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4일 일요일

사고

저희가 단속을 하다보면 가끔 사고가 납니다. 그 가운데는 언론에 나가는 것들도 있죠. 그런 보도들을 보고 저희들을 '인간사냥꾼'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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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젠가 베트남 불체자들의 도박모임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인 둘이 추락사한 일이 있었죠. 경찰과 저희 쪽[제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사무소였습니다]의 합동단속이었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주관한 단속도 아니었고, 불법도박 건이라서 그런지 언론에서 그리 크게 문제삼지는 않아 그냥저냥 넘어간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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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진보적 언론에서 단속대상보다 적은 인원을 투입하고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었다며 비판하더군요. 한마디로 제대로 된 대비도 없이 단속해서 사람이 둘이나 죽은 것 아니냐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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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 언론에도 보도되었습니다만, 단속전 들어온 첩보로는 도박판이 벌어질 곳은 지하였습니다.
나. 에어매트 등의 안전장비를 갖추면 좋겠습니다만, 경찰은 어떤지 몰라도 저희는 그런 장비 자체가 없습니다. 있다고 쳐도, 은밀히 덮쳐야 하는 단속의 특성상 사전에 안전장비를 설치해 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전에 안전장비를 설치한다면? 안전장비 설치하는 걸 보고 단속 눈치채고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다가 다른 사고가 나겠죠.
다.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곳을 [경찰과 저희 다 합쳐]15명으로 단속한 것을 문제삼던데,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단속반이 기껏해야 열명도 안되는 사무소가 많습니다[큰 사무소는 좀 더 많습니다만, 그래봤자 뻔한 숫자입니다]. 단속시 상대보다 우리의 인원이 많은게 안전하다는 것은 저희가 가장 잘 압니다. 불체자가 저희를 공격하지 않고 몸싸움만 한다고 해도, 한사람 당 최하 두명은 달라붙어야 수갑을 채울 수 있거든요. 여자 또는 체구가 왜소한 사람들이나 두명으로 통제가 되지, 힘이 센 몽골/우즈벡 사람이라면 서넛은 달라붙어야 합니다. 근육으로 뭉친 나이지리아 사람이라면? 너댓은 돼야 할 걸요?
여러분이 단속반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안전하게 불체자가 서너명 있는 곳만 단속하고, 숫자가 많은 곳은 그냥 나몰라라 할까요? 아니면 다는 못 잡더라도 단속을 해서, 최소한 쫓아내기라도 해야할까요? 단속을 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더 몰려듭니다. 그러면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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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속된 불체자를 수갑 따위로 때려서 문제된 사건이 있었죠.
제가 아는 분이 계신 사무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분 말씀을 들어보니, 단속과정에서 각목과 소주병을 들고 공격을 했던 사람이라는 군요. 단속된 뒤에도 나이든 실장님께 침을 뱉으며 욕설을 퍼부었답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직원분이 마침 옆에 있던 수갑을 들고 때렸다는군요. 결국 때린 직원분은 사표를 써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수갑이 사람패기 좋은 도구인가요? 그거라도 들고 때릴 정도면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그 때 그 자리에 여러분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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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얼마전 단속된 불체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어느 대학교수님께서는 함께 단속된 불체자들이 구타를 증언하고 있다며 '눈부처'를 바라보자는 칼럼까지 썼던 일입니다.
이 사건이 터진 곳에도 제가 아는 분이 계셔 사정을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빠루[뭔지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통쇠로 된 공구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시면 쉽게 사진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를 들고 덤비기에, 단속반원이 옆에 있던 빗자루로 손목을 때렸을 뿐이랍니다. 그 이외의 구타는 없었고, 빗자루로 때린 손목에는 외상도 남지 않았을 정도라네요.
국과수 부검결과, 심장의 혈관 3개 가운데 하나는 아예 막혔고 하나는 거의 막혔던 것이 사인이라합니다[그 때문에 단속차량에 제세동기를 비치하는 조치가 이뤄지고 있죠].
덧붙이면, 이 사람의 죽음 뒤에도 역시나 보기 안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네요. 저는 잘 모르고/ 알아도 말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사람의 죽음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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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겪은 일입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불체자 십여명이 단속반을 밀어젖히고 우르르 도망가더군요[이 일도 단속반이 적어서 생긴 일입니다. 단속반이 많았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죠]. 그러다가 골조공사를 위해 세워둔 철근들을 마주치자, 그대로 뚫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이 철근을 타넘으려다가, 그러지 못하고 매달리더군요. 직경이 30밀리쯤 되는 굵은 철근이었지만, 사람이 붙잡고 매달리자 휘어져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뒤통수를 처박아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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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바로 몇미터 뒤에서 그걸 봤습니다. 이런 말하기 뭐 합니다만, 순간 떠오른 것은 '불쌍하다'가 아니라 '실장님[단속반 책임자] 옷벗겠구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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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노가다 아저씨들이 몰려와서 쌍욕을 퍼부으며 항의하더군요. 언론에서 흔히 떠드는 대로 '야만적인 불체자 단속에 격렬히 항의'했다고나 할까요? 단속을 시작하자마자 저리 된 일이고, 저 일 뒤에도 저희를 공격한 불체자가 없었기 때문에 저희가 때린 사람은 아예 없었는데도 그러더군요[건설현장에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건 아니다 싶은 경우도 많아요. 술에 취해 전화해서는 외국인이 저렇게 많아서 일감도 없고 일당도 오르지 않는데 왜 단속하지 않냐고 욕을 퍼붓다가도, 막상 단속을 나가면 아무 것도 안했는데도 쌍욕을 해대며 시비걸면서 한대 쳐보라고 하는 일도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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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를 불러 병원으로 보내니, 의사가 심각하게 말했다는군요. 입원을 시켜놓고 돌아왔는데, 바로 그날 밤 환자가 달아나버렸습니다. 의사도 '야만적인 인간사냥꾼'보다는 '불쌍한 미등록외국인 노동자' 편이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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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시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단속된 외국인 하나가 눈치가 예사롭지 않더군요. 공연히 엄살을 피우는 꼴이 곧 무슨 짓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점심 때가 되어 단속차량이 멈춰서자,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화장실로 데려갔는데, 역시나 일을 보지 못하더군요[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지 않는 것을 알기에 오래 기다려줬더니, 쪼르륵 하고 끝을 내더군요]. 화장실로 가며 감시가 덜한 틈에 달아나보려 했던 것이죠. 그 사람 수갑이 헐렁하기에 조이고[수갑이 헐렁하면 손목을 뺄 수 있습니다], 잔머리 쓰지 말라고 윽박지르며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 화장실에서 제가 때렸다고 다른 직원들에게 하소연하더군요. 그러자 놀라운 것은, 다른 직원들이 제가 때리기라도 한 듯 취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고, 저를 좋지 않게 보는 동료도 있긴 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단속이 비전이 없다는 것은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제 마음이 조사과를 완전히 떠난 것은 이 일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사정으로 조금 더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조사과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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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이란게 험한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다 불필요한 누명까지 쓰게되면, 일하고 싶은게 이상한 거죠. 요즘들어 공무원 인기가 좋아졌다고는 해도, 공무원 조직이 일류급 인재들이 모이는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 단속분야는 기피보직이 되어버리면서, 결국 그나마 쓸만한 인재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게 되죠. 제가 처음 조사과에 왔을 때, 단속이 주먹구구로 이뤄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무엇 때문일까요? 그리고 누구의 손해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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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잘못은 하고, 그에 대한 비판은 받아야 합니다. 시민이 공권력을 비판적으로 감시한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없는 말 만들어가면서 물어뜯는 것이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자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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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다가 시간이 없어서 마무리를 못짓던 사이, 중국 어선을 단속하시던 해경분께서 순직하셨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희도 노가다판 등을 덮칠 때 일어나기 쉬운 일인데, 예전에 썼듯이 '무리한 추적은 자제해서' 일어나지 않을 뿐이죠. 해경은 배위라서 그러지 못해 일어난 일인 듯 합니다.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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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여론이 격앙되어 있더군요. 저건 어민이 아니라 해적이라고. 예 맞는 말입니다. 흉기를 휘두르면 사살이라도 해야 하는게 옳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들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위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쌍한. 감옥의 범죄자들도 똑같습니다. 위험하니 감옥에 있어야 합니다만, 나름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죄에 맞게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고, 흉기를 들고 저항하는 자는 사살이라도 해야 마땅합니다만,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미워할 것 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겪은 일이 있어서 이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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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갈고리를 든 불체자와 싸운 글을 썼습니다만, 그럴 뻔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불체자 한명이 한팔 길이 쇠갈고리를 꼬나잡고 슬금슬금 빠져나가더군요- 다가서기만 하면 찍어버릴 기세로. 제가 따라붙으니 지하실로 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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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봉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을 일이라서 마침 옆에 있던 삽을 집어 들었습니다. 조명도 없는 지하실에 랜턴을 켜들고 내려가보니, 천장 배관에 매달려 숨어있더군요. 삽으로 엉덩이를 툭툭치면서 내려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삽을 들고 있어서인지, 싸울 생각은 않고 내려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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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갈고리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저도 삽을 내려놓았더니, 반항하려고 하더군요. 별 수 없이 때려잡았습니다[물론 삽이나 도구를 쓴 건 아니구요]. 수갑을 채워서 단속차량에 실어놓고, 시커멓게 뒤집어쓴 검댕을 털어내며[지하실에 검댕이 무척 많았습니다] 한숨 돌린 다음 돌아와보니,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한 사십대 중반의 꾀죄죄한 아저씨가 앉아있더군요. 제게 얻어맞을 때 많이 무서웠나봅니다. 솔직히 저도 한팔길이 쇠갈고리만 보였지, 그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수갑채워 놓고 한숨돌리고 나니 사람으로 보이더군요. 중국 어민들도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

2011년 11월 26일 토요일

국무상강 무상약 (國無常强 無常弱)

제가 일을 하다 보면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느끼게 되는 것이 있더군요.

