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5일 금요일

생사람 잡은 일

얼마 전, 민원인 두분이 오셨습니다. 예전에 제가 맡았던 사건의 당사자들이 다시 신청하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한 분이 저를 기억하시더군요. 제가 위장결혼 여부를 조사하고, 위장결혼으로 의심된다고 보고서를 썼던 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위장결혼으로 볼 수 없는 사정이 하나 있더군요. 결국 제가 생사람을 잡았던 거죠.


    제가 썼던 보고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사건을 조사하며 적어두었던 쪽지도 다시 찾아 보았구요. 1년 쯤 지났지만 어렴풋이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봐도 뭔가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아니었나봅니다.

    제가 썼던 보고서 때문에 불허가 된 뒤, 그 분들은 다시 신청했습니다. 다른 분이 조사를 했고, 다시 불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신청하셨더군요. 그런데 이번에는 위장결혼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정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그분들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는 잘 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겠습니다.

    2011년 4월 9일 토요일

    무뎌짐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참혹한 범죄현장에서 신참은 구토를 하지만 고참은 아무렇지도 않게 처참한 시체를 뒤적거리는 장면이 가끔 나옵니다. 그만큼 무뎌진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저희 일도 이런 게 있나봅니다. 처음엔 누군가의 딱한 처지를 보면 정말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일이 많습니다. 사정 딱한 사람 단속해 놓고 옆에서 저희끼리 웃고 떠들기도 하죠. 영화처럼 피비린내에 적응하는 거야 별 일 아닌데, 마음이 무뎌지는 것은 참 씁쓸한 일입니다.


      제가 처음 잡았던 불체자가 생각납니다. 말 그대로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서 잡았는데, 그 사람은 땅바닥에 뻗어서는 어설픈 우리 말로 사정하더군요. 고향에 [돈을 부쳐줘야 하는] 가족이 있다고. 그 말을 들어줄 수 없었기 때문인지, 지금도 제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그런 일이 또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리가 풀리도록 뛰어서 잡았더니, 땅바닥에 널부러져서는 사정하더군요. 가족이 있다고. 제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못 알아들은 줄 알았는지 토막영어로 "I have family"라더군요. 처음과는 달리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갑을 채웠고 그 사람 곁에서 저희끼리 웃고 떠들게 되더군요. 참 씁쓸합니다.



          아마 잡히고 나면 으레 하는 소리 가운데 하나가 집에 가족이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돈을 부쳐줄 가족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겠지만, 가족들이 정말로 굶어죽는다는 말이 아니거든요. 한마디로 '생존'이 아닌 '욕망' 때문에 불체를 하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그 사람들의 나라에 가본 것은 아닙니다만, 단속된 사람들이나 그 나라에 오래 있어 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그런 것 같더군요.



            예전에 가난한 나라에서 온 분들의 입국심사에 대해서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희가 들여보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잡혔더군요. 멀쩡한 관광객을 단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이 아닌가 싶어서 안타까웠는데... 역시나 속은 거죠.



              단속이 된 뒤,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나라 말에 능통한 여직원에게 "너 우리나라 오지? 칼로 배를 찌르겠다"는 아줌마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민원업무를 하다보면, 딱해서 사정봐줬더니 뒤통수 치는 사람도 많았죠.



                  저희에게 사정하는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협박하는 사람... 얼핏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 때 상황이 달랐을 뿐이죠.



                    그래서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