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4일 일요일

사고

저희가 단속을 하다보면 가끔 사고가 납니다. 그 가운데는 언론에 나가는 것들도 있죠. 그런 보도들을 보고 저희들을 '인간사냥꾼'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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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젠가 베트남 불체자들의 도박모임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인 둘이 추락사한 일이 있었죠. 경찰과 저희 쪽[제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사무소였습니다]의 합동단속이었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주관한 단속도 아니었고, 불법도박 건이라서 그런지 언론에서 그리 크게 문제삼지는 않아 그냥저냥 넘어간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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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진보적 언론에서 단속대상보다 적은 인원을 투입하고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었다며 비판하더군요. 한마디로 제대로 된 대비도 없이 단속해서 사람이 둘이나 죽은 것 아니냐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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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 언론에도 보도되었습니다만, 단속전 들어온 첩보로는 도박판이 벌어질 곳은 지하였습니다.
나. 에어매트 등의 안전장비를 갖추면 좋겠습니다만, 경찰은 어떤지 몰라도 저희는 그런 장비 자체가 없습니다. 있다고 쳐도, 은밀히 덮쳐야 하는 단속의 특성상 사전에 안전장비를 설치해 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전에 안전장비를 설치한다면? 안전장비 설치하는 걸 보고 단속 눈치채고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다가 다른 사고가 나겠죠.
다.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곳을 [경찰과 저희 다 합쳐]15명으로 단속한 것을 문제삼던데,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단속반이 기껏해야 열명도 안되는 사무소가 많습니다[큰 사무소는 좀 더 많습니다만, 그래봤자 뻔한 숫자입니다]. 단속시 상대보다 우리의 인원이 많은게 안전하다는 것은 저희가 가장 잘 압니다. 불체자가 저희를 공격하지 않고 몸싸움만 한다고 해도, 한사람 당 최하 두명은 달라붙어야 수갑을 채울 수 있거든요. 여자 또는 체구가 왜소한 사람들이나 두명으로 통제가 되지, 힘이 센 몽골/우즈벡 사람이라면 서넛은 달라붙어야 합니다. 근육으로 뭉친 나이지리아 사람이라면? 너댓은 돼야 할 걸요?
여러분이 단속반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안전하게 불체자가 서너명 있는 곳만 단속하고, 숫자가 많은 곳은 그냥 나몰라라 할까요? 아니면 다는 못 잡더라도 단속을 해서, 최소한 쫓아내기라도 해야할까요? 단속을 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더 몰려듭니다. 그러면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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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속된 불체자를 수갑 따위로 때려서 문제된 사건이 있었죠.
제가 아는 분이 계신 사무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분 말씀을 들어보니, 단속과정에서 각목과 소주병을 들고 공격을 했던 사람이라는 군요. 단속된 뒤에도 나이든 실장님께 침을 뱉으며 욕설을 퍼부었답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직원분이 마침 옆에 있던 수갑을 들고 때렸다는군요. 결국 때린 직원분은 사표를 써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수갑이 사람패기 좋은 도구인가요? 그거라도 들고 때릴 정도면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그 때 그 자리에 여러분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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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얼마전 단속된 불체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어느 대학교수님께서는 함께 단속된 불체자들이 구타를 증언하고 있다며 '눈부처'를 바라보자는 칼럼까지 썼던 일입니다.
이 사건이 터진 곳에도 제가 아는 분이 계셔 사정을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빠루[뭔지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통쇠로 된 공구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시면 쉽게 사진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를 들고 덤비기에, 단속반원이 옆에 있던 빗자루로 손목을 때렸을 뿐이랍니다. 그 이외의 구타는 없었고, 빗자루로 때린 손목에는 외상도 남지 않았을 정도라네요.
국과수 부검결과, 심장의 혈관 3개 가운데 하나는 아예 막혔고 하나는 거의 막혔던 것이 사인이라합니다[그 때문에 단속차량에 제세동기를 비치하는 조치가 이뤄지고 있죠].
