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6일 토요일

국무상강 무상약 (國無常强 無常弱)

제가 일을 하다 보면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느끼게 되는 것이 있더군요.

얼마전 러시아가 불법체류 다발국가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 나라 사람들은 살아보겠다고 여기저기로 흘러가게 되었죠.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와서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쳤습니다. 불법체류는 물론이고 총기밀수나 성매매까지.
그런데 지금은 한풀 꺾인 느낌입니다.
제가 있는 쪽에서는 불체자단속을 하면서 러시아 사람을 잡은 일은 많지 않거든요.
언젠가 러시아 여성분의 일을 처리한 적이 몇번 있었습니다. 기록을 보니 몇년 전만해도 몸을 팔던 분들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로 평범하게 살고 있더군요. 과거는 가슴에 잘 묻어두었겠죠. 예전엔 러시아 아가씨들이 있던 업소에 지금은 다른 나라 아가씨들이 더 많은 듯 합니다. 물론 부산이나 동해같은 항만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불체다발국 명단에서도 빠지게 되었겠죠. 러시아가 다시 세계를 호령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한고비 넘긴 것은 확실합니다.

유흥업소에서 러시아 아가씨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필리핀 아가씨들이 메꿔버린 듯 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불체하다 잡히는 일도 많고, 우리나라에서 살아보려고 늙은 우리나라 남자와 결혼하는 아가씨들도 많습니다.
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던 나라였죠. 황석영 선생의 무기의 그늘이었던가요? 수세식 화장실을 어떻게 쓰는 지 몰라, 좌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웃던 필리핀 선원들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 시절을 기억하는 필리핀 사람들은 오늘날 어떤 심정일까요?

몽골을 보면 더합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소 바로 옆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습니다. 그 곳에 산성이 있구요. 몽골의 침입 때, 사람들이 산성 안의 샘물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게 되면서 산 이름까지 바뀌었죠[몽골침입 당시 춘주성에서는 물이 떨어져 모두 죽은 일이 있다는데, 샘물이 아니었으면 이곳도 그리 되었겠죠].
그렇게 우리나라를 휩쓸던 몽골사람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궂은 일 하면서 어렵게 사는 일이 많습니다. 어떻게든 우리나라에 더 머물러 보려 아쉬운 소리하는 / 불체하다 단속된 몽골인들이 저희 사무소를 드나들고 있죠.

베트남을 보면,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똘똘한 친구들이 많이 눈에 띄거든요. 지금 베트남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머지않아 옛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어찌될까요? 언젠가는 힘든 시절이 다시 오게 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더 뻗어나가게 애써야겠죠.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외국인노동자의 임금체불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외국인근로자들도 임금을 받지 못할 수 있죠. 예전에는 이 때문에 많은 피해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불법체류를 하면서 일했던 사람들이 아무래도 임금체불의 위험이 크죠. 많은 사람의 오해와는 달리, 이들도 법적 구제가 가능합니다. 불법체류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관계법이 적용된다는 것이 판례의 확고한 입장이고, 저희도 불체자들이 권리구제절차를 밟는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개입해야만 불체자가 밀린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불법체류의 경우 유효한 외국인등록증이 없어서 금융거래가 힘들죠(금융기관쪽 얘기를 들어보면, 여권만으로도 금융거래가 가능하다고는 합니다만, 많은 금융기관에서 외국인등록증이 없으면 금융거래를 해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모든 일이 잘 풀려서 밀린 월급을 그냥 현찰로 주고받는 경우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각종 구제절차를 거쳐 국가기관이나 보험사가 임금을 지급해주는 경우에는 불체자 명의의 예금계좌로 입금해줘야 하나봅니다. 이 때문에 저희를 찾아오는 불체자들도 없지 않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불체자들이 저희를 찾아오는 또 한가지 이유는 의료보험 문제입니다. 의료보험혜택을 받기 위해서 합법체류자로 자격변경이 필요할 때죠. 따지고 보면, 둘 다 돈문제군요.]

다만 불체자의 임금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두가지 있습니다. 이들은 불체상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처할 생각을 못하는 일이 많고, 고용주가 정말로 돈이 없다면 어떻게 할 수가 없게되죠.

합법체류자의 경우 임금체불을 대비한 보험을 들어두게 됩니다. 보험으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하죠.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무슨 말인가 하면..

단순노무를 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은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기한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눌러앉아 보려고 이런저런 머리를 굴려보죠. 우리나라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사람, 우리나라 사람에게 입양되었다는 사람, 느닷없이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난민신청자가 2009년 즈음부터 급증했죠. 일반인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실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제가 난민인정업무를 해보진 않았습니다만, 난민신청자들의 체류자격변경 신청건은 가끔 다뤄봤습니다. 신청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뻔히 보이는 경우가 상당수였습니다. '어? 이거 진짠가?' 싶었던 건도 한두군데 전화 걸어보니 불법취업이 드러나기도 하더군요]....

이런 건들은 아예 눌러앉아보려고 머리를 쓰고 발품도 많이 파는 경우이고, 간단하게 몇 달 더 버티는 방법이 임금체불이라며 구제절차를 밟는 것입니다. 대개는 고용주와 짜는 눈치더군요. 심각한 임금체불문제가 되어서 고용주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만한 선까지 버티다가, '이제 돈 다 받았다'며 나가는 것이죠. 그 동안 외국인근로자는 몇 달 더 돈을 벌고, 고용주는 한국인보다 싼 값에 외국인인력을 계속 쓰는 것이구요.
물론 이는 불법취업/불법고용으로, 단속되면 고용주는 범칙금을 세게 맞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업체를 다 단속되지는 않으니까 자주 써먹게 되나 봅니다.

외국인근로자의 임금체불 문제가 나오면, 이런 사정이 있어서 통계상 임금체불 건이 많아진다는 것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