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7일 일요일

어떤 결혼

언젠가 직장에서 결혼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선배님 한분이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과정이 특이했습니다.
선배님과 형수님이 양가 어르신의 권유로 만나기는 했는데, 서로 별로였답니다.
그래서 그만 접으려고 했는데, 그 다음이 남달랐습니다.

장인어르신께서 형수님의 핸드폰도 빼았고 형수님을 감금시켰다가, 선배님이 오면 풀어주셨다네요. 형수님께서 직장을 다니고 계셨는데, '직장? 안나가도 된다'면서 가둬버리셨답니다. 수십년전 시골에서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2000년대 서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결국 두분은 결혼하게 되셨구요.

사람들은 모두 '에이~ 설마'하면서 선배님의 허풍 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짚이는 것이 있어서, 처가 쪽도 기독교 집안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답니다.
선배님이 독실한 기독교인이거든요.
그래서 그냥 신앙때문에 일어난 일인가보다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선배님의 장인어르신께서 위독해지셨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다른 사위들보다 더 지극하게 장인어르신을 돌보신 듯 합니다. 그저 결혼과정을 생각하면 장인 어른을 더 잘 모셔야하려니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장인어르신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보니, 형수님께서 외동딸이셨던지라 선배님께서 아들/상주노릇까지 하고 계시더군요.
장모님께서는 사위의 직장사람들이라고 하니 더욱 신경써주셨습니다. 형수님은 전업주부이시고, 이제 믿을 사람이라고는 사위 하나 남았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에 뭉클했습니다.

그렇게 조문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문득 장인어르신께서는 이 모든 것을 내다보고 선배님을 사위로 점찍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과정은 별로였지만, 지금은 형수님도 잘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형수님이 그랬답니다. 선배님이 어디가서 바람필 사람이 아니란 것을 믿는다고. 제가 옆에서 봐도,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가장으로서 믿어도 좋을' 사람입니다.
그 분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죠.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만, 탁고지신이란 말의 무게가 달리 느껴집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큰 능력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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