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3일 토요일

E-6 비자

한겨레신문에서 E-6 비자에 대한 기사가 났더군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8845.html

저 기사에서 말하는 E-6는 정확히 말하면 E-6-2 입니다. E-6-1은 예술/방송연예활동을 하는 체류자격이고, E-6-3는 운동선수/감독/매니저에게 주는 체류자격이거든요.
뭐 E-6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E-6-2이고, 작년부터 나온 신형 외국인등록증에는 세부자격이 나오지 않고 E-6라고만 쓰여져 있어서 저리 아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만.

E-6-2 사증은 기본적으로 호텔/유흥업소에서의 공연활동을 하는 자격입니다. 워커힐호텔/관광유람선/롯데월드나 에버랜드 등에서 외국인들이 공연하는 것 아시죠? 그 사람들이 받는 비자가 E-6-2입니다. 하지만 본래의 취지와 달리, 성매매가 문제되는 곳도 있죠[성매매 처벌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접어두고, 여기서는 왜 막지 못하는지만 다루기로 합니다].

저희 쪽에서 E-6-2와 관련된 업무처리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국내연예기획사에서 외국에 있는 피초청자를 초청하죠. 이 일은 사증관련 부서에서 합니다. 사증관련부서에서 사증발급인정서 발급을 허가[명칭은 허가지만 행정법적 개념으로는 특허에 가깝겠죠]하면, 그걸로 해외 공관에서 사증[비자]을 받죠.
그 비자로 공항만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입국합니다.
입국한 다음 공연장소로 와서, 외국인 등록을 마치고, 체류기간 연장이나 근무처변경허가 등을 하게 됩니다[이 일은 체류관련 부서에서 합니다. 마찬가지로 명칭은 허가지만 행정법적 개념으로는 특허에 가까울 겁니다].
이후 조사관련 부서에서 동향조사를 해서 문제점이 있는지 알아보고, 단속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사범관련 부서에서 처벌을 하게 됩니다. 통고처분을 해서 범칙금을 부과할 수도 있고, 고발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막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사증/체류/조사 가운데 한군데서만 막았어도 그런 일은 없을텐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다더라 하고 '사람들이 아는' 것과, 불허처분 또는 처벌을 위해서 '증거를 갖추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거든요.

이와 관련해 핵심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저 기사와는 달리, '이주여성'들은 사실 '피해자'라기보다는 '공범'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유흥업소를 단속할 때, '이주여성'이 감금되어 있다가/강요에 시달리다가 저희를 보고 구원을 요청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E-6-2 자격 소지자도 아닌 '이주여성'이 유흥업소 등지에 있다가 적발되면 언제나 '놀러왔다'고 둘러대죠[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는 사이라서 놀러왔는데, 마침 단속반이 왔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E-6-2 자격소지자가 공연이 아닌 술자리에 있다가 적발되면, '강요에 못이겨 한 일'이라며 피해를 호소하는 게 아니라 오리발 내밀기 바쁘죠. 제가 단속했을 때, 술자리에서 뭐했냐고 물어보니 노래불렀다고 하더군요[공연했다는 뜻입니다. 가수명목으로 온 '이주여성'이었거든요]. 무슨 노래를 불렀냐고 물어보니 사랑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슨 사랑노래를 불렀냐니, 대답을 못합니다.
제가 겪은 일은 아닙니다만, 어떤 '이주여성'들은 아예 단속에 항의하며 옷을 홀랑 벗고 사무소 바닥에 드러누워버린 적도 있었다네요. 남자직원들은 모두 도망가야했고, 여직원들이 힘든 일을 겪었답니다. 구체적인 말은 못하면서 치를 떨더군요.
'이주여성'들이 피해자라면, 증거수집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주여성'이 공범이고, 업소/손님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다보니 증거수집은 참 힘들어집니다.