덧붙이면, 이 사람의 죽음 뒤에도 역시나 보기 안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네요. 저는 잘 모르고/ 알아도 말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사람의 죽음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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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겪은 일입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불체자 십여명이 단속반을 밀어젖히고 우르르 도망가더군요[이 일도 단속반이 적어서 생긴 일입니다. 단속반이 많았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죠]. 그러다가 골조공사를 위해 세워둔 철근들을 마주치자, 그대로 뚫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이 철근을 타넘으려다가, 그러지 못하고 매달리더군요. 직경이 30밀리쯤 되는 굵은 철근이었지만, 사람이 붙잡고 매달리자 휘어져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뒤통수를 처박아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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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바로 몇미터 뒤에서 그걸 봤습니다. 이런 말하기 뭐 합니다만, 순간 떠오른 것은 '불쌍하다'가 아니라 '실장님[단속반 책임자] 옷벗겠구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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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노가다 아저씨들이 몰려와서 쌍욕을 퍼부으며 항의하더군요. 언론에서 흔히 떠드는 대로 '야만적인 불체자 단속에 격렬히 항의'했다고나 할까요? 단속을 시작하자마자 저리 된 일이고, 저 일 뒤에도 저희를 공격한 불체자가 없었기 때문에 저희가 때린 사람은 아예 없었는데도 그러더군요[건설현장에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건 아니다 싶은 경우도 많아요. 술에 취해 전화해서는 외국인이 저렇게 많아서 일감도 없고 일당도 오르지 않는데 왜 단속하지 않냐고 욕을 퍼붓다가도, 막상 단속을 나가면 아무 것도 안했는데도 쌍욕을 해대며 시비걸면서 한대 쳐보라고 하는 일도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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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를 불러 병원으로 보내니, 의사가 심각하게 말했다는군요. 입원을 시켜놓고 돌아왔는데, 바로 그날 밤 환자가 달아나버렸습니다. 의사도 '야만적인 인간사냥꾼'보다는 '불쌍한 미등록외국인 노동자' 편이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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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시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단속된 외국인 하나가 눈치가 예사롭지 않더군요. 공연히 엄살을 피우는 꼴이 곧 무슨 짓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점심 때가 되어 단속차량이 멈춰서자,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화장실로 데려갔는데, 역시나 일을 보지 못하더군요[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지 않는 것을 알기에 오래 기다려줬더니, 쪼르륵 하고 끝을 내더군요]. 화장실로 가며 감시가 덜한 틈에 달아나보려 했던 것이죠. 그 사람 수갑이 헐렁하기에 조이고[수갑이 헐렁하면 손목을 뺄 수 있습니다], 잔머리 쓰지 말라고 윽박지르며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 화장실에서 제가 때렸다고 다른 직원들에게 하소연하더군요. 그러자 놀라운 것은, 다른 직원들이 제가 때리기라도 한 듯 취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고, 저를 좋지 않게 보는 동료도 있긴 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단속이 비전이 없다는 것은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제 마음이 조사과를 완전히 떠난 것은 이 일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사정으로 조금 더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조사과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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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이란게 험한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다 불필요한 누명까지 쓰게되면, 일하고 싶은게 이상한 거죠. 요즘들어 공무원 인기가 좋아졌다고는 해도, 공무원 조직이 일류급 인재들이 모이는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 단속분야는 기피보직이 되어버리면서, 결국 그나마 쓸만한 인재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게 되죠. 제가 처음 조사과에 왔을 때, 단속이 주먹구구로 이뤄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무엇 때문일까요? 그리고 누구의 손해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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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잘못은 하고, 그에 대한 비판은 받아야 합니다. 시민이 공권력을 비판적으로 감시한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없는 말 만들어가면서 물어뜯는 것이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자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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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다가 시간이 없어서 마무리를 못짓던 사이, 중국 어선을 단속하시던 해경분께서 순직하셨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희도 노가다판 등을 덮칠 때 일어나기 쉬운 일인데, 예전에 썼듯이 '무리한 추적은 자제해서' 일어나지 않을 뿐이죠. 해경은 배위라서 그러지 못해 일어난 일인 듯 합니다.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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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여론이 격앙되어 있더군요. 저건 어민이 아니라 해적이라고. 예 맞는 말입니다. 흉기를 휘두르면 사살이라도 해야 하는게 옳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들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위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쌍한. 감옥의 범죄자들도 똑같습니다. 위험하니 감옥에 있어야 합니다만, 나름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죄에 맞게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고, 흉기를 들고 저항하는 자는 사살이라도 해야 마땅합니다만,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미워할 것 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겪은 일이 있어서 이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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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갈고리를 든 불체자와 싸운 글을 썼습니다만, 그럴 뻔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불체자 한명이 한팔 길이 쇠갈고리를 꼬나잡고 슬금슬금 빠져나가더군요- 다가서기만 하면 찍어버릴 기세로. 제가 따라붙으니 지하실로 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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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봉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을 일이라서 마침 옆에 있던 삽을 집어 들었습니다. 조명도 없는 지하실에 랜턴을 켜들고 내려가보니, 천장 배관에 매달려 숨어있더군요. 삽으로 엉덩이를 툭툭치면서 내려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삽을 들고 있어서인지, 싸울 생각은 않고 내려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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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갈고리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저도 삽을 내려놓았더니, 반항하려고 하더군요. 별 수 없이 때려잡았습니다[물론 삽이나 도구를 쓴 건 아니구요]. 수갑을 채워서 단속차량에 실어놓고, 시커멓게 뒤집어쓴 검댕을 털어내며[지하실에 검댕이 무척 많았습니다] 한숨 돌린 다음 돌아와보니,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한 사십대 중반의 꾀죄죄한 아저씨가 앉아있더군요. 제게 얻어맞을 때 많이 무서웠나봅니다. 솔직히 저도 한팔길이 쇠갈고리만 보였지, 그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수갑채워 놓고 한숨돌리고 나니 사람으로 보이더군요. 중국 어민들도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