얼마전 러시아가 불법체류 다발국가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 나라 사람들은 살아보겠다고 여기저기로 흘러가게 되었죠.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와서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쳤습니다. 불법체류는 물론이고 총기밀수나 성매매까지.
그런데 지금은 한풀 꺾인 느낌입니다.
제가 있는 쪽에서는 불체자단속을 하면서 러시아 사람을 잡은 일은 많지 않거든요.
언젠가 러시아 여성분의 일을 처리한 적이 몇번 있었습니다. 기록을 보니 몇년 전만해도 몸을 팔던 분들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로 평범하게 살고 있더군요. 과거는 가슴에 잘 묻어두었겠죠. 예전엔 러시아 아가씨들이 있던 업소에 지금은 다른 나라 아가씨들이 더 많은 듯 합니다. 물론 부산이나 동해같은 항만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불체다발국 명단에서도 빠지게 되었겠죠. 러시아가 다시 세계를 호령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한고비 넘긴 것은 확실합니다.

유흥업소에서 러시아 아가씨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필리핀 아가씨들이 메꿔버린 듯 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불체하다 잡히는 일도 많고, 우리나라에서 살아보려고 늙은 우리나라 남자와 결혼하는 아가씨들도 많습니다.
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던 나라였죠. 황석영 선생의 무기의 그늘이었던가요? 수세식 화장실을 어떻게 쓰는 지 몰라, 좌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웃던 필리핀 선원들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 시절을 기억하는 필리핀 사람들은 오늘날 어떤 심정일까요?

몽골을 보면 더합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소 바로 옆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습니다. 그 곳에 산성이 있구요. 몽골의 침입 때, 사람들이 산성 안의 샘물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게 되면서 산 이름까지 바뀌었죠[몽골침입 당시 춘주성에서는 물이 떨어져 모두 죽은 일이 있다는데, 샘물이 아니었으면 이곳도 그리 되었겠죠].
그렇게 우리나라를 휩쓸던 몽골사람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궂은 일 하면서 어렵게 사는 일이 많습니다. 어떻게든 우리나라에 더 머물러 보려 아쉬운 소리하는 / 불체하다 단속된 몽골인들이 저희 사무소를 드나들고 있죠.

베트남을 보면,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똘똘한 친구들이 많이 눈에 띄거든요. 지금 베트남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머지않아 옛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어찌될까요? 언젠가는 힘든 시절이 다시 오게 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더 뻗어나가게 애써야겠죠.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외국인노동자의 임금체불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외국인근로자들도 임금을 받지 못할 수 있죠. 예전에는 이 때문에 많은 피해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불법체류를 하면서 일했던 사람들이 아무래도 임금체불의 위험이 크죠. 많은 사람의 오해와는 달리, 이들도 법적 구제가 가능합니다. 불법체류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관계법이 적용된다는 것이 판례의 확고한 입장이고, 저희도 불체자들이 권리구제절차를 밟는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개입해야만 불체자가 밀린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불법체류의 경우 유효한 외국인등록증이 없어서 금융거래가 힘들죠(금융기관쪽 얘기를 들어보면, 여권만으로도 금융거래가 가능하다고는 합니다만, 많은 금융기관에서 외국인등록증이 없으면 금융거래를 해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모든 일이 잘 풀려서 밀린 월급을 그냥 현찰로 주고받는 경우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각종 구제절차를 거쳐 국가기관이나 보험사가 임금을 지급해주는 경우에는 불체자 명의의 예금계좌로 입금해줘야 하나봅니다. 이 때문에 저희를 찾아오는 불체자들도 없지 않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불체자들이 저희를 찾아오는 또 한가지 이유는 의료보험 문제입니다. 의료보험혜택을 받기 위해서 합법체류자로 자격변경이 필요할 때죠. 따지고 보면, 둘 다 돈문제군요.]

다만 불체자의 임금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두가지 있습니다. 이들은 불체상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처할 생각을 못하는 일이 많고, 고용주가 정말로 돈이 없다면 어떻게 할 수가 없게되죠.

합법체류자의 경우 임금체불을 대비한 보험을 들어두게 됩니다. 보험으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하죠.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무슨 말인가 하면..

단순노무를 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은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기한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눌러앉아 보려고 이런저런 머리를 굴려보죠. 우리나라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사람, 우리나라 사람에게 입양되었다는 사람, 느닷없이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난민신청자가 2009년 즈음부터 급증했죠. 일반인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실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제가 난민인정업무를 해보진 않았습니다만, 난민신청자들의 체류자격변경 신청건은 가끔 다뤄봤습니다. 신청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뻔히 보이는 경우가 상당수였습니다. '어? 이거 진짠가?' 싶었던 건도 한두군데 전화 걸어보니 불법취업이 드러나기도 하더군요]....

이런 건들은 아예 눌러앉아보려고 머리를 쓰고 발품도 많이 파는 경우이고, 간단하게 몇 달 더 버티는 방법이 임금체불이라며 구제절차를 밟는 것입니다. 대개는 고용주와 짜는 눈치더군요. 심각한 임금체불문제가 되어서 고용주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만한 선까지 버티다가, '이제 돈 다 받았다'며 나가는 것이죠. 그 동안 외국인근로자는 몇 달 더 돈을 벌고, 고용주는 한국인보다 싼 값에 외국인인력을 계속 쓰는 것이구요.
물론 이는 불법취업/불법고용으로, 단속되면 고용주는 범칙금을 세게 맞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업체를 다 단속되지는 않으니까 자주 써먹게 되나 봅니다.

외국인근로자의 임금체불 문제가 나오면, 이런 사정이 있어서 통계상 임금체불 건이 많아진다는 것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환부역조[換父易祖]

모욕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부모와 관련된 모욕이죠.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아버지가 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 뿐일 수 밖에 없는데, 둘 이상이라면 아주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니까요[물론 어릴 때 어머니가 재혼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고아원에서 입양되었다든지 해서 친아버지와 양아버지가 계실 수는 있습니다. 그런 가슴아픈 일을 겪은 분들께 할 말은 전혀 아니겠죠].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위해/ 더 머물기 위해/ 영주권이나 국적을 따기 위해 멀쩡한 아버지를 갈아치우는 일들도 일어납니다. 우리 국민의 외국인 자녀는 F-2-2 라는 체류자격으로 우리나라에 머물 수도 있고, 일정요건을 갖추면 영주권이나 국적도 신청할 수 있거든요. 이 시대의 환부역조[換父易祖]랄까요?

가장 흔한 방식이 아주머니가 국제결혼으로 시집온 다음, 아들이나 딸[물론 갓난아이나 어린아이는 아니죠. 그런 사람들은 의심도 안합니다.]을 새 남편에게 입양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서 쓴 것처럼 가슴아픈 집안 일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위장결혼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다른 나라 사람이니 그 이름을 외우기 힘들다고는 해도, 몇달씩 같이 살아왔고 지금도 집에서 함께 잘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기 아들'의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을 보면 의심을 안할 수 없죠.

심지어는 '아버지 갈아타기'도 합니다. '남편 갈아타기'와 함께 하더군요. 처음 그런 사람을 봤을 때, 참 당황했습니다. 남편 갈아타기야 하도 봐서 그러려니 하고, 나름 이런저런 꼴 많이 봤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버지 갈아타기'는 충격력이 컸습니다. 무슨 삼국지의 여포도 아니고, 아버지가 셋이라니...

조선족의 경우, '외국국적동포'로서 여러가지 혜택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적취득 요건이 갖추어지면, 현 체류자격이나 체류기간을 묻지 않고 바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그래서 국제결혼해서 온 아주머니의 아들/딸들이 계부에게 입양되어 국적법 7조의 특별귀화자로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하는 일도 많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우리나라 제적등본에 남아있다면서 국적법 6조의 간이귀화자로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하는 일도 많습니다.

앞의 경우는 위에서 다룬 것과 같고, 뒤의 경우는 참 큰일입니다. '내가 누구 아들이다'라면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하는데, 문제는 그 사람이 해방 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에서 죽은 사람이라는 거죠. 한마디로 확인이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제적등본의 인적사항이 중국 호구부의 인적사항과 다른 경우도 많은데,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그 처럼 악용하기 좋은 상황도 없죠. 요즘은 검찰 쪽과 연계해서 유전자감정을 하고 있습니다만, 전에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가운데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갈아치운 사람은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단순노무인력도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E-9이라고 해서 각종 공장이나 농장 등 중소업체에서 일하는 분들인데, 흔히 외국인노동자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 분들이죠. 언젠가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분들은 우리나라에서 머물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분들이 무더기로 국적을 취득했다가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거든요. 그런데 단순노무인력 가운데 상당수가 머물 수 있는 기한이 끝났습니다. 그러자 더 머물려고 이리저리 찔러보는 일이 많은데, 어떤 사람은 아예 양자로 들어가더군요. 어떤 아주머니의 양자로 들어갔는데, 두 사람의 태도를 보고 있자면 뭔가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더군요. 양어머니의 적극적인 애정표현을 양자가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튼 국민의 양자라도 성년인 사람은 F-1자격을 가질 수 있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도 -제가 따로 찾아보진 않았습니다만 아마도-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아무튼 어찌되었던 저렇게 해서라도 뜻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찍부터 들어왔고/국제결혼도 많이 했고/외국국적동포로서 혜택도 있는 조선족이 많죠. 각종 언론에서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가정이 깨지는 일도 많다는 이야기를 보신 일이 있으실 겁니다. 모르긴 해도, 그 가운데 상당수는 저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돈 벌어보려고 아버지를 갈아치웠는데 집안이 무사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뜻은 이루었겠지만, 그래서 더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네요.