업무과정을 좀 더 말해보면..
먼저 사증발급인정서/ 체류허가 등에 대해서 보죠.
이들은 법리상 수익적 행정처분일테니 관련사실의 입증책임이 신청인[연예기획사나 '이주여성'] 쪽에 있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불허처분을 위해서는 처분청에서 관련사실을 입증해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으면' 담당자 입장에서는 불허를 하기 힘듭니다. 국가기관인 영상물 등급위원회에서 공연추천까지 받아왔는데, 구체적인 증거는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모두가 다 알지 않느냐'며 불허하기란 쉽지 않죠.
저도 여러 건 다뤄봤습니다만, 불허에 성공한 건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것도 과장님과 실장님께서 든든한 분이셨고, 단속을 통해 처벌이 이뤄진 업소였기에 가능했죠. 그래도 연예기획사 쪽에서 항의를 해서 쉽지 않았습니다.
그 쪽 사람들이 워낙 '드센 사람들'이라, 사무소에 와서 행패부리면 요즘 같이 공권력이 무너진 시대에 불허는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조사해야할 동향조사 부분은 더합니다- 상식적으로도 처벌과 단순한 수익적 처분의 불허는 비교할 수 없겠죠.
가장 큰 문제는 인력부족입니다. '또 그 소리냐' 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저희쪽에서 가장 큰 사무소를 둘 꼽으라면 인천공항 사무소와 서울사무소인데, 단속반[동향조사를 담당하죠] 인원은 스물 조금 넘거나 조금 못미칩니다. 그런데 서울사무소의 경우, 관할지역이 서울시 전역과 광명시/성남시/안양시/하남시/과천시입니다. 여기에 있는 경찰서가 몇개인지, 경찰서 하나에 경찰이 몇명 있는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제가 세어보니 경찰서 숫자만 서른 여덟개군요. 저희 단속반원 숫자가 경찰서 숫자보다도 훨씬 적습니다.
지방은 더하죠. 제가 전에 있던 곳은 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도 하나를 다 맡았고, 지금 있는 곳은 다섯개 시군을 맡고 있는 단속반원이 딱 둘입니다. 더구나 지방의 경우 실태조사나 출입국심사 등 함께 해야하는 일이 많아서, 인천공항이나 서울처럼 동향조사에만 전념할 상황도 못되죠.
단순 불체자 잡기도 일손이 딸리는데, 유흥업소 기획조사란 쉽지 않습니다.

E-6-2 사증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국민들이 비리 의혹을 가지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부정부패 이전에 공권력의 현실적 한계문제입니다.

그건 그렇고, 만약 저 기사처럼 피해여성이 있다면 어찌될까요? 기사에서는 캐나다/미국의 구제를 위한  체류자격이 소개되었군요.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인이 소송 등을 통해 권리구제를 받는데 체류자격상 제한이 없습니다. 그 자격이 E-6-2 건 무엇이건, 체류자격상 활동범위때문에 권리구제를 못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한마디로, E-6-2로 그냥 살면서 권리구제절차를 밟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근무처변경허가를 받고 다른 공연장소에서 일하면서 권리구제 절차를 밟게 되겠죠.

그런데 현 체류자격으로 체류기간 연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권리구제 절차가 덜 끝났다면 어찌될까요? 그럴 때는 G-1자격으로 바꾸고 권리구제 절차가 끝날 때까지 머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자격변경수수료 5만원과 등록증 재발급비용 1만원 뿐입니다.
인권침해를 당한 외국인의 경우, 체류자격외 활동허가를 받아서 취업도 가능합니다.

캐나다나 미국의 경우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고 기사에 나왔군요. '신청할 수 있다'와 '허가가 잘 된다'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네요. 우리나라의 경우 어떨까요?
등록외국인으로 5년이상 거주한 경우, 다른 요건을 갖추어 일반영주권이나 국적신청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국적이나 영주권을 주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네요. 인권침해를 당한 외국인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만, 국적이나 영주권까지 주는 것이 바람직한 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에 꿈을 안고 왔다가 저런 일을 당했다면, 오만정 다 떨어져서 권리구제가 끝나는 대로 집에 가고 싶어하는 게 정상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