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5일 토요일

국제결혼 후 체류자격 변경

국제결혼과 관련한 판결이 하나 나왔더군요.  2012.4.18 대구지방법원 2011구합2394 판결입니다[전문은http://www.lawtimes.co.kr/LawPnnn/Pnnps/PnnpsContent.aspx?serial=5694&kind=C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판결제목은 체류기간 연장 등 불허처분 취소입니다만, 아마 체류자격 변경 불허처분에 대한 판결이 아닌가 싶네요]. 저 사건에 대해 아는 바는 없습니다만, 판결문을 읽다가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는 것 같아서 몇자 적어봅니다.

판결문에서 4. 판단의 가 부분을 보시면, 출입국관리법 시행령/국제사법/민법/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거론한 판시사항이 나오죠? 간단하게 말하면, 외국인이 '국민의 배우자 자격'[쉽게 말하면 결혼비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만 혼인이 성립되어 있으면 되지 우리나라와 외국인의 자국 모두에 혼인이 성립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좀 설명이 필요하네요.
국제 결혼을 한다고 칩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희가 관여하지 않습니다. 결혼 후 그냥 외국에서 살거나, 우리나라에 살더라도 외국인인 배우자가 원 체류자격으로 그냥 살면서 결혼비자 신청을 하지 않으면 저희가 관여하지 않습니다.
외국인 배우자가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배우자 자격'으로 비자[판결문에 나온 F-2 비자입니다. 현재는 F-6로 이름이 바뀌었죠. 쉽게 말하면 결혼비자입니다]를 신청[체류자격 변경허가 신청]하면 그 때 저희 일이 되죠.
이 때 저희는 우리나라와 외국인 배우자의 자국 모두에 유효하게 혼인이 성립되어 있지 않으면 체류자격 변경허가를 해주지 않습니다. 해외 공관에 사증신청을 해도 마찬가집니다. 법원에서는  그걸 잘못이라고 본 것이죠.
쉽게 말하면, 저희는 우리나라와 파키스탄 모두에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으면 결혼비자를 주지 않는데, 법원에서는 우리나라에만 혼인신고했으면 되었지 파키스탄에까지 혼인신고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 것입니다.

저도 이 일은 맡고 한동안은 저희 업무처리 기준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국제사법[제대로 본 적도 없고 그나마 대충  본 것도 오래되서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상 혼인성립에 관한 입법례에는 몇가지가 있는데, 혼인이 양당사자의 국적국 모두에 유효한 방식으로 성립되어야 한다는 방식은 당사자의부담이 크다고 해서 우리 국제사법은 따르지 않고 있거든요.

그런데 알고보니, 저렇게 하는 까닭이 있더군요- 바로 중혼방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혼인신고를 마치면, 그 나라의 혼인관계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해집니다. 말하자면 자기 나라엔 자기 나라 아내가 따로 있는 상태에서 한국에 한국 아내가 있게 되어 버리죠. 또 우리나라에서 혼인신고 해 놓고 그 나라엔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우리나라 아내가 멀쩡하게 있는데 자기 나라에 자기나라 아내를 또 둘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일부다처제가 인정되는 나라처럼 우리의 상식과 어긋나는 나라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그 나라에 혼인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그 나라의 혼인관계 기록을 조사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고, 그 나라에 혼인신고를 해 두면 적어도 그 나라에서 총각/처녀행세는 못하게 막는 것이죠.

그 나라에 직접 가서 혼인관계를 조사해보고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만, 그게 힘들면 영사혼이라도 해야겠죠. 우리나라에 있는 그 나라 영사관에 가서 혼인신고를 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영미법계 국가의 경우 영사관에서 처리한 서류만으로도 F-6 체류자격 변경허가를 해주고 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나라라면, 영사관에서 혼인신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검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판단에 바탕을 둔 것이고 그것이 크게 불합리한 것 같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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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보탭니다.
외국인의 자국에도 유효한 혼인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 그 나라에서 문제될 수 있다는 군요.  심각한 경우에는 외교문제까지 될 수도 있답니다.
선진국들은 별 문제없는 모양인데,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 제가 알지 못하는 일이 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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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파키스탄의 경우, 서울에 있는 이슬람교 사원에 가서 결혼식을 치르고는 자국에도 혼인신고를 했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가끔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 쪽에서는 그런 주장을 했죠. 제가 파키스탄 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만, 이슬람권에서는 정교분리가 우리처럼 명확하지 않으니 서울에 있는 이슬람교 사원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것이 유효한 혼인성립일 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로써 중혼방지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이슬람교 사원의 성직자가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 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자국으로 공문 보내서 다른 혼인관계가 있는지 조사하고, 겹으로 결혼하지 못하도록 공적 장부에 못박아두는 일까지 해 줄까요?

비꼬는 말이 아니고, 법관들 참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판시사항에서 본 것처럼 탄탄한 법리적 근거를 가지고 저런 판결을 했죠. 저렇게 하면 저희도 편합니다. 받아서 살펴봐야 할 서류가 줄어드니까요. 하지만 그게 바람직한 일인지는 모르겠네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나라로 맞선을 보러 가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었죠. 그걸 모르고 입국해버린 신부-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답니다. 처음 만난 시댁식구와는 아예 같이 살지도 않구요. 이게 뭘 뜻할까요?
이런 국제결혼 아주 많습니다. 이런 꼴들을 지켜보면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