2011년 10월 9일 일요일

임신

국내 체류중인 불체자 등이 임신을 한 것을 가끔 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 국민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것이라면 국내에서 그 사람과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게 됩니다만, 같은 불체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경우라면 자기나라로 돌려보내야죠.
언젠가 만삭의 불체자에 대한 글에 썼듯이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외부기관에서 받아온 건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불체를 하다보면 몸도 마음도 힘들겠죠. 그때 같은 나라 사람이 곁에 있으면, 정도 들고 함께 하게 되겠죠. 그러다보면 아이도 생기게 될 테고.

그런데... 그러다가 여자가 잡혔을 때, 남자가 제발로 오는 경우는 별로 못본 것 같습니다.
물론 불체자판 기러기아빠가 되어, 여자와 아이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돈을 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나중에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먼저 온 여자와 아이를 찾긴 할까 싶기도 해요.
언젠가 단속에서, 여자가 잡히던 말던 열심히 도망가던 녀석이 떠올라서 이렇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잡고나서 왜 여자는 팽개치고 갔냐고 하니, 멋적게 웃기만 하던데...

결혼이민자에 대한 신원보증서

얼마전 인권위원회에서 결혼이민자에 대한 신원보증서 징구 폐지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http://www.humanrights.go.kr/04_sub/body02.jsp?NT_ID=24&flag=VIEW&SEQ_ID=602669

이와 관련해서 언론보도도 있었군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10/02/0200000000AKR20111002037600004.HTML?did=1179m

신원보증서의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이곳에 양식이 있습니다
http://www.hikorea.go.kr/pt/DownLoadTemplPopupR_kr.pt

제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기에 좀 읽어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좀 어이가 없네요.
저도 별로 아는게 없습니다만, 저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 말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아는 데 까지만 써봅니다.

1. 신원보증서를 받는 제도는 출입국관리법 90조에 따른 것입니다. 이는 1992. 12. 8일 법 4522호로 출입국관리법에 도입된 제도입니다. 당시 국회심의 기록을 보면, 시행령이나 규칙상의 제도를 법률상 제도로 끌어올린다는 말만 있고, 구체적인 입법이유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로서는 언론보도처럼 신원보증법에 따른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신원보증서 제도는 실무상 여러 체류자격의 여러 민원에 대해 폭넓게 쓰입니다. F-1, G-1, H-2-C[유학생이 부모를 초청할 때 입니다. 연장의 경우는 아니죠]처럼 고용계약과 전혀 상관이 없는 체류자격의 사증발급인정서 발급/체류자격 변경/체류기간 연장의 경우에 신원보증서를 받는 경우가 많죠. 또한 그 신원보증인이 지는 책임도 국내 체류중 제반법규 준수와 출국비용/보호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것입니다. 이를 감안해 보면, 신원보증서 징구 제도가 처음에 신원보증법의 영향으로 출입국관리법에 도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설사 언론보도가 맞다고 치더라도, 신원보증법과는 별개의 독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상태라고 보입니다.

2. 2011년판 출입국관리법 해설에 따르면, F-2-1[결혼이민자들의 체류자격입니다] 의 경우 위장결혼이나 무단가출에 따른 소재불명 등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인 배우자에게 신원보증을 받되, 국민의 배우자가 국내에 없거나 보증능력이 없으면 사실상의 부양자/형제자매/기타 동거인 등이 할 수도 있고, 국민인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이혼한 경우 친척이나 보증능력[한마디로 경제력입니다]이 있는 제3자도 신원보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업무처리시 따르게 되는 지침상 규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당신[=신원보증인] 믿고 이 사람 국내에 머물게 허가해 준다. 그런데 위장결혼일 경우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소리죠.

그런데 이 제도는 실무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F-2-1 체류기간연장허가시 신원보증서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고, 받더라도 당사자가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결혼이민자가 가출할 경우 신원보증을 철회하러 오긴 합니다만, 이 때도 무슨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원보증서 때문에 결혼이민자들이 열등한 관계가 되고 맞고산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작위로 추출해서 50%의 결혼이민자는 체류기간 연장시 신원보증서를 받지 않고, 나머지 결혼이민자는 체류기간연장시 신원보증서를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신원보증서를 받지 않는 가정은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신원보증서를 받은 가정은 결혼이민자가 두들겨맞을까요? 이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데 한표 던집니다.

3. 신원보증서를 국제결혼가정에 적용할 경우, 국가는 사용자, 한국인 배우자는 중간관리자, 결혼이민자는 피용자가 된다구요? 실무상 이혼소송 중이나 혼인파탄 후[그러니까 배우자의 신원보증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체류기간 연장신청시 이혼소송을 위임받은 변호사, 심지어 여행사 직원이나 행정사, 인권운동가도 신원보증인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다면 이런 경우 결혼이민자는 변호사/행정사/여행사/인권활동가의 피용자가 되는 것입니까?

4. 결혼이민자의 가출로 혼인생활이 유지되지 않는 경우 국내체류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가출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것이라면 당연히 체류기간 연장허가가 됩니다. 가정폭력으로 이혼 한 경우, 다른 요건이 갖추어진다면 영주권이나 국적신청도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두들겨맞다가 쉼터로 피했더니 나라밖으로 내쫓는다는 식의 주장은 말이 안됩니다.

5. 결혼이민자가 한국인 배우자에게 열등한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원보증서 때문이 아닙니다.
가. 먼저 외국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배우자 이외에는 이 곳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가서 어떻게 하소연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찌어찌해서 찾아가도, 말이 잘 안통합니다. 각종 관공서에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직원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타이/베트남/캄보디아라면 어떨까요?
우리가 외국에 나갔다가 어려운 일을 겪게되면 어떨까 생각해보시면 쉽게 아시게 될 겁니다.

나. 더구나 국제결혼중개로 이루어진 결혼이라면 문제가 더해집니다.
1) 먼저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끼리 거의 매매혼에 가까운 결혼을 하게 되죠. 이런 경우 양성평등이 이뤄지는게 이상한 겁니다. 우리나라 국민끼리 결혼한다고 해도, 처음보는 사람들끼리 돈에 팔려 결혼을 한다면 그 삶은 뻔해지는 거죠.
2) 또한 결혼생활이 끝날 경우에도 결혼이민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애초에 결혼을 하다보니 우리나라에 온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오기 위해 결혼을 한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결혼이민자의 국내체류가 배우자에게 의존하게 되는데, 이것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럼 결혼이민자의 국내체류가 배우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 결혼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에 들어올/ 머물 수도 없던 사람이 결혼때문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머무는 것인데, 국내체류가 배우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이게 잘못된 것이라면, 혼인 후 국내 입국하자마자 그냥 이혼해버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결혼사기가 합법적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국민인 배우자가 이를 이유로 각종 인권침해를 한다면? 위에서 쓴 것처럼 국민인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한 경우 국내 계속체류가 가능하고, 국적/영주권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죠.
- 결혼이민자들이 국민인 배우자에 비해 불리한 관계에 있는 것은 맞습니다.
- 결혼이민자의 국내체류가 배우자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은 아니고 당연한 것입니다. 결혼사기를 생각해보시죠.
- 신원보증서 제도는 결혼이민자의 인권침해와 별 상관없습니다.

2011년 10월 1일 토요일

가출

어떤 분들께서 오셨습니다. 아들이 국제결혼을 했는데, 며느리가 가출을 해버렸다네요.
자주 있는 일입니다만, 이런 분들이 오실 때마다 저희는 긴장하게 됩니다. 막말로 마누라/며느리가 도망갔는데 눈에 뵈는게 뭐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저희가 딱부러지게 도와드릴 수 있는 것도 없는 상황에서 사무소가 난장판이나 안되면 다행이죠.

아무튼 조심스레 이야기를 듣다보니, 여자 쪽에서는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위해 이분들을 이용했더군요. 뭐 이런 건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습니다. 냄새가 납니다.
구체적인 건 밝힐 수 없지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결혼이민자는 그 나라에서 몸을 팔던 아가씨였고, 우리나라에 선을 대둔 상태에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___]의 매춘조직에서 결혼사기 형식으로 조직원을 우리나라에 들여보낸 것 같더군요.

어찌보면 저런 일이 없는게 더 이상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달에 100만원 남짓 벌어도 그 나라에서 버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데, 보통사람이 벌기 힘든 돈을 만지게 되는 일이라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죠. 뭐 못할 말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미국 등에서 많이 하는 짓 아니겠습니까.
아마 저 또는 피해가정에서 몰랐을 뿐이지, 이 사람만 이런 건 아닐 겁니다.

흥분하시기도 했고, 시골노인분들이라서 말씀하시는 것이 정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리저리 물어봐가며 간추려서 경찰 분께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경찰분께 말씀드릴 때 저도 횡설수설하게 되더군요. -_-;;

제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드렸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으로서는 '결혼할 생각이 없던 결혼이민자가 가출해서 아는 사람을 찾아갔다'는 것 말고는 증거가 없습니다. 냄새는 납니다만,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판사를 확신시킬' 증거는 없죠. 그런 증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행정처분도 쉽지 않습니다. 다른 증거는 몰라도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이 없이 결혼사증[F-2-1]으로 들어온 것은 맞으니, 출입국관리법 89조에 따라 체류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같은 분위기에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물론 매춘조직연계가 입증가능하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슨 밥버러지 같은 소리냐!'고 폭발하시는게 당연하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만....요즘 '결혼이민자=사회적 약자'라는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는 별도로 정책적 판단 내지 정당한 법집행은 제대로 이루어져야겠지만, 현실적인 국민여론은 그게 아니죠.

아마 '개별사안에 따라 적정하게 일을 하면 되지, 왜 이렇게 뭉뜽그려가면서 핑계만 대는 걸까?'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옳으신 말씀이고, 저도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을 하다보면, 그게 아닙니다. -결혼사기에 대한 체류허가 취소건은 아니었습니다만- 사람들이 행정청에서 정당한 처분을 했다고 인정하게 되는 사안에서도 결혼이민자라면 동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데, 결혼이민자가 울고불고 악을 쓰면서 '공무원이 거짓으로 서류 꾸며가면서 나에게 불이익을 줬다'고 소리쳐 보십시오. 허위서류제출한 것은 결혼이민자일지라도, 잘 모르는 사람들 반응은 뻔합니다. 어떤 건에서는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까지 전화를 해서 큰소릴 치더군요. 저도 겪어보고 나니, 윗분들-바꿔말하면 저희보다 훨씬 오래 겪은 분들-이 저러는게 한편으로는 이해도 갑니다.

