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4일 토요일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면?

퀴즈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면 어떻게 될까요?


정답: 감사[査]를 받는다. - 사람들이 고마워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설마하시겠지만, 제가 모시던 분이 당한 일입니다.

얼마전, 제가 모시던 분께서 다급하게 연락하셨습니다.
감사관이 자신이 조회한 개인정보들에 대해 조회사유를 소명하라고 하니, 당시 했던 일들을 좀 찾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정보 누출 / 불법적인 개인정보 조회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 때문에 그런 듯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당연한 일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 분께서는 확실하게 업무파악을 하고 계신 분이었고, 그 때문에 결재가 올라오면 관련자료를 직접 조회해보셨던 것입니다. 반대로 대충 훑어보고 사인만 했던 사람들, 업무파악이 되지 않아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사인만 했던 사람들은 관련자료를 조회해 봤을리 없습니다.  따라서 조회한 개인정보의 양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은 감사를 받을 까닭이 없죠.

그런데 문제는, 일을 한 뒤 시간이 흘러서 정확한 사유를 기억/소명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게 도움을 청하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처리했던 일들을 다시 조회해서 대상자들을 찾아냈지만 많은 건이 남더군요. 그런데 마침 당시 문제되었던 사안이 떠올라서 간신히 조회사유를 찾아냈습니다. 그래도 몇 건은 사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봐서 무엇 때문에 조회했는지 짐작은 갔습니다만, 구체적인 근거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물론 개별 건을 처리할 때마다 개인정보 조회사유를 모두 입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저처럼 한직에 있는 사람이야 가능하겠지만, 서울이나 인천공항처럼 바쁜 곳에서는 일하지 말라는 말밖에 안됩니다.
만약 모든 개인정보시마다 조회사유를 입력해 둔다면? 그 때는 '입력사유의 진실성'에 대한 감사가 벌어지겠죠. 명목만 다를 뿐 똑같은 상황이 펼쳐질 겁니다.

그 분과 반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업무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결재 때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과연 이 사람이 우리 직원 맞나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사람의 지시를 들을 때 '머리속에서 천둥이 치는 느낌'이라 하더군요. 업무시스템 아이디도 잊어버렸을 정도로 업무에 관심이 없죠.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나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의전 주특기였더군요.
또한 이 사람은 문제가 될만한 일들은 미리 아랫사람에게 떠넘겨뒀습니다.
이 사람이 저런 감사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제가 그 분이 아니니, 그 분께서 불법적인 목적을 가지고 개인정보를 열람하신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열심히 일하지 않으셨다면, 저런 투망식 감사에 걸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점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 일이 아주 특이한 사례는 아닙니다.
감사를 할 때 '처리한 일'에 대한 감사도 벅찹니다. 그러다 보니 '일한 사람'만 감사를 받게 되죠. 처리한 일의 적정성을 따지려면, 그 일을 한 담당자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결과적으로 '한 일이 없으면 감사받을 일도 없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이 성과급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승진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시겠지만.....
글쎄요. 그저 웃지요.

여러분께서 공무원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빗나간 선의

좋은 뜻으로 한 일이,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얼마전 귀화허가를 받으신 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귀화허가 이후의 절차를 밟기위해서였죠.
외국인이 귀화허가를 받아 우리 국적을 취득하면, 원국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만약 원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 국적이 상실되죠.
그러나 일정한 경우에는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이라는 것을 하면, 원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우리 국적을 상실시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몇해전부터 시행된 복수국적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경우[모든 귀화허가자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귀화허가를 받은 사람은 원국적을 포기하거나,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할 두가지 선택권이 있는 셈이죠.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복수국적 인정은 상대적 효력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귀화자의 원국적국이 단일국적주의를 따르고 있다면, 우리 국적을 취득과 함께 원국적이 사라지게 됩니다. 설명이 더 필요할 듯 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중국인이 우리나라에서 혼인귀화를 하였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을 하면, 이분은 중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얼핏봐서는 복수국적을 누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국적 취득시, 중국법에 따라 중국국적은 사라집니다. 아무리 우리 정부가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통한 복수국적을 인정해줘도, 원국적이 사라져버리므로 복수국적은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이런 나라가 꽤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복수국적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을 뿐, 자발적으로 다른나라 국적을 취득한 우리 국민은 즉시 우리국적을 상실하게 되죠.
그러니까 원국적국이 단일국적주의를 따르고 있다면,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됩니다.

