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0일 토요일

어떤 귀화신청 사유

얼마전 옷차림이 초라한 초로의 민원인이 찾아오셨습니다.
낯은 익었는데, 무슨 일로 오셨던지 얼른 생각이 안났습니다. 귀화신청 구비서류에 대한 안내문을 내미시더군요. 국제결혼을 하신 분이셨는데, 아내의 귀화신청을 하려고 안내를 받으셨던 분이셨습니다. 제가 귀화신청 구비서류를 설명하면서 메모한 흔적도 남아있었습니다.
제가 얼굴을 기억할 정도이면 몇번을 찾아오셔서 설명을 들으셨을 터인데, 그래도 설명을 다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확인차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참고로 귀화신청하시는 분들 가운데 구비서류가 복잡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규교육을 받으신 분이라면, 안내문을 보며 설명을 한번 듣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현실적으로 국제결혼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 학력이 낮은 분들이 많아서 생기는 일이죠].
다시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만, 제대로 이해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동행하신 부인의 상태를 보니, 귀화신청을 한들 면접을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무작정 신청을 하려 합니다. 이런 경우, 대개는 아내에게 졸리다 못해 남편이 나서는 것이죠.

그런데 귀화신청에는 돈이 들어갑니다.
귀화신청시 수수료는 30만원이고, 우리나라에서 서류를 갖추는 데는 돈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국에서 가족관계 소명자료와 범죄경력증명서를 마련해와야 하는데, 여기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죠. 가족관계를 소명할 수 있는 자료는 우리나라로 치면 출생증명서나 가족관계증명서(호적등본)입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많은 돈이 들 문서가 아니죠. 그런데 결혼이민자들이 오는 국가는 대개 가난한 나라들이고, 이런 나라는 거의 부패가 심합니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별 것 아닌 증명서 한장에도 돈을 뜯어내는 일이 많답니다. 브로커의 손을 거치면 돈이 더 불어나지요[제가 귀화신청을 받으면서 민원인들에게 물어보니, 나라/지역에 따라서 적게는 수십, 많게는 200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야 했다더군요].

마침 그 분의 부인이 오신 나라는, 서류 떼는데 꽤 돈이 드는 나라였습니다.
그분 행색을 보니, 수입이 적을 것 같았습니다. 재산도 거의 없을 듯 했구요. 넉넉한 사람들에게는 별 것아닌 돈이었지만, 그 분께는 타격이 클 것입니다. 신청해봐야 떨어질 게 뻔한데 돈 들이려는 것을 보니 안타깝더군요. 보다못한 제가 은근슬쩍 한마디 했습니다.
귀화해봐야 남편에게는 좋을 것 없다고.

그 분 부인의 기록이 그닥 좋지 못했거든요.
지금 아이가 있긴 했습니다만, 결혼으로 들어와 가출/불법체류하다가 이 분과 결혼하고 임신한 덕에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갖게된 사람이었습니다.
결혼이민자 중에는 영주권/국적 따면 애 팽개치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이 사람도 '남편과 살려고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 '한국에 살려고 남편과 붙어있는' 것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국적이 없어도, 결혼생활을 계속하는 한 체류에 지장이 있는 것도 전혀 아니구요.

하지만 그 분의 한마디를 듣고 나니 할말이 없더군요.
'내가 가고 나면, 국적이라도 있어야 애를 키울 거 아니오'


대책없는 국제결혼의 흔한 모습을 또 마주친 것이죠.

제가 다른 사무소에 있을 때 일입니다.
결혼이민자 한 분이 동생을 우리나라에 머물게 해달라며 찾아오셨습니다. 동행하신 분께 사정을 들어보니 딱했습니다. 남편은 술 때문에 죽었고, 시댁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상황에서 아이 가운데 하나가 큰 병으로 입원했답니다. 동생이라도 머물면서 도와줘야 할 상황이었죠.

지금은 육아지원을 위해 결혼이민자 가족이 국내에 머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습니다만, 그 때는 허가가 가능한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과장님께 여쭤보니, 해주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나중에 책임질 각오를 하고 해줬습니다. 감사가 못본 것인지, 보고도 딱해서 넘어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별 일 없이 넘어갔습니다.

수수료 6만원도 못 내셨을 정도로 사정이 딱한 분이라, 쉬는 날 그 아이가 입원한 병원에 몰래 가봤습니다. 병원에 물어보니, 지원을 받는 덕에 치료비 등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군요.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무소에 있을 때 일입니다.
어느 결혼이민자의 신청 건이었는데, 도저히 허가할 수 없는 건이었습니다. 불허를 하고[계속 체류하는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나서 신청인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남편도 죽었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요'하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하소연하더군요.
장애인이었던 남편은 술을 많이 마셔서 죽었고, 애 때문에 오후에만 일을 할 수 있어서 월급은 수십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시누이는 남편의 장례식까지는 많이 도와줬는데, 이후로는 왕래가 없답니다[장애인인 동생을 결혼까지 시키고 병원비 대고 장례까지 치뤄줬으면 할만큼 한 것이겠죠]. 사는 집도 남편이 얻어놓은 곳에서 그냥 사는데,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다보니 전세인지 월세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세라고 해봐야 보증금 얼마 안될테고, 어느 날 집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할 것 같더군요. 다행히 정부에서 지원을 받고는 있었는데, 큰 돈은 아니었습니다.
하도 딱해서 조금 도와주었습니다만, 지금도 그 사람 생각하면 답답해집니다.

저런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딱하니까 해달라는대로 다 해줘서 국적까지 주는 게 답일까요? 나중에 감당못할 사회적 부작용으로 돌아오겠죠.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앞으로 저런 일들이 더 벌어지는 것은 막아야겠습니다. 다행히 얼마전부터 결혼사증 심사가 강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못한 듯 합니다. 앞으로 더 강화되어야 하겠습니다.





남자 입장에서, 돈 벌어오는 것이 가장의 가장 큰 책임으로 되는 것은 그다지 기분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이 제구실을 못하거나 쓰러진 집들을 보면 두렵죠.
저런 집안들을 보고 있으면, 제때 월급받는 것이 죄스러운 느낌입니다.



댓글 2개:

  1. 10년전에 연애결혼으로 국제결혼했다가 파혼당한 옛 회사선배가 생각나네요. 우즈베키스탄 여자인데 결혼후에 집안에서 월80을 요구하다 거부하자 애데리고 우즈벡으로 도망가버렸죠.결국 선배가 사표내고 우즈벡갔는데 그 후는 어찌됐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국내에서도 도저히 결혼을 할 스펙이 안된다면 냉정하지만 결혼은 포기해야죠
    아무리 못사는 나라의 여자라도 눈이있는데 결혼을 한다면 위의 사례처럼 국적취득후 버리려고 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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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집에 2주만에 오다보니, 답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연애결혼으로 결혼했었다면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나은 상태였는데도 그리되었나보군요.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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