체류허가 취소야 그렇다 치고, 나중에 체류기간 연장은 어떨까요? 신청한다고 그냥 연장해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포기할 저들이 아니죠. 경찰들 쓰는 말로 '남편기리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구해서 남편으로 해두는 거죠. 위장결혼을 적발해 내면? 또다시 사정 딱한 사람+ 결혼이민자의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데 공무원이...'가 나옵니다. 그게 안통하면 소송까지 가기도 하구요.

행정소송이 제기되면 승소가 쉽지 않습니다. 제 선배님 한분께서는 위장결혼을 적발했는데, 추석/설때 남자의 부모를 만났다는 한가지만으로 위장결혼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까지 난 적이 있다네요[보충설명이 필요할 듯 합니다. 위장결혼했을 때 흔히 하는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명절때 부모님도 뵌다는 것(물론 가족과 입은 맞춰두죠)입니다. 제가 그 사건에 직접 관여하지 못해서 잘 모릅니다만, 재판부에서 불쌍하니까 그냥 그 주장 믿어주고 승소시켜준 것 같아요]요즘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저들도 머리가 있으니까, 문제가 되었다 싶으면 그때부턴 정말 함께 살아버리거든요. 적어도 재판이 끝날 때까진.

도대체 왜 이리 빌빌거리나 한심하시죠? 저는 오죽이나 갑갑하겠습니까.

2011년 9월 24일 토요일

권력분립

오랜만에 대학동기들과 만났습니다.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돌아오는데 문득 느껴지는게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일에 대해서 정말 아는게 없구나 싶더군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자기의 일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고 살게 되는 것이죠.
그 생각을 하다가, 권력분립문제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저희가 일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통제장치들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각종 감사-저희 부의 자체 감사/ 감사원의 감사/ 국정감사-도 받고, 개별사건에 대해서는 행정심판/행정소송에서 다뤄집니다. 그러니 저희 일을 아는 사람들이 꽤 많을 듯 싶지만, 저희가 보기엔 전혀 아닙니다. 물론 비리도 잡아내고 권익구제도 합니다만, 지켜보고 있자면 저 분들이 저희 일을 깊숙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정말 어찌해야 할 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물어볼 곳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저희도 외국인문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만, 저희보다 잘 아는 곳이 아무데도 없거든요. 저희를 통제하는 곳은 많아도, 저희보다 잘 아는 곳은 없습니다.

결국 저희 일은 저희 밖에 모른다는 결론이 됩니다. 아마 저희만 이렇지는 않을 겁니다. 거의 모든 분야가 이렇게 되고 있는 듯 합니다. 밖에서는 건드리고 싶어도 몰라서[그런 분야가 있는지, 있다면 무슨 일들이 문제가 되는지, 문제가 된다면 어떠한 선택사항들이 있는지] 못 건드리게 되는.

헌법학에서 고전적 권력분립론의 위기라는 내용이 나오죠. 이제 실감이 납니다. 사회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복잡하게 되어, 저희가 완전히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데[현실을 완전히 파악/통제하고 있지 못합니다], 국회나 법원은 저희도 못 따라잡고 있다[행정부의 업무를 완전히 파악/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이를 보면, 지금은 소수의 집단이 국가를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해외 유학생의 절대 다수가 미국으로 유학가는 군인이었다죠. 미군은 2차대전을 치르면서 막대한 인력과 물자를 관리해야 했고[보통 군이라면 총쏘고 싸우는 것만 생각하지만, 세계대전에서는 인력의 모집/훈련/배치, 장비 및 물자의 조달/배분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군요], 그 과정에서 행정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군유학생들이 이를 배워온 것입니다. 그러나 군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는 여기에 맞설만한 역량이-질과 양 모두에서-없었고, 이는 군사독재의 지속이 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죠. 이제는 설사 쿠데타가 성공한다 해도, 군에서 국가체제 전체를 유지/관리할 능력은 없는 듯 합니다.

군 뿐만이 아닙니다. 기성 정치질서에 반기를 드는 신진세력이 대선과 총선을 휩쓴다해도, 국가경영능력의 부족으로 곧 주저앉아버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독재도 혁명도 불가능해진 시대가 된 것이 아닐까싶어요.

더구나, 이제는 국가가 사회 모든 분야를 다 아우르지 못하는 시대가 온 것도 같습니다. 단순히 국가의 통제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넘어서서[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던 시대가 있었는지 자체가 의문입니다만], 국가가 전문성의 부족으로 손도 대지 못하는 분야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자본의 위력'이란 말을 써가면서 경계심을 나타내기도 합니다만.

이제는 어찌될까요? 아마 과거와 같은 국가기관에 따른 3권분립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바탕을 둔 권력분립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 '다원성'이란 점에서 헌법학의 '포괄적 권력분립론'과도 통하는 면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만, 제가 그 쪽을 잘 몰라서 뭐라 말을 못하겠네요.
이미 우리사회에서 법조/의료/외교/군/금융/언론계 등이 파워엘리트로 군림하고 있죠. 각 국가기관/사회분야를 넘나들면서요. 예컨대 고위 군 장성이 전역 후 국방장관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어서 국방위원회에 있는 일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법조계/언론계 인사들도 행정부와 입법부를 넘나들고 있죠. 이들은 여당과 야당 모두에 있으면서, 당파적 이해때문에 서로 대립도 하지만 때로는 당파를 떠나서 뭉치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3권분립이라는 말보다는 사회세력들이 권력을 나눠가지고 있다는 게 맞을 겁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세력들이 여기에 참여하지 않을까요? 물론 모든 세력이 저렇게 되기는 힘들겠고, 저런 메인 파워엘리트 그룹 밑에 서브 파워엘리트 그룹으로 지분을 나눠갖게 되지 않을까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세력구도도 변해가면서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가지가 될 것같습니다. 먼저 해당분야의 전문성 또는 업무처리 능력. 또 하나는 해당 분야의 시스템 장악-바꿔말하면 정보의 장악. 저희같은 경우, 업무시스템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거기에 모든 정보가 들어있어서, 그게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죠. 아마 다른 국가기관도 비슷할 것으로 짐작합니다. 전문성이 없으면 정보가 있어도 그 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정보가 없으면 전문성이 있어도 추상적인 주장만 할 수 있지 실제 일은 할 수 없죠.

아마 우리세대가 죽기 전에, 지금까지의 권력분립론에 바탕을 둔 통치구조와는 상당히 다른 통치구조가 등장할 법도 합니다. 각분야별 파워엘리트들의 이합집산속에서 국가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면,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목표를 향해 돌진하다가 파국을 맞는 일은 사라지겠지만, 도약적 발전 또한 힘들어지겠죠? 조용히 지켜볼만한 일 같습니다.

2011년 8월 12일 금요일

결혼이민자의 가정내 인권침해에 대해서

여기저기에서 결혼이민자들의 인권침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이와 관련해서 두서없는 이야기 써볼까 합니다. 틈도 안나고 내공도 부족해서, 제대로 된 글이 아닙니다.

결혼이민자 '가'씨는 시댁에서 학대받다가 화장실에 감금되기까지 했다고 주장하더군요. 그런데 시댁 쪽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요즘 아파트 구조를 생각해 봐라. 화장실 문을 안에서 잠그지 밖에서 잠그냐. 어떻게 화장실에 가둘 수 있냐'고 반박하시더군요.
결혼이민자 '나'씨는 남편의 장애를 문제삼으며 시댁에서 종처럼 부려먹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댁쪽에서는 남편에게 장애가 있는 것은 맞지만, 결혼 전에 서로 만나보면서 이미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군요. 과도한 가사노동과 관련한 주장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그런 것이 심각하게 문제제기가 되었다면, 그에 대한 시댁 나름의 대응논리를 준비했겠죠. 그런데 그런 문제제기 자체를 몰랐습니다], 그 집에는 가정부까지 하나 쓰더군요.
결혼이민자 '다'씨가 가출을 했습니다. 남편이 저희 사무소에 와서 '가출신고를 해도 관공서에서 도대체 해주는 게 뭐냐'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보다못한 실장님이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얘기를 해 봤습니다. 결혼한 지 열흘만에 아내를 공장에 보내서는, 야근까지 해서 월급을 받아오면 반을 챙겼더군요[아내쪽 주장이 아니라, 남편이 제 입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결혼이민자 '라'씨의 시부모가 찾아왔습니다. 시집온 '라'씨의 낌새가 이상하더랍니다. 그래서 다른 결혼이민자의 도움으로 '라'씨의 핸드폰 문자를 읽어보니, 언제 어디로 달아나기로 약속이 다 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집왔더라는군요.
결혼이민자 '마'씨는 남편에게 맞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사법처리가 되었죠. 그런데, 남편은 시어머니가 '마'씨에게 맞았다고 생각해서 때린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마'씨를 때린 것은 맞지만, '마'씨가 정말로 시어머니를 때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결혼이민자 '바'씨의 남편은 술을 마시고 '바'씨를 때리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같은 결혼이민자인 '바'씨의 친구말에 따르면 괜찮답니다. '바'씨도 때린다나요? '바'씨와 남편을 모두 본 사람 입장에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바'씨가 덩치도 크고 성격이 만만치 않거든요.

아무래도 낯선 나라에 혼자 온 결혼이민자들은 인권침해에 취약한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정말로 인권침해에 시달렸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이죠. 예컨대 위의 '다'씨는 정말로 인권침해에 시달린 것이 확실합니다만, '가'씨와 '나'씨는 아닌 것 같죠. '마'씨는 자세히 조사해 봐야할 것입니다. '라'씨가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한다면, -해서는 안될 말이지만- 당할 짓 했습니다. '바'씨는 인권침해를 당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앞으로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 수준이지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사는 것이 모두 그렇듯, 여러 사람이 가지가지 일을 겪다보니 한데 뭉뜽거려서 다룰 일은 아니죠.