또한 원국적국이 단일국적주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도 문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라에 따라서는, 자국민이 외국에서 일정한 내용의 선서를 하는 경우 자국국적을 상실시키는 곳도 많습니다. 우리는 선서/서약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만, 유럽쪽 문화에서는 선서/서약에 대해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자국민이 외국에서 일정한 내용의 선서를 할 경우 국적까지 상실시켜버리는 내용이 법률에 포함된 듯 하고, 이것이 비유럽권 국가의 법에도 영향을 준 것 같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귀화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서약서를 작성한 경우 및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한 경우, 해당국가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지 알 수 없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자국국적 상실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아닌, '한국에서 일정 내용의 선서를 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어 국적을 상실할 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국적관계 법령뿐만 아니라, 원국적국의 다른 분야 법령까지 더해지면서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 지금은 주민등록법이 개정되었지만, 외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우리 국민은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재외국민거소신고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민등록 말소로 사실상의[법률상은 아니라도] 불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는 듯 하더군요.
- 우리 세법상 거주자/비거주자는 달리 취급되죠. 다른 나라도 비슷한 것이 있을 것이고, 그 판단과정에서 우리 국적의 취득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을 듯 합니다[우리나라는 다른 것 같습니다만].
-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혜택과 관련해서도 우리 국적의 취득이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 아무리 복수국적이 인정된다고 하여도 국가안보와 관련된 일정분야에서 타국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 각종 제한을 두는 입법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후진국의 경우, 이를 넒게 해석하여 사실상 아무 상관도 없는 분야에서도 문제가 되겠죠.
- 토지분배 등을 앞둔 나라도 있는 듯 합니다. 이때 우리 국적의 취득은 큰 영향을 미치게 되겠죠.

제가 생각해본 것만 이 정도이고, 수많은 다른 문제가 더 있겠죠. 국적문제로 인한 파생적 법률관계가 어찌 돌아갈지는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국적취득후 출입국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여기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발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하면 우리 국적이 상실됩니다. 그러면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여권도 별도 절차없이 그 효력을 상실합니다. 출입국시 효력이 없는 여권을 행사한다면, 출입국관리법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외국국적을 취득하고도 국적상실신고 등 절차를 밟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 생각없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며 한국여권을 썼다가 처벌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물론 악의없이 몰라서 그런 사람에 대한 구제조치는 있습니다]. 외국도 이런 것이 있는 듯 하고, 그 처벌은 우리보다 가혹한 경우도 있는 듯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국적을 취득할지, 취득한다면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할지/원국적을 포기할지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그러나 귀화자 가운데, 이 모든 것을 생각해서 결정하는 분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잘 알아보신 다음 결정하시라고 말씀드려도, 그냥 '아는 사람도 그렇게 했다' 또는 '자국 대사관까지 가서 절차를 밟는 것이 귀찮다'면서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간단하게 끝나거든요.

그날 오신 분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귀화허가를 받기는 했어도 관공서에 혼자 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아는 분과 함께 오셨더군요. 문제는 그 함께 오신 분이었습니다. 도우려는 마음에서 시간을 내서 함께 오셨으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셨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어도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고 도움도 될 수 없는 입장, 한마디로 남의 일인데도 자신이 간단하게 일을 결정해버리더군요.
마침 귀화하신 분의 원국적국은, 자국민이 타국에 귀화할 경우/ 타국에서 일정한 내용의 선서를 할 경우 국적을 상실시켜 버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도 함께 오신 분께서 '아무개도 그렇게 했다'며 그냥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하겠다고 결정하더군요.
보다못해 인터넷에서 그 나라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찾아, 귀화하신 분께 적어드렸습니다. 한번 전화해서 알아보신 다음에 결정하시라고. 그러나 귀화하신 분도 공무원보다는 시간을 내 함께 와준 사람이 믿음직했던지, 전화 한번 해보지 않고 그냥 함께 오신 분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자국에서는 어찌되었든, 우리 국적법상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제가 그 분에게 원국적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죠. 그냥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수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남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돕지 않음만도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척추에 손상을 입은 환자를 들쳐업고 뛰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선의만으로 뛰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