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30일 토요일

그들은 왜 그랬을까

얼마전 오원춘사건으로 많이들 분노하셨을 것입니다. 그 때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만, 수색과정에서 집 주인의 동의가 없으면 경찰이 그냥 돌아선 것도 문제가 되었죠.
분노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원인을 따져보지 않고 단순하게 경찰관들의 무능과 태만만을 탓한다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죠. 제가 경찰관들의 잘못을 감싸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만, 집 주인의 동의가 없어서  수색하지 못한 것은 그 경찰관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니, 범인일지도 모르는 집주인이 막으면 경찰은 그냥 돌아서야 하냐!'는 문제제기가 당연합니다만, 사정이 간단치가 않습니다.

영장제도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법관이 발부한 영장없이는 범인을 체포하거나 체포를 위해 건물안을 뒤질 수 없다는 것이죠.
물론 '무슨 소리냐, 현행범 체포/긴급체포와 같은 예외규정이 다 있다. 이번 건에서도 범행 당시라면 현행범 체포가 가능했고, 범행 후 라도 긴급체포가 가능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범죄수사가 아닌 행정경찰작용과 관련해서 경찰관 직무집행법 6조와 7조를 적용해서 경찰관의 수색이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점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조치에 대한 보호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죠. 조금 설명이 필요할 듯 하네요.

모든 것이 확실한 상황이라면 저런 규정에 따라서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당시 오원춘이 어디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당연히 문 때려부수고 들어가서 피해자를 구출하고 오원춘을 체포했겠죠. 이와 관련된 모든 행동은 적법하구요.

하지만 문 때려부수고 집주인 밀어붙이며 들어갔는데 범인이 아니었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물론 집 주인이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고 크게 문제삼지 않으신다면 별 문제 없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분들이 그리 해주시길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대다수는 격분하며 법적 책임을 추궁하실 겁니다.

물론 '위법성 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에 관한 법리[오상방위/오상피난/오상정당행위 등을 뜻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정당방위/긴급피난/정당행위를 할 상황이 아닌데 잘못알고 그렇게 해버렸다는 것이죠]가 적용될 사안입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학설대립이 있습니다만,  잘못이 없다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잘못이 있다면 과실범 책임을 지게 됩니다.

'잘못없으면 면책되쟎아? 뭐가 문제야?'라고 하시겠지만, 행동을 한 사람은 그 '잘못'의 판단과정에서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저런 일이 문제된다면, 판사는 어떤 근거로 그렇게 결정하였는지, 적법절차의 준수 여부를 가지고 '잘못'이 있었는지 따져보게 되겠죠.
그런데 시간을 두고 하는 범죄수사라면 치밀하게 준비하고 꼼꼼하게 따져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겠지만, 확실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신고전화 한통만 받고 움직이는 상황이라면 완전히 다를 겁니다.
제가 왜 이런 소리를 하냐하면, 저희 쪽에서 조금 다른 일로 문제가 되고 있거든요. 저희쪽에서 일하는 어떤 분께서 형사책임을 질 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무소에서 단속을 나갔는데, 단속반을 보고 어떤 분이 도망을 가더랍니다.
일반적으로 단속을 나가면, 불체자는 단속반을 보자마자 달아납니다[처음부터 전력질주하기도 하고, 슬금슬금 눈치보며 사라지기도 하죠]. 차분하게 저희 신분증 제시하고, 여권/외국인등록증 소지여부를 묻고, 아무 것도 없어서 신분확인이 불가능할 경우 정중하게 양해를 구해서 임의동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일단 전력질주해서 붙잡아야 그 다음 단계 진행이 가능해집니다.
그날 단속반원도 '불체자가 도망가는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쫓아가서 연행했답니다. 이 과정에서 한쪽 손목에 수갑을 채웠구요.

그런데 잡고보니, 도망가셨던 분은 한국인이셨답니다! 그냥 무서워서 도망가신 거랍니다.
신원확인 되자마자 바로 사과하고 보내드렸습니다만, 일은 이미 터져버린 뒤였습니다.
지나가다 억울하게 수갑차게 된 분께서는 단속반원을 고소하셨고,  그 단속반원은 형사처벌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저 상황에서 단속반원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단속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겁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판사가 이해해 줄지는 의문입니다. 아마 불체자로 의심할만한 상당한 사유가 없음에도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이 소식을 듣고나니, 저는 말 그대로 단속에 나갈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지금은 단속을 전담하지는 않습니다만, 앞으로 언제 단속을 나가야 할 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단속에 나가서는 몸사리지 않고 뛰었다고 자부합니다. 불체자를 추격하면서 3층 높이 축대에서 뛰어내리기도 했고, 차가 달리는 왕복 12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기도 했습니다. 갈고리를 휘두르는 불체자와 싸우기도 했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야산속에서 저보다 덩치가 큰 불체자와 레슬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단속과정에서 다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만, 형사처벌까지 무릅쓰고 뛸 생각은 없습니다. 더구나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옷을 벗게될 수도 있습니다.
 
경찰도 똑같지 않을까요?
예컨대 신고전화를 받고 나가보니 의심가는 집이 여러 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집에서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고가 사실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집 주인 동의없이 밀고 들어갈 경우, 범죄현장이면 피해자를 구출할 수 있지만, 범죄와 상관없는 집이라면 형사처벌의 위기에 몰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쁜 마음을 먹고 한 짓이 아니라면, 공무집행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잘못은 면책해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지 않으면 공무집행이 제대로 될 수가 없고, 그 피해는 모두 우리가 보게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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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글을 쓰고 난 뒤 관련되는 언론보도가 나왔네요.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2/06/30/0701000000AKR20120630050000004.HTML?template=2087
법안 내용을 보지 못해서 뭐라 말하긴 힙듭니다만, 오판시 형사면책규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저와는 완전히 다른 입장에서 비판한 기사도 났습니다.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serial=65451&kind=AD&page=1

사법적 통제가 없다는 점, 악용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저도 확실하게 인정합니다.
공권력에 대한 통제와 범죄예방 사이에서 주권자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