그런데 결혼이민자들의 인권침해에 대해서 여성단체쪽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열정은 높이 사야 하겠습니다만, 아쉬운 점들도 많습니다.
먼저 결혼이민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너무 쉽게 믿는 듯 합니다. 예컨대 위의 '가'씨와 '나'씨의 주장은 여성단체를 통해 제기된 것이었죠. 여성들 가운데 빈곤층 남성들을 혐오하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은 듯 한데, 그런 정서가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또한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절차에서 필수불가결한- 법적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예전에 여성단체에서 유명한 분께서 라디오에 나오셔서 성폭력에 대한 대응방법을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성폭력을 당한 경우 증거수집이 중요한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면 그것도 증거가 된다고 하시더군요. 증거수집이 중요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내용증명은 어떠한 내용의 우편물이 보내졌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지, 거기 쓰여진 내용이 사실이라고 증명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서울에 사는 일본인이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는 내용증명우편을 일본으로 부친다면,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일까요? 문제는 저것만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잘 모르시더란 것이죠.].
다만 인권침해를 당한 결혼이민자들이 그분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 강점을 살려나가야겠지요.
저희를 비롯한 정부기관에서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서 저분들이 나서게 된 점은 저희가 반성을 많이 해야겠습니다.

또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결혼이민자들이 이혼할 때, 우리 국민의 잘못으로 이혼하였다는 내용으로 조정/화해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를 가지고 결혼이민자의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는 것은 틀립니다. 우리 국민의 경우, 그 잘못으로 이혼한다고 해도 위자료만 주지 않는다면 불이익이 없습니다. 하지만 외국인의 경우 우리 국민의 잘못으로 이혼해야만 국내체류가 가능하죠. 그러다보니 법원에서 사건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 국민의 잘못으로 이혼한다는 내용의 문안을 넣어주는 경우가 많다는군요. 판결의 경우도, 판결문을 읽다보면 판사가 나름 고민을 해서 판결을 내린 것인지 얼른 사건 하나 치워버린 것인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습니다[제가 그분들을 평가할 주제는못됩니다만, 이유설시에서 티가 나는 것도 있더군요]. 아마 비슷한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한 영주권이나 국적취득을 위해 양자가 짜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로 결혼이민자가 자백간주로 승소하는 수법을 쓰더군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부부 모두가 자백간주로 승소판결을 얻는 것도 보았습니다[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판결문을 위조한 것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판결문들을 가지고 국민은 다른 외국여성과 다시 결혼하겠다고-한탕 더 뛰겠다고- 신청하고, 외국인은 국민의 잘못으로 이혼했으니 영주권을 따겠다고 신청하더군요.

결혼이민자가 정말 인권침해를 당했는지 밝혀내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만, 인권침해를 당한 여성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도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가해자에게 재산이 없다면 피해배상은 물건너 가버리죠. 물론 실무상 국내체류가 거의 무제한 가능하므로[우리나라와 자국의 임금차이 때문에, 결혼이민자의 국내체류는 경제적 의미가 큽니다] 어느 정도 손해배상에 갈음하는 역할을 하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일해서 돈 벌 기회를 얻는 국내체류가 곧 손해배상은 아니죠. 사실상 의미는 비슷해도 법적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또한 피해배상이 이뤄진 뒤, 피해자의 거취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문제입니다. 현행 법/행정실무상 인권침해를 당한 것이 확실하다면 국내체류는 거의 무제한 가능한데[F-2-1이라는 국민의 배우자 자격으로 머물 수 있고, 더 나아가 영주권이나 국적신청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피해배상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피해배상을 받고 나서도 국내에 계속 체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것이냐는 것이죠.
알지도 못하던 사람을 한두번 만나보고 만리타향으로 시집왔는데, 인권침해를 당했다면 다 걷어치우고 어서 돌아가고 싶은게 정상이겠죠? 그런데 이혼은 했지만 한국에 계속 있겠다고 한다면, 다른 목적을 가지고 결혼했다는 말밖에 안되거든요.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제가 이 문제 같습니다. 아직은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구요.

2011년 7월 23일 토요일

아저씨, 나랑 틀려?

어느 결혼이민자 분이 체류기간 연장을 하러 오셨습니다. 따라온 아들이 뜬금없이 제게 묻더군요.
"아저씨, 나랑 틀려?"
뭔 소린가 해서 멀뚱멀뚱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어머니가 당황해서 아이에게 말합니다.
"아니야, 아저씨도 한국인이야"
그때서야 감을 잡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한국인이야"
그러자 아이 엄마는 얼른 맞장구를 칩니다.
"맞아, 너도 한국사람이고, 아저씨도 한국사람이야"
그리고 힘없이 한마디 덧붙입니다.
"엄마만 외국인이야"
아마도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큰 고민을 하는 모양이더군요.

'외국신부수입'이 시작되고 세월이 좀 흐르니, 그 아이들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나 봅니다. 옛날에는 국제결혼은 있었어도 신부수입은 아니었죠. '신부수입'이 시작되었을 때 조선족/고려인 신부들이 많이 왔었지만, 한민족이었으니까 아이들의 정체성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부수입'이 동남아로 뻗어나가면서, 얘기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제 시대의 화두가 하나 드러난 것이죠.

먼저 못박아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대규모 이민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입니다. 인구감소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였다가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갈등이 우리나라를 휩쓸 것이 뻔히 보이거든요[노동력 감소가 문제된다면, 비전문취업 E-9 이나 방문취업 H-2 같은 사증들을 발급 수를 늘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들 사증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체류기간만료 후 귀국하지 않고 불법체류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방법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컨대 임금이나 각종 보험금의 일부를 귀국한 다음 자국내에서 받게 한다든지. 그러면 우리는 불체의 위험이 줄고, 외국인노동자 본인은 도난/강탈이나 낭비의 위험없이 목돈을 만들 수 있겠죠-바로잡습니다. 보험금의 경우 이런 것들이 벌써 이뤄지고 있네요. 이 때문에 군말없이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나라에 와서 결혼해서 잘 사는 분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들은 끌어 안아야겠지요.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이른바 사회통합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면, 사회통합이 제대로 된 것 같지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부족입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저희 조직 일선 사무소에 사회통합 전담직원은 거의 없었습니다. 체류지사무소 가운데는 가장 큰 서울사무소에는 전담직원이 두어분 계셨습니다만, 절대 다수의 지방사무소에서는 아예 전담인력이 없었죠. 다른 일 하는 짬짬이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나 어찌저찌 해내는 수준이었습니다. 요즘은 계약직 직원 한둘 쯤 두게 되었죠. 사무소마다 사회통합과를 두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된다 해도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몇을 넘기기 힘들 겁니다.

그 때문인지, 사회통합을 위한 활동들은 아직 이벤트성 행사 정도에 머무른 상태죠.[사통에 대해서 거의 아는게 없는 제 생각이 아니라 사통담당자의 고백입니다. 물론 각종 사회통합과정 교육도 많이 합니다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니, 일단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봐야 하는 상황인가 봅니다.

그러다보니 부작용도 나타나는 것 같더군요. 사람들을 끌어모으려고 이것저것 나눠주다보니, 이젠 무슨 행사를 하려고 홍보하면 나오는 반응이 '가면 뭐주는데?'랍니다. 10만원어치 쯤 되지 않으면 시큰둥 하다네요. 그만큼 가봐야 별 도움도 되지 않고 귀찮기만 하다는 뜻이겠죠.

문제는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죠.
사회통합이란 것이 여러 기관의 소관이 되나 봅니다. 외국인이니 저희 소관이고, 여성과 가족의 문제라 해서 여성가족부 소관이기도 하고, 지역주민의 문제라고 지자체 소관이기도 하나봅니다. 솔직히 각 조직에서 조직확대를 위해 사회통합에 경쟁적으로 뛰어든 면도 있다는 군요. 그래서 여러 기관에서 사회통합에 손대고 있는데, -그쪽에서는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희보다 인력과 예산면에서 훨씬 나은 곳에서도 저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인가 봅니다.

솔직히 이런 문제에 대해서 국가가 뭘 할 수 있는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다문화와 관련된 사회시설을 짓는다든지, 인력을 양성하는 것까지는 국가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생각해보면,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교육/홍보 정도인데, 그걸로 뭔가가 될 것 같지는 않네요[그렇다고 해서 그마저 손 놓아버릴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보죠. 우리는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바른생활을 배웠고, 중학교 때 도덕, 고등학교 때 윤리를 배웠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 조회종례,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 때마다 좋은 얘기 많이 들었죠. 그래서 우린 착해졌을까요? 우리가 바르게 산다면 그 덕분일까요? 군에서, 예비군/민방위 때마다 교육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린 애국심이 고취되고 안보의식이 투철해졌을까요?

국가가 이 이상 뭘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사회통합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교육과정을 만들어 강사가 거품을 물고 떠들어도,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일 뿐이죠. 열심히 듣는다해도, 그 덕에 뭔가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혼혈가수 인순이씨의 삶이 주목받은 때가 있었죠. 그것도 한 때였습니다만, 아무튼 사람들 인식이 좀 달라지긴 했을 겁니다. 이런 바람이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는지 누군가의 의도적 띄우기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어느 정도 먹혀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마 사회통합과 관련해서, 몇번 쯤은 써먹을만한 것 같습니다. 환풍기 수리공이었다는 허각씨가 돌풍을 일으키며 연예인이 된 것처럼, 다문화가정의 아무개가 무슨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화려하게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기도 쉽고 홍보효과도 만점일듯 합니다[예컨대 다문화가정 아이가 사법시험에 붙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국가가 어떻게 조작하기도 힘들고, 며칠 뉴스에 나오고 끝날 겁니다. 효과측면에서, 연예인이 계속 활동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죠]. 그러나 저것도 오래, 많이 할 일은 못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뻔한데, 문제는 심각합니다. 결혼이민자의 아이들은 단순히 외모만 다른 게 아니거든요.

