 쎕니다. 몇십만원정도가 아니죠. 이게 고용기간이 길면 더 늘어나고, 고용한 불체자 수만큼 곱해집니다. 여기에 양벌규정이 보태지면? 정말 곡소리 나는 액수가 되버립니다.
더구나 불체자를 고용한 업체는 대부분 기숙사를 제공하다보니 불체자는 잡아넣고 고용주는 빠져나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고, 불체자를 단속하면 강제퇴거 전에 체불임금정산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면, 생전 처음 보는 저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이 가는 때가 많습니다.
'역사앞에서'라는 책을 보면, 후기에서 글 쓴 분의 아내가 한국전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로 이웃과 잘 지낸 것을 꼽으시더군요. 그 구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는 어떨까요. 아마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할 듯 싶습니다. ^^;;

2010년 7월 3일 토요일

잊혀지지 않는 꿈 둘

살다보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꿈을 꾸는 일이 가끔 있죠. 저도 두엇 있습니다. 아마 군 제대한 다음, 복학하고 공부하던 시절 꾸었을 겁니다.

1.
문득 심하게 썩은 거구의 시체가 제 앞에 나타나서는, 제 손을 덥썩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놀라지 마라. 내가 네 증조할아버지다. 너는 절대 공부하지 말아라. 그냥 돈이나 벌어라'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깼습니다.


2.
어떤 귀신이 붉고 푸른 구슬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냥 귀한 구슬들이 아니라, -마치 여의주처럼- 어떤 힘과 관련된 구슬들이었습니다.
그걸 제가 주웠죠. 구슬들을 돌려주러 귀신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들어가니, 어항에 오색찬란한 보석으로 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더군요.

귀신에게 구슬들을 돌려줬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보답을 하겠다며 그 물고기들을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지라더군요.
제가 귀신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죽지 않느냐?'
물고기들이 귀신 손에서는 잘 살지만, 내가 가져가면 죽을테니 안 가져가겠다는 뜻이었죠.

이 말을 들은 귀신이 희미하게 웃으며-그깟 일로 복을 차느냐는 얼굴로- 저를 빤히 쳐다보더군요.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네가 이루려던 꿈은 못 이루겠지만, 삶이 그럭저럭 견딜만은 할 것이다'



저도 나름 꿈을 품고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고,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간신히 밥벌이를 하게 되었죠.
그냥 처음부터 돈을 벌었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낫게 살고 있겠죠.
언젠가 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썼지만, 동네머슴으로 아들을 대학에 보냈다가 집안이 박살난 증조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충분히 하실만한 말씀입니다.

아무튼 그냥저냥 밥은 굶지 않게 된 듯 한 걸 보니 귀신의 말도 틀리진 않은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