저는 민원창구에서 매일 여러 쌍의 결혼이민자와 그 배우자를 만나봅니다. 그런데 '신부수입'이 이루어진 부부의 경우, 아내의 이름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남편은 몇 없습니다. 대개는 비슷하게 소리나는 한글로 한두마디 간신히 쓰는 것이 전부죠. 그만큼 교육수준이 낮고, 아내쪽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뜻입니다. 어찌보면 그럴만 하죠. 돈 천만원 들여서 데려오고-솔직히 말하면 사오고-, 아내 친정에 돈도 부쳐주는데 관심까지 퍼부어야 하냐고 대꾸하면 할말은 없어집니다[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면, 저런 사람들이 모두 아내를 종부리듯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만남은 저러했고 아내쪽 문화에 관심은 없어도, 사이좋게 사는 분들 많아요. 두사람 표정을 보면 알죠. 쉽게 이해가 가지 않지만 산다는 게 그렇더군요]

아버지는 교육수준이 낮고, 어머니는 -자기나라에서는 어떠했을 지는 몰라도-우리나라에 와서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아이 교육은 뻔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가난은 대물림되겠죠. 이제 못배우고 가난한데 생긴 것까지 다른 사회계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호남/서울과 지방의 갈등도 어쩌지 못하던 우리나라가, 이런 사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50년쯤 뒤 우리나라에도 오바마와 같은 대통령이 나올까요? 정말 힘들어 보입니다만, 아직 글러버리진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해 봐야죠.


**글을 끝내며 덧붙입니다.

다문화가정은 저렇게 문제가 심각해도, 적어도 혈연적 유대관계는 강력합니다. 아버지는 한국인, 자식들도 우리 피가 섞였고 이 땅에서 나고 자랐죠. 아마 그것이 문제해결의 가장 강력한 밑바탕이 되겠죠. 그런데 대규모 이민정책으로 피한방울 안섞인 가정들이 몰려온다면?

대규모 이민정책으로 우리 '상전들'을 모셔들이자는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정책을 세우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 지 몰라도 일반국민의 정서가 받아들일 수 없겠죠.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이민가정에게 주어지는 위치는 뻔해지죠. 생각해보십시오, 글로벌 인재가 우리나라에 그런 대접 받으러 오겠습니까?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몰려올까요? 그들은 어떤 문제에 마주치고, 또 어떤 문제를 일으킬까요? 그런 문제들을 해결 하기 위해 국가/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봐도 희망적인 상황이 그려지지가 않습니다. 대규모 이민정책은 누군가의 지적처럼 '역사적 과오'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1년 5월 14일 토요일

합법적인 브로커

우리의 법제도 또는 저희가 하는 일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생기기 마련이죠. 그래서 법적인 구제절차가 있는 것이고, 거기까지 이르진 않더라도 민원이 생기기도 합니다.

밖에서 보는 눈은 다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정말 억울한 일은 민원만 제기해도 해결이 되고, 웬만한 일은 법적인 구제절차를 밟으면 민원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되도 않는 억지를 쓰면서 뭘 좀 챙겨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권단체'로 가더군요. 인권단체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못 보았습니다만, 국민의 정부 즈음부터 인권침해가 줄어든 모양입니다. 교정시설의 인권상황이 문민정부 즈음부터 좋아졌으니까, 그보다도 한걸음 느렸던 셈이죠. 역사적으로 저들의 가치가 있던 시절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좀 많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저들이 합법적인 브로커가 아니냐고 비판하는 분들도 많고, 인권장수/인권팔이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합니다.

정부 보조금을 타기 위해 집회시위를 하는 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저와 함께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참 어이없는 일들도 있습니다.

어떤 인권단체에서는 불체자들에게 '우리 회원권이 있으면 단속을 피할 수 있다'면서 회원권을 팔았다는군요. 물론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는 것이지만, 말도 잘 안통하는 불체자들은 거기 속아서 회원가입하고 매달 몇만원씩[우연인지/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합법적으로 체류기간연장허가를 받을 때 내는 수수료와 같은 액수더군요] 냈던 모양입니다. 단속이 된 불체자가 아무 것도 모르고 당당하게 그 회원권을 내밀때.... -웃으면 안되지만-참 웃겼던 모양입니다.

또 어디선가에서는, 단속을 나가자 불체자가 제발로 걸어와서 잡히더랍니다. 이게 웬일인가 해서 보니 어느 단체에서 심하게 뜯어낸 눈치더군요. 대개 저런 곳에서는 종교와 관련된 간판을 내거는데, 기독교쪽 간판을 걸어놓고는 십일조를 걷어버린 듯 했습니다. 3d 업종에서 죽어라 일해서 대개 한달에 100만원 좀 넘게 받는데, 아무 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매달 돈십만원 넘게 뜯어낸 모양입니다.

저희쪽에도 인권단체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로 오가는 것만 몇번 보았고, 제 업무가 아니어서 자세한 사정을 알지는 못했죠. 그런데 관련된 일 하나를 제가 맡게 되면서 보니, 참 명불허전이더군요.

자세한 사정은 말할 수 없습니다만 대강 써보면...
어떤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누구의 책임도 아닌 일이었죠. 그런데 유가족과 저들이 달라붙으면서 일이 요상하게 변했더군요. 한마디로 책임이 없는 쪽에 책임을 덮어씌우고 한몫 뜯어내려 한 것입니다. 그에 더해 저 일을 핑계로 유가족이 여기에 눌러앉으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외국인은 구제절차가 끝날 때까지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는 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는데, 그걸 악용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일인데, 인권단체의 극성에 밀리면서 가능했던 것이죠. 저희야 유가족이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게만 해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잘못도 없이 책임추궁을 당하는 분들은 피가 마르겠죠[다행히 법적 책임을 지지는 않았지만, 그 일 때문에 여러해 동안 고생하신 듯 합니다]. 인권단체의 극성에 저희가 밀리면서, 애꿎은 분들이 당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저 같은 하급직원이야 위에서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고, 위에서는 언론이나 여론에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론은 저희에게 좋지 못합니다. 인권단체에서 저희에게 '인간사냥꾼'이라며 비아냥거리는 것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더군요[제 친구들과 만날 때도, 제 앞이라 차마 말은 못하지만 저희 일을 안좋게 보더군요]. 단속을 나가봐도, 저희에게 호의적인 국민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저희가 인권이란 말과 엮이는 순간, 여론에 두들겨 맞는 일만 남게 되죠. 그 때문에 위에서는 인권단체만 마주치면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고, 저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더군요.

언젠가는 나아지겠죠. 머지 않아서 여론의 흐름이 돌아서는 날이 올 거라고 봅니다.

2011년 4월 15일 금요일

생사람 잡은 일

얼마 전, 민원인 두분이 오셨습니다. 예전에 제가 맡았던 사건의 당사자들이 다시 신청하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한 분이 저를 기억하시더군요. 제가 위장결혼 여부를 조사하고, 위장결혼으로 의심된다고 보고서를 썼던 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위장결혼으로 볼 수 없는 사정이 하나 있더군요. 결국 제가 생사람을 잡았던 거죠.


    제가 썼던 보고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사건을 조사하며 적어두었던 쪽지도 다시 찾아 보았구요. 1년 쯤 지났지만 어렴풋이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봐도 뭔가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아니었나봅니다.

    제가 썼던 보고서 때문에 불허가 된 뒤, 그 분들은 다시 신청했습니다. 다른 분이 조사를 했고, 다시 불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신청하셨더군요. 그런데 이번에는 위장결혼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정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그분들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는 잘 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겠습니다.

    2011년 4월 9일 토요일

    무뎌짐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참혹한 범죄현장에서 신참은 구토를 하지만 고참은 아무렇지도 않게 처참한 시체를 뒤적거리는 장면이 가끔 나옵니다. 그만큼 무뎌진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저희 일도 이런 게 있나봅니다. 처음엔 누군가의 딱한 처지를 보면 정말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일이 많습니다. 사정 딱한 사람 단속해 놓고 옆에서 저희끼리 웃고 떠들기도 하죠. 영화처럼 피비린내에 적응하는 거야 별 일 아닌데, 마음이 무뎌지는 것은 참 씁쓸한 일입니다.


      제가 처음 잡았던 불체자가 생각납니다. 말 그대로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서 잡았는데, 그 사람은 땅바닥에 뻗어서는 어설픈 우리 말로 사정하더군요. 고향에 [돈을 부쳐줘야 하는] 가족이 있다고. 그 말을 들어줄 수 없었기 때문인지, 지금도 제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그런 일이 또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리가 풀리도록 뛰어서 잡았더니, 땅바닥에 널부러져서는 사정하더군요. 가족이 있다고. 제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못 알아들은 줄 알았는지 토막영어로 "I have family"라더군요. 처음과는 달리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갑을 채웠고 그 사람 곁에서 저희끼리 웃고 떠들게 되더군요. 참 씁쓸합니다.



          아마 잡히고 나면 으레 하는 소리 가운데 하나가 집에 가족이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돈을 부쳐줄 가족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겠지만, 가족들이 정말로 굶어죽는다는 말이 아니거든요. 한마디로 '생존'이 아닌 '욕망' 때문에 불체를 하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그 사람들의 나라에 가본 것은 아닙니다만, 단속된 사람들이나 그 나라에 오래 있어 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그런 것 같더군요.



            예전에 가난한 나라에서 온 분들의 입국심사에 대해서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희가 들여보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잡혔더군요. 멀쩡한 관광객을 단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이 아닌가 싶어서 안타까웠는데... 역시나 속은 거죠.



              단속이 된 뒤,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나라 말에 능통한 여직원에게 "너 우리나라 오지? 칼로 배를 찌르겠다"는 아줌마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민원업무를 하다보면, 딱해서 사정봐줬더니 뒤통수 치는 사람도 많았죠.



                  저희에게 사정하는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협박하는 사람... 얼핏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 때 상황이 달랐을 뿐이죠.



                    그래서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

                    2011년 3월 26일 토요일

                    가족의 의미

                    1. 결혼이민자들이 각종 민원 때문에 저희 사무소에 많이들 오십니다.

                    우리나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은 주눅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죠. 낯선나라 관청에 왔으니까요. 하지만 아주 당당한 분들도 계십니다. 바로 아이를 데려온 엄마들이죠. 우리나라에 시집을 와서 아이까지 낳았으니 우리나라 국민이 될 자격이 충분하신 분들이고, 그 때문인지 전혀 꿇리는 기색없이 당당하십니다.

                    제 동료가 그러더군요. 허구헌 날 위장결혼 조사하다가 저런 사람들 보면 고맙다고. 저도 그랬습니다. 실태조사 때문에 가정을 방문할 때, 문 열고 들어가는 순간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가 확 풍겨나오는 집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동거가 명백하다는 말 밖에는 보고서에 뭐라고 쓸 것도 없죠.

                    아무튼, 엄마는 아이 때문에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2. 어떻게 해서든 우리나라에서 오래 머물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들 그러시죠. 우리나라에 친지가 있으면 병간호나 산후조리 등을 구실[핑계인 사람은 티가 납니다]로 눌러앉아 보려 하기도 하고, 젊은 여성들은 어떻게든 우리나라 남자와 결혼을 하려 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께서 먼나라에서 오신 인척을 데려오셨습니다. 체류기간 연장신청을 하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핑계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더군요. 그 나라에서 오신 분은 처음 뵙길레, 왜 한국에 머물려고 하냐고 물어봤습니다. 데리고 오신 분께서 무심코 그러시더군요. 그 나란 워낙 못살아서 여기가 낫다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우리나라 남자와 결혼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시더군요. 저런 분들이 결혼에 성공하고 우리나라에 머물게 되면, 한마디로 남편 뒤에 숨어버리죠. 대개 아이는 낳지 않구요.

                    아무튼 저런 여자에게 남편은 방패막이가 됩니다.


                    3. 신분세탁을 한 사람을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잡아떼더군요. 저희가 가진 증거가 명백해서 벗어날 수 없는 사안이었는데도. 물론 그 사람은 그런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만.
                    증거를 들이밀기 전, 별 생각없이 한 마디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당신 아내와 어린 아이도 있지 않느냐. 그 사람들 당신 하나 믿고 와 있는데, 당신이 잘못되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 인정할 건 인정하고 선처를 구해야지. 왜 자꾸 일을 키우려 드느냐.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고분고분해지면서 불더군요[물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자백하는 머리는 쓰면서두요]. 모든 일에서 아주 협조적이었습니다. 혹시 내 말이 협박으로 들렸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 두들겨패진 않으니까 안심하라고 했더니, 씩 웃더군요. 겁을 먹은 눈치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 써보라고 했더니, A4용지 몇장을 빽빽하게 써내려가더군요. 우리나라에 와서 가난과 무시 때문에 고생하며 공부했고, 이제 제대로 된 기술자로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손가락 하나가 짧은 걸 보니 무슨 고생을 했을 지 훤하더군요.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할 때 돈을 대준 사람이 전화로 하소연하고 한국인 직장동료가 다급하게 달려오는 걸 보니, 사람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분세탁만 아니었으면 코리안드림의 모범사례가 될 사람이라는 생각에 저희들도 참 안타까웠습니다.

                    원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사법처리를 해야할 사안입니다만, 강제퇴거만 하기로 했습니다. 감옥에는 가지 않고, 보호소에 머물다가 임금정산과 항공편 구매 등 신변정리가 끝나는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죠. 아마 아내와 아이는 한발 앞서서 돌아가 기다리고 있겠죠.
                    배운 기술을 그 나라에서 써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 나라에 관련산업 기반이 닦여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뭘 도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저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아무튼 남자는 처자식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순순히 자백하기도 하더군요.
                    -------
                    덧붙입니다.
                    제 윗분께서, 이 사람이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사람을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다닌 학교/직장 사람들이 다 나섰더군요.
                    저희도 이 사람이 계속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또는 그 나라와 우리나라를 오가며, 관련 산업에서 활약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런 친구 하나 잘 키워두면 우리 기업이 그 나라에 진출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아마 직장에서도 그래서 나섰겠죠].
                    서른도 채 안되었고 머리도 좋은 듯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코리안드림을 이루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관련산업을 일으켜 세우든, 앞으로 큰 일을 해주길 빌어봅니다.

                    2011년 3월 5일 토요일

                    개밥

                    나와살다 보니, 가끔 집에 오면 달라진게 눈에 띄곤 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건강을 위해 잡곡밥을 하십니다. 그런데 집에 오니 흰 쌀밥이 따로 있더군요. 이건 뭔가 싶었는데 개밥이라고 하십니다. 개사료가 쌀보다 비싸서 그냥 쌀밥을 주게 되었다네요. 물론 싸구려 사료도 있지만, 쓸만한 사료는 쌀보다 비쌌던 모양입니다.
                    사람은 잡곡밥을 먹고 개는 백미밥을 먹는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보셨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1908년생이셨던 할머니께서는 개에게 하루 세끼를 준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셨으니까요.

                    저희 아버지 어릴 때[1940~50년대]는 개밥이라봤자 고구마껍질 정도였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어릴 때[80년대]는 먹다 남긴 밥을 주었습니다. 가끔씩은 쌀값 아깝다고 쌀집에서 싸래기[요즘은 마트 등에서 쌀을 사니 쌀집이 거의 없습니다만, 예전에는 다들 쌀집에서 사먹었죠. 쌀집에서 싸래기는 싼값에 따로 팔았습니다]를 사고, 생선가게에서 버리는 생선대가리를 얻어다가 개밥을 해주기도 했죠.

                    음... 단 몇십년 사이에 참 많은 것이 바뀌고 있군요.

                    2011년 2월 19일 토요일

                    솔축(率蓄)

                    옛날에는 솔축(率蓄)이라는 게 있었다지요. 저도 잘 모릅니다만, 여자 종을 아내로 데리고 사는 것이었답니다. 봉건제를 벗어난 뒤에도, 식모가 많던 시절에는 주인아저씨와 식모 사이에서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랑스레 내세울만한 일은 못되니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을테고, 저도 확실하게 아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분의 위장결혼 여부를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읽어보며 뭔가 있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찾아가 만나 보니 위장결혼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싶었는데, 그 분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솔축이란 말이 떠오르더군요. 요즘은 간병인과의 사이에서 그런 일이 생겨나나 봅니다[물론 전문적인 간병인을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간병인이란 이름으로 노인이나 병자 수발들고 집안일까지 도와주는 뭐 그런 형태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다른 업무를 할 때도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더군요. 아흔이 넘은 노인과 예순이 넘은 '간병인'이었는데, '간병인할머니'의 체류기간이 다 되어서 우리나라를 잠시 떠나야 했습니다[단순노무만 가능한 외국인력은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런 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글쎄요.... 뒷감당은 어쩌시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자 노인과 아드님께서 찾아오셔서는 '간병인할머니'를 더 머물게 할 방법이 없겠느냐며 상담을 하셨죠. 이 분께서는 금방 되돌아 오실 수 있는 경우였는데도, 어린아이처럼 되어 버린 노인께서는 잠시라도 떨어지기 힘드셨나봅니다. 다만 정식으로 혼인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실 날이 얼마남지 않은 노인을 혼인시켜드렸다가는, 아드님 입장에서는 상속문제 등 골치아픈 일들이 벌어질테니까요.

                    봉건시대에는 여종이었고, 60/70년대에는 식모였다가, 이제는 '간병인'이 되었나보네요. 지금의 간병인[다시한번 강조합니다만, 전문간병인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과 봉건시대 여종의 사회적 지위[또는 상대남성과의 관계]는 도저히 같게 볼 수 없습니다.
                    세월이 좋아지고 시대가 발전해 나아가면서, 점점 여성의 지위가 올라온 것이겠죠. 이런게 역사의 진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간 사람들 덕에 저는 이런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겠죠.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라는 것은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2011년 2월 8일 화요일

                    도살

                    요즘 구제역 때문에 말 그대로 난리가 났습니다. 구제역과는 아무 상관없을 줄 알았던 저희까지도 구제역 때문에 이런저런 지시를 받고는 하죠. 출입국심사할 때 축산관계자에게 검역관계 안내를 하라는 지시는 물론, 단속 및 홍보활동으로 불체자/외국인근로자의 이동을 줄여서[축사는 더러워서 외국인력을 많이 쓰죠] 구제역확산을 줄여보라는 지시까지도 있었죠.

                    구제역 사태와 관련하여, 살처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죠. 저도 그렇습니다. 멀쩡한 목숨들을 산채로 파묻어버리는 것을 보고 무덤덤하면 말이 안되겠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살처분은 정말 안타까운게 맞는데, 도살은 살처분보다 덜안타까운 일일까. 평소에 불체자 단속 때문에 축사나 도축장/도계장[닭잡는 곳]을 갈 일이 많다보니, 그 목숨들의 운명을 조금은 가늠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축사에 갈 일이 가끔 있습니다. 괜찮은 곳도 있습니다만, 말 그대로 '똥밭에서 구르고 있는' 곳이 많죠. 태어나서 풀밭이라고는 가본 적도 없이 쭉 그렇게만 살다가 가는 목숨들은 다르게 느끼겠습니다만, 과연 그리 사는게 죽는 것보다 나을지 모르겠더군요.
                    그렇게 살다가 -살처분되지 않으면- 도축장에 가게 되죠. 도축장에 가보면 '멱따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만, 피비린내 풍기면서 뼈와 살, 내장들이 널려있는 모습이 펼쳐지게 됩니다. 저희야 들어가면서 '이놈들이 어디에 숨었을까, 두건과 마스크를 쓴 저 사람은 국민일까 외국인일까, 불체자 잡았는데 칼부림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더 큽니다만.... 김이 서려 뿌옇게 되면서 피비린내 가득차 있던 공기가 기억에 남네요[참, 허영만화백의 식객이란 작품에 보면 도축장 내부는 대통령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건 아닙니다. 어쩌다보니 갈 때마다 제가 찾아들어간 곳은 '잡는 곳'은 아니었는데, 다른 분들은 저와 같은 행운(?)이 없었습니다. 들어갔더니 돼지머리가 눈앞에 뚝 떨어지면서 얼굴에 피가 튀더라네요].

                    언젠가 양계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농구공 하나 들어갈만한 닭장은 다를 바 없었지만, 어릴 때 보았던 그런 양계장이 아니었습니다. 문가로 다가가는 순간 거센 바람이 불더군요. 들어서자 제 키보다 큰 거대한 환풍기 여러 개가 돌아가고 있었고, 닭장이 몇층 건물 높이로 들어차 있었습니다. 가끔씩 정전으로 가축들이 질식사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곤 하죠. 그런 기사를 보면서 '아니 축사에 밀폐를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나?' 싶었는데, 가보니 알겠더군요. 사람 하나없는 양계장 한쪽에는 닭들이 낳은 달걀들이 천천히 굴러내려와 한곳으로 모여서 실려가는 것이, 양계장이 아니라 달걀공장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달걀을 그 값에 먹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된 날이었습니다.
                    또 다른 날은 도계장에 갔습니다. 도계장 입구 트럭에 실린 닭장들에는 벌써 여러마리가 뻗어있더군요. 몸부림도 제대로 치지 못하는 닭들이 기계에 거꾸로 매달린 채 죽 흘러가면, 조그만 쇠 막대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목을 쳐버리더군요. 달랑달랑 매달려있는 닭대가리를 사람이 하나씩 뜯어내고 있었습니다.

                    고기를 먹어야 하니 잡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저 목숨들이 살아있는 동안 더 좋은 곳에 있다가 가게 하자는 말씀도 많이 하시던데.... 그렇게 하려면 값이 더 오르겠죠? 그러면 누군가는 더 고기먹기 힘들어질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입으로 고기 한 점이 들어가기 위해서 벌어지는 일들이더군요.

                    2011년 2월 4일 금요일

                    탈북여성 2

                    제가 썼던 글들을 보다 보니, 탈북여성에 대한 글을 썼더군요. 다른 분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써볼까 합니다.

                    그분께서는 탈북을 하셨다가, 어딘가로 팔려가 버렸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누군가의 신고로 공안에 잡혀버렸다네요. 공안에 잡혀서는 경찰서도 아닌 민가(!)에 갇혀 있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는 '빼줄테니 우리 집 누구와 살지 않겠느냐'고 하더랍니다. 그 분께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죠. 그 제의를 받아들이자, 시댁식구들[정확히 말하자면 시댁식구가 될 사람들]이 와서 돈을 치르고는 그 분을 빼주셨답니다.

                    아마 탈북자는 밀입국을 했을테니 중국의 입장에서는 범법자겠지요. 어느 나라든지 다른 사람이 범법자의 벌금이나 보석금을 대신 내줄 수는 있을테구요. 그런 경우가 아니겠냐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중국법은 알지 못합니다만, 공안에 잡혔는데 관공서도 아닌 곳에 갇혀있었다가 돈을 치르자 풀려났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정말...제가 이 땅에 태어난 게 감사하고, 우리나라가 저꼴이 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2011년 1월 29일 토요일

                    범죄

                    가끔씩 경찰분들이 저희에게 찾아 오셔서 도움을 청하실 때가 있습니다. 지나간 몇몇 일들을 적어볼까 합니다.

                    1. 언젠가 변사체가 하나 발견되었답니다.
                    외국인인 것은 알겠는데, 누구인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도 알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셨죠.
                    그러나... 저희도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도 그 사건은 아무 것도 나아지지 못했을 겁니다.

                    2. 언젠가 총기도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렵용이지만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총이라네요. 유력한 용의자가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셨죠. 저희가 가진 자료는 다 뽑아드렸습니다만, 누군지 알아내기도/알아낸다 한들 잡기도 힘들었을 겝니다.

                    3. 언젠가 어느 외국인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하시더군요. 무슨 일이신지 여쭤보자, 굳어진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성폭력사건이라고.
                    찾는 사람은 이미 몇해전 불법체류를 이유로 강제퇴거 되었더군요. 범인이 인적사항을 도용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찾을 수 있는 자료는 모두 뒤져서 드렸고, 궁금해 하시는 것은 모두 알려드렸습니다. 범인을 꼭 잡으셨길 빕니다.

                    -----------뒤늦게 생각난 것이 있어서 보탭니다-----------
                    4. 언젠가 형사분과 함께 불체자를 하나 잡았습니다. 휴대폰이 여러 개, 각기 다른 명의의 통장이 여러 개 나오더군요. 심심해서 휴대폰과 통장들을 여러개씩 만들지는 않았겠죠. 그런데 증거부족으로 사법처리가 힘들었습니다. 형사분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그자를 저희에게 넘기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야만 했죠[그런 범죄는 경찰소관입니다]. 저희도 그 자를 강제퇴거시키는 것으로 끝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다 적지는 못합니다만, 이 밖에도 범죄수사 때문에 저희에게 찾아오시는 일이 많습니다.
                    그럴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범인이 외국인- 특히 불체자라면 더 잡기 힘든 면이 분명히 있더군요.
                    먼저 그들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뭉쳐있습니다. 누가 무슨 범죄를 저질러서 그 친구들을 찾아가도,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또한 삶이 안정되어 있지 않다보니, 여기서 범죄 저지르고 달아나도 다른 곳에 가서 그냥 살면 됩니다. 멀리 달아나서 기숙사 딸린 일터에 처박혀 있으면 수사기관에서 무슨 수로 찾아낼까요. 불체자 입장에서는 그런 일터 찾기도 쉽고, 쓰는 사람도 불체자의 과거를 묻지도 않습니다[물어본다한들 뭐하겠습니까마는]. 정 안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그만이죠.

                    불체자는 사회적 병균이란 말을 하려는 게 절대 아닙니다. 불체자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압니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도 저런 것들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런 어려움은 그들을 수사할 때도 같겠죠.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성인군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죠. 범죄의 유혹이 클 수록, 범죄를 저질렀을 때 치러야할 대가가 작을 수록 사람은 위험해질 수 밖에 없는데, 불체자의 경우 그런 여건이 갖추어졌다는 것이죠. 불체자가 무리를 지어 어떤 곳에 몰려살면? 말 다한거죠.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 불체자=인간쓰레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불체자=사회적 약자라 해서 영화 '방가방가'식 환상에 빠져서는 안될 겁니다.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스쳐간 짧은 생각 2011년 1월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누구 탓할 것 없죠.

                    이런 내 모습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한다면...
                    그것 역시 내가 안고 가야 하는 것이겠지요.
                    마음은 아프지만.....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2011년 1월 8일 토요일

                    누군가에게는 위장결혼이 어떤 의미일까요

                    위장결혼인지 알아내기 위해 어떤 여성분을 만나 보게 되었습니다.
                    미리 알고 갔던 것들도 있고, 이것저것 살펴보고 그분이 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장결혼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죠.

                    위장결혼이란 것은 밝혀진 것 같은데.... 그 분의 사정을 듣다보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분께서는 고아셨습니다. 돈도 없었죠. 장애까지는 아니지만, 혼사에는 충분히 장애가 될 만한 신체조건이셨구요. 그래서인지 나이들도록 짝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쉰이 다 되어서 처음으로 결혼을 하셨더군요-합법적 체류자격을 노리는 불체자[열살 넘게 어린]와 위장결혼을.

                    처음에 자료만 보고 갈 때는 '또 진상 하나 만나겠구나' 싶었습니다[다행히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만, 솔직히 언제 진상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 분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가족 하나없이 지내면서 쉰이 다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있는데, 열살 넘게 어린 사람이 가끔씩 찾아와서 자고 갈테니[돈도 주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주겠죠?] 위장결혼을 해 달라고 한다면.... 그 분에게는 그것이 어떤 의미였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범죄는 여러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자연범과 법정범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학문적 정의는 제쳐두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연범'이란 모두가 '자연'스레 '범'죄로 인정하는 것들입니다. 살인, 강도, 강간 같은 것들이죠. '법정범'이란 모두가 당연히 범죄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데, 어떤 사회적인 필요 때문에 '법'률로써 범죄라고 '정'해두어서 '범'죄가 된 것들입니다. 각종 행정법규 위반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마 저희가 다루는 불법체류/불법취업/위장결혼도 법정범일 겁니다.

                    자연범도 그 짓을 한 사람의 사정을 들어보면 딱한 경우가 있겠지만[물론 그렇다고해서 범죄자를 '필요 이상으로' 옹호할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법정범의 경우 사회적 비난이나 행위자의 죄의식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에, 사정이 딱하면 많이 안타깝겠죠. 그렇지만 그런 것을 법률로써 범죄로 정해둔 것은 다 나름의 까닭이 있어서이니, 불쌍하다고 마냥 내버려둘 수도 없습니다.
                    위장결혼들도 그렇죠. 딱한 사람들이 많이 한다고 그냥 내버려뒀다간, 머지않아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사회적 갈등이 우리나라를 뒤흔들 겁니다. 어디에선가 중국 조폭과 베트남 조폭이 전쟁을 벌이고, 다른 곳에서는 몽골 갱과 우즈벡 갱들이 죽고 죽이겠죠. 강남에서 폭탄 터지고 종로에서 총질하는 것이 영화가 아닌 현실로 되버릴지 모릅니다.

                    저희가 이 분을 위장결혼 혐의로 사법처리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위장결혼이 계속되는 